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목적지에 도착했다. 꿈에 그리던 그 양반이 살던 곳에 말이다. 사실 진짜 생가엔 사람이 살고 있는지 여기는 박물관 겸해서 전시해놓은 곳이다. 대신 도스토예프스키가 실제로 사용한 책상 연필 의자 담배 옷 등을 가져와 그 위치, 모양 그대로 방에 배치해둬서 감동을 느끼기엔 충분하다.
아, 입장료를 받는다. 사진 맨 위 허연 종이가 입장권 영수증이다. 100루블, 한화 2000원 정도로 비싸진 않다.
-학생이지?
-오냐
-학생증 보여줘라
-국제학생증 아니라 걍 우리나라에서 쓰는 학생증이다
-시끄럽고 걍 줘봐라
난 국제학생증을 발급 받지 않아서 애초에 할인은 염두에도 안 뒀다. 그래도 밑져야 본전이라 한국에서 쓰는 내 동국대 학생증을 내밀었다. 매표원이 대충 슥 보고는 '오키' 하고 할인된 가격으로 입장권을 끊어줬다. 헐? 이후에도 이 학생증 덕을 몇 번 봤다. 에르미타주 미술관은 아예 무료로 관람했고 네바 강 보트도 할인가격으로 탈 수 있었다. 그다지 규정에 빡빡한 나라가 아니다. 개이득. 감사감사 외치고 가방이나 소지품을 맡긴 후 입장한다.
기념관은 총 3층이다. 1층은 매표소 및 물품보관소, 2층은 박물관, 3층은 생가. 아래는 2층 전시품 몇 점이다.
뭔지 모를 문서들. 러시아는 친절한 나라가 아니다. 영어 설명 따위 없다. 알아서 눈치껏 가늠해야 한다. 답답해 뒤지겠다.
이게 뭔지 도저히 모르겠다. 저기 'ІОВА'는 구글 검색해보니 성경의 '욥기'다. 도스토예프스키가 들고 다녔나보다. 다른 것들은 소설 초판 인쇄본이라고 추측만 해본다.
이건 알겠다 ㅋ 표도르 미하일로비치 도스토예프스키. 도스토예프스키가 1821년생이니까 왼쪽은 1862년 41살, 1879년 58살 때다. 대문호도 머머리의 저주는 피할 수 없었다.
1880년 59세. 1년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머리가 눈에 띄게 사라졌다. 바로 최후의 걸작 '까라마조프 씨네 형제들'을 탈고한 해다. 이미 몸이 많이 안좋아 보인다. 이듬해 사망.
도선생이 애용하던 도박 장비(?)들. 이 양반은 도박을 너무 좋아해서 집도 절도 다 날려먹었다. 나중엔 도박 자금을 벌려고 소설을 썼다. 빚 독촉에 시달리고 출판사 마감 기일에 맞추느라 속기사를 고용해 자기가 부르는대로 받아적게 해서 소설을 완성하기까지 했다(나중에 그 속기사와 결혼한다 ㅋ). 골때린다 정말. 그런 얘기를 담은 작품이 '노름꾼'이다. 돈 때문에 대책 없이 출판사에 책 내겠다고 약속부터 해놓고 위 방식으로 27일만에 완성했다고 한다. 읽고 있으면 한심류 갑 그 자체다. 개꿀잼.
아마 '백치'인 듯하다. 맨 오른쪽 칸은 주인공이 스위스에서 요양하던 모습, 가운데는 열차에서 만난 사람들과 먼 친척들의 모임.
이건 죄와 벌인가. 하숙생 라스콜리니코프가 주인집 노파를 살해한 건물로 추측된다. 소설에 묘사된 장면이 겹쳐보인다. 벌건 대낮에 사람 죽이고 길거리를 활보하던 무직 청년의 심리가 작품에 고스란히 녹아있다.
위 모형 건물 안쪽에서 보면 이렇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출생증명 및 등록에서 발췌'라고 적혀있다.
스트라빈스키 가(街)의 집.
박물관답게 수학여행 온 현지 중고딩들이 많이 보였다. 걔들에게 도스토예프스키는 그저 역사 속 여러 위인 중 하나에 불과한가보다. 연신 하품만 하고 별 관심을 안 보인다. 선생님만 혼자 열심히 떠든다. 오히려 지구 반대편에서 온 나에게 더 관심이 많아보였다. 하긴 나도 저만할 때 박물관 가면 위인이고 뭐고 나가서 놀 생각만 했던 것 같다. 애들이 점점 떠들기 시작해서 3층으로 이동.
인형과 목마가 있는 걸 보면 도스토예프스키의 딸과 아내가 사용하던 방인 듯하다. 저기 의자에 놓인 인형이 무섭게 생겼다. 애기들은 왜 저런 걸 좋아할까.
탁자와 의자
읽을 수가 없다. 러시아어 공부 좀 하고 올걸.
도스토예프스키 책상인가 아내 책상인가. 도스토예프스키 사진을 올려둔 걸 보면 아내 책상인 것 같기도 하고.
여기선 뭘 먹었을까.
도선생 가족사진.
아, 여기가 도스토예프스키의 방인가보다. 저기서 그 많은 작품을 집필했겠지. 내부는 못 들어가게 막아뒀다. 멀리서 사진만 찍을 수 있었음.
중앙에서 약간 오른쪽에 놓인 의자에서 쉴 수 있다.
거실인듯. 도박빚에 시달린 것 치곤 꽤 큰 집에 살았다.
다리 아파서 위에 보이는 녹색 의자에 앉았다가 관리인 아주머니에게 한 소리 들었다ㅋㅋㅋㅋ
탁자 위의 담배. 이걸 즐겨 피웠다고 한다. 무슨 맛일까.
친절하게도 영어 안내책자가 있다.
1870년대 후반 도스토예프스키는 러시아 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유명한 작가가 됐다. 1878년 러시아 왕립 과학아카데미는 도스토예프스키를 러시아문학회 회원으로 선출했다. 이듬해 국제문학 어쩌고저쩌고 추대됐으며 세계 여러 작가들과 활발하게 교류했다 등등 이런저런 뻔한 얘기다.
멋진 모자.
박물관을 나서며.
도스토예프스키 연필, 엽서, 냉장고 자석 등의 기념품을 몇 개 샀다.
박물관에서 구매한 엽서 포장지에 '죄와 벌' 실제 배경의 약도가 그려져 있다. 꽤 멀지만 가볼만한 가치는 충분하다!
'로씨야 여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18. 05. 18 멋진 신세계 (0) | 2019.01.23 |
---|---|
2018. 05. 17 뻬쩨르부르그 사람들 (0) | 2019.01.02 |
2018. 05. 17 두 작가 이야기 (0) | 2019.01.02 |
2018. 05. 16 구운몽 (0) | 2018.12.31 |
2018. 05. 16 이방인 (0) | 2018.12.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