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iteDwar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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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by TheStrok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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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지금 내 눈에 맺히는 상이 맞나 의심될 정도로 휘황찬란하다. 황제폐하와 고관대작 나으리들은 대체 이런 방에서 뭘 했던 걸까. 고위층의 사교계는 알 수 없는 일로 가득하다. 여러 문학작품에 표현되어있긴 하지만 작가의 상상력이 가미된 것이라 사실 여부는 판단하기 어렵다.

세기의 음악가가 연주하는 걸 귀기울여 들으셨을까. 저런 피아노에서라면 없던 악상도 떠오르겠다. 스타인웨이 따위는 비교도 안 될 정도의 고급스러운 소리가 나려나. 아니면 기술의 한계로 지금만한 소리는 못 내려나.

안나 카레니나의 등장인물들이 모여 앉아 담소를 나누는 장면이 그려진다.

-오블론스키, 나 당신 누이와 밀회를 나누고 있어

-뭐 이 개새끼야?

(쨍그랑)

그리고리 그리고리비예치 백작의 초상. 1722년에 덴마크 작가 에릭슨 비길리우스가 그렸다고 한다. 에르미타주 미술관에 들여온 건 1958년, 그러니까 소련시절이다. 내가 알기론 덴마크는 소비에트 연방이 아니었는데 이게 왜 여기있을까. 과거에 약탈 혹은 구매한 작품이 여기로 이관된 거라고 추측해본다.

위 그림 역시 복도에 전시 되어있다. 특이한 점은 저게 캔버스가 아니라 양탄자라는 사실이다. 길이 10미터 높이 4미터 정도의 천이 저렇게 벽에 걸려있다. 무게가 어마어마할 듯하다. 저런 미술품을 바닥에 깔아 카펫으로 사용했을리는 없고, 캔버스가 귀한 시대였을까 부를 과시하기 위함이었을까.

세간살이를 보니 자작 남작 등의 하급 귀족 방 같다.

러시아 제국 마지막 황제, 니콜라이 2세의 서재다. 무능한 허수아비였다더니 책은 많이 읽었나보다. 책덕후인 내겐 천국과도 같았다. 이런 서재라면 몇 달 몇 년을 갇혀 있어도 좋다. 저 중에는 대문호들의 작품 초판본도 여럿 있겠지?

어떤 정신병자가 작품을 저렇게 찍어놨냐.

그 아래 정체 모를 제단.

어디서 많이 봤다 싶었는데 돈키호테의 한 장면이었다. 악의 무리들이 산초판사를 양탄자 한가운데 놓고 던지며 놀고 있다. 자기 심복을 구하겠답시고 달려간 돈키호테 역시 수모를 당한다. 돈키호테는 영락 없는 정신박약아다. 풍차를 괴물로 착각하고 달려들다가 온몸이 으스러지고 술집을 성으로, 작부를 공주로 알고 청혼하다가 귀싸대기를 얻어터진다. 작품 내내 비슷한 짓거리를 반복한다. 자기가 미쳤다는 걸 자기만 모른다. 독자는 그런 주인공을 보면서 처음엔 한심함을 중반엔 연민을 느낀다. 그러다가 후반부로 갈수록 응원을 보내기 시작하고 정신차려보면 그 미친놈한테 감동 받는 자신을 발견한다. 불굴의 의지와 이상을 향한 집념에 갈채를 보내는 것이다. 남들이 미쳤다고 손가락질하는 게 대수랴, 내가 믿는 게 진리라면 길을 밟아 끝없이 전진할 뿐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가슴 속에 돈키호테를 한 명씩 키우고 있다. 그 또라이의 뻘짓거리에 눈물 흘리는 이유일 거다.

여긴 미술관 옆 표트르 대제의 겨울궁전이다. 제국의 황제치고는 소박하게 살았다.

이 겨울궁전 외에도 여러 별관이 있다. 하루 안에 다 보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

미술관 안내도. 잘 안 보여서 아래 이미지로 대체한다.

 러시아 미술관이라고 러시아 작품만 있는 게 아니다. 피카소 마티스 고흐를 비롯 동유럽 서유럽 작가들의 작품이 시기별로, 심지어는 중동 중앙아시아 코카서스 고대이집트의 작품까지 소장하고 있다. 대개 약탈이라는 방법을 통했을 것이다. 혹자는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 빨려들어간 작품들을 본국으로 송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나는 그럴 필요 없다고 생각한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일종의 변형된 pc주의, 즉 약소국의 자기변호 혹은 강대국의 자비에 기반한 논리로 밖에는 안 보인다.

 '원래 있을 자리를 찾아가야 한다'가 그들 주장의 근거인데, 이유가 없다. 왜 그래야 하는지는 '원래 거기 있었으니까'가 답이다. 무슨 바보들의 대화도 아니고. 그냥 단순히 고국의 품으로 돌려줘야한다는 논리다. 이런 감성적인 소리에 넙죽 가져가라고 내어주는 나라가 어디있겠는가. 애초에 '원래 있을 자리'부터가 명확하지 않다. 프랑크 왕국에서 빼앗은 작품은 독일 이탈리아 프랑스 네덜란드 중 어느 나라에게 돌아가야 하는가? 저 네 나라 모두 프랑크 왕국이라는 한 나라에서 갈라져 나왔다. 작품을 빼앗겼던 지역을 현재 차지하고 있는 국가에게 돌아가야 한대도 문제가 있다. 당시 지역을 다른 나라가 통치하고 있었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게다가 작품을 만든 작가가 제 3국 사람이면 문제는 더 복잡해진다. 유럽은 우리나라 같은 단일민족 국가가 아니다. 이탈리아 피와 프랑스 피가 섞인 네덜란드 국적 작가의 작품을 독일에서 빼앗겼다면 이건 대체 누구한테 줘야한단 말인가. 작품 하나하나가 이보다 더한 논쟁에 휘말릴텐데 이 짓을 어느 세월에 하고 앉았어. 시간 투입한다고 명확한 해결법이 도출되지도 않는다. 그 오랜 세월 동안 또 다른 전쟁과 약탈이 일어나지나 않으면 다행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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