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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by TheStrok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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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뜨자마자 오페라 한편을 예매했다. 외국에서 관람하는 공연은 또 다른 느낌일 것이다.

생각보다 티켓이 엄청 저렴하다. 한국 같았으면 최저 5만원은 줘야 할 오페라 공연이 만원부터 시작한다. 상트페테르부르크 내 극장만 열 곳이 넘고 한 군데서만 하루에 대여섯번씩 공연이 이루어진다. 공급이 충분하기에 관람료가 낮을 수밖에 없는 구조다. 예술과 문화의 도시답다. 예매 방법도 매우 간단하다. 극장 홈페이지에서 날짜, 시간 정하고 신용카드 정보 적어넣으면 끝이다. 빌어먹을 액티브X나 공인인증서 그딴 거 필요 없다.

이 날은 숙소를 조금 늦게 나섰다. 같은 방에 묵는 친구들과 수다도 떨고 얘들이 만든 러시아식 수프도 한그릇 얻어먹었다. 전날 다같이 모여서 만들었다고 한다. 난 뽈뽈거리고 돌아다니다가 열한시가 넘어 복귀하는 바람에 함께하지 못했다. 이것도 아쉬운 점 중 하나.

전날 저녁 자리가 없어서 못 들어갔던 맛집이다. 점심시간이라 걱정했지만 다행히 자리가 널널하다. 친절한 종업원의 안내를 받아 입성. 식당 TV에서 디즈니의 정글북 애니메이션이 나오고 있다. 뜬금포 터진다. 근데 또 가만 보고 있으니까 옛 추억도 생각나고 좋대.


↑이거다. 넋 놓고 보고 있었더니 직원들이 지나다니면서 미소 짓는다. 그런 아름다운 얼굴로 그렇게 웃어주면 내 정신은 혼미해집니다.

난 밥 먹을 때 물을 엄청 많이 마신다. 보통 700ml 정도는 때려붓는듯. 러시아 식당에선 물이 유료다. 맥주랑 가격이 비슷하다. 물 먹느니 맥주가 낫겠지. 아침부터 맥주를 홀짝였다. 미친놈아.

식전 빵과 러시아식 물만두. 만두 호랑이인 내 입에 아주 잘 맞았다. 빵은 평범하다.

제일 먹어보고 싶었던 샤슬릭(양꼬치). 난 양고기도 환장하게 좋아한다. 가끔 피와 살이 모자란다는 느낌이 들 때면 혼자 가서 2~3인분 쓸어넣고 올 정도다. 그런 건 대개 중국식 양꼬치다. 이건 러시아식이다. 향과 맛 식감 크기 소스가 천지차이다. 얼핏 보기에 질겨보이지만 전혀 아니다. 식어도 부드럽고 육즙이 여전하다. 개인적으로 양고기 특유의 잡내를 좋아하는데 그걸 잘 보존해놨다. 고기 아래 깔린 얇은 빵에 양파절임, 고기, 소스를 넣어 싸먹으면 삶의 의미를 찾은 것만 같다. 거기다 맥주까지 한모금 하면 아 시바 글 쓰다보니 또 먹고 싶네.

저 많은 걸 다 먹었다.

대낮부터 술을 부었더니 단 게 땡긴다. 근처 카페에 들어가 생크림 가득한 달달한 음료를 마신다. 오늘은 어딜 가서 뭘 할까?

해군성을 가볼까 유람선을 탈까 섬을 갈까 고민한다. 결론은

미술관이다. 제일 가깝기도 했고 세계 3대 미술관 중 하나라고 하니까 이때 가봐야지 언제 가보겠냐. 정말 더럽게 크다. 다 보려면 3일은 걸린단다. 이제 크다는 말이 지겹네. 러시아는 다 크다 다! 사람 건물 음식 할 것 없이 모든 게 크다. 동시에 섬세하다. 모 자동차 광고 카피 말마따나 스케일과 디테일은 공존하기 어렵다지만, 러시아에선 그게 가능하다. 거대한 건물 안에 수많은 디테일이 넘친다.

이날 역시 (그들은 알아볼 수도 없는) 내 학생증 덕을 톡톡히 봤다. 학생이냐고 묻기에 학생증을 보여줬더니 'ㅇㅋ 유아 프리'라고 한다ㅋㅋㅋㅋㅋ 입장료가 15000원은 하는데 걍 들여보내준다. 요금란의 0.00 py6(루블)이 인상적이다!

사회는 왜 학생을 우대해줄까. 우리나라에서도 학생에겐 수많은 혜택이 따른다. 관광지 입장료, 놀이공원 티켓, 대중교통요금 할인 등의 금전적인 면은 물론 법과 처벌의 영역에서 조차 청소년에겐 관대하다. 자라나는 미래인을 위한 과거인의 관용일까. 먼 훗날 자신들을 부양해야 하는 세대에게 제공하는 청탁일까. 팍팍한 세상에 편입되기 전에 많이 즐겨두라는 연민일까.

입장하면 바로 보이는 계단

그 위 천장. 예술이다! 예술. 예술이라. 근데 대체 예술이 뭐지. 천장으로 모가지를 들어 위 광경을 목도하자마자 퍼뜩 의문이 떠올라서 정신 없이 적어나갔다.

 우리는 아이돌 기획사 대표들이 소속 가수들을 아티스트라 칭하는 모습을 자주 본다. 대중들은 딴따라, 아이돌이 무슨 놈의 아티스트냐고 힐난한다. 베토벤 모차르트가 예술가라는 데는 모두가 동의하지만 박진영, 아이유가 예술가인지 물으면 콧방귀를 뀐다. 넷 모두 하는 일은 비슷하다. 음악과 볼 거리를 창조하여 대중에게 기쁨을 주는 것. 클래식은 당시 사람들이 듣던 대중음악이고 아이돌 음악은 요즘 사람들이 듣는 대중음악일 뿐이다. 

클래식은 수백년을 살아 현대까지 전해졌고, 그것은 그만큼 세간의 비판과 세월의 흐름을 견뎌왔기에 예술의 지위를 부여받은 것이라는 주장이 있다. 하지만 길게 살아남았다는 것과 가치 있다는 것 사이에 어떤 필연성이 있다고는 단언할 수 없다.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지만 죄악이나 어리석음의 흔적 같은 것도 오래 살아남는다(마르크시즘, 이슬람 교리 등) 또한 얼만큼 살아남아야 예술 취급을 해줄 것인지 기준도 모호하다. 바흐 헨델 비발디 까진 킹왕짱예술가, 베토벤 모차르트 하이든 까진 킹예술가, 리스트 바그너 베르디 드보르작까지는 걍 예술가란말인가? 마찬가지로 호메로스부터 단테 셰익스피어 세르반테스 까진 신급 예술가, 괴테 찰스디킨스 도스토예프스키까지는 걍 예술가인가?

 난 우리가 예술이란 것을 너무 거창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내가 생각하는 예술이란 ▲인간의 지성을 활용하여 ▲접하는 이로 하여금 특정 감정을 불러일으키고▲ 따라서 상대적일 수밖에 없으며 ▲이전 세상에 존재한 적 없는 무언가다.

이러면 자칫 '세상 만물이 예술이기 때문에 거기에 우열은 없다' 따위의 무슨 문화상대주의 비스무리한 논리로 흐를 수 있다. 중요한 건 그 예술에 차이가 있다는 점이다. 잊을만하면 튀어나오는 예술의 전당 갈등을 보자. 클래식 교향악단에게만 허락되는 예술의 전당 무대에 대중가수가 설 수 있는지 문제다. 조용필 까지는 서게 해주자고 하면 옆에서 듣고 있던 나훈아는 '내가 쟤보다 못한 게 뭐가 있냐?' 따지고 들테고, 그러는 나훈아를 보고 남진 역시 같은 소리를 부르짖을 것이다. 그렇게 하나 둘 허락해주기 시작하면 클래식 전문 공연장인 예술의 전당의 정체성은 퇴색될 수밖에 없다.

어쩌면 예술은 존재하지 않는지도 모른다. 다만 예술가들이 있을 뿐이다.

여기까지 적혀있는데-결론이 좀 애매하다. 다음에 '인간론' 새 주제로 길게 한번 써봐야겠다. 지금 당장 확신할 수 있는 단 하나는 카이의 춤사위가 예술의 경지에 이르렀다는 것뿐이다.

뭘 찍고 싶었던 거야 대체

건물 내부는 수많은 방이 이런 통로로 이어져 있는 구조다. 물론 복도에도 여러 예술품이 전시되어 있다. 작품이 말도 안되게 많다. 감상하면서 인상적이었던 것들만 몇 개 찍었다.

신을 자처했던 사제들, 신에게 일거수일투족을 들키는 게 싫었던 교인들. 그리하여 신은 못에 박혔도다.

하지만 엿이나 먹으라는듯 신께서는 3일만에 부활하신다.

사진을 개떡같이 찍어놔서 제대로 안 보인다. 중세 러시아 마을잔치를 표현한듯.

본 순간 섬짓해서 한동안 발걸음이 붙박혔다.

어느 연결통로

초상화는 누가 누군지 모르겠다. 프랑스 쪽 귀부인으로 보인다.

딱 하나 아는 얼굴을 발견했다. 책에서만 보던 그림을 실제로 봤다. 사실 3대 미술관이라 들어는 왔으나 난 미술품에 별 관심이 없다. 그리는 것만 좋아하지 작품을 즐겨 감상하진 않는다. 그래도 만난 게 로크라면 들어온 보람이 있다. 사회 구조에 대한 홉스 루소의 분석은 극단이다. 이 양반 주장이 제일 그럴 듯하다. 인간지성론은 읽다가 토나올 뻔했지만 큰 산을 하나 넘었다는 뿌듯함도 안겨줬다. 실제로 그 책 이후론 어지간히 난해한 책도 그럭저럭 읽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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