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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by TheStrok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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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크렘린을 나와 지하철 역으로 가는 길에 찍은 모스크바 시내. 생각보다 조용하다. 클락션 소리 하나 없네.

 아 맞다, 이거 보니 생각나는 러시아 도로 특징 하나. 무조건 보행자 최우선이다. 횡단보도에서 길 건너려고 서있으면 20미터 앞에서부터 차가 멈추기 시작한다. 처음엔 나 때문에 멈추는지 몰랐다. 저 앞에 누가 또 건너나 싶을 정도로 멀리서부터 감속한다. 의외로 배려심이 대단한 사람들이구나. 그래서 종종 운전자들이 빡칠만한 상황이 발생한다. 횡단보도 빨간불인데도 보행자들이 걍 건너는 것. 이거 처음에 보고 문화충격이었다. 물론 우리나라도 무단횡단이 있지만 그렇게 뻔히 차 다니는데 대놓고 길 건너진 않지 않은가? 근데 여긴 무조건 보행자 최우선이라 저런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그러면 다혈질의 불곰국 운전자는 빡쳐서 창밖에 대고 뭐라뭐라 소리치지만 보행자 역시 같은 종족이기에 일상적이라는듯 쌩까고 갈 길 간다ㅋㅋㅋㅋㅋ

 아무튼 저 모스크바 시내 중심에 어마어마하게 큰 동상이 하나 있다. 크다는 말로 설명이 안된다. 거대하다. 강남 코엑스의 봉은사에 있는 불상만하다. 아니 그것보다 좀 더 큰가. 찍으려면 허리를 꺾어서 위로 쳐올려야 할만큼 조온나게 커. 들은바로는 모 전쟁 당시 러시아를 수호했던 종교인이었다고 한다.

 그렇게 러시아 거리를 따라 걸으며 지하철역으로 향한다. 목적지는 이즈마일로보 시장. 기념품을 사야하니까.

여긴 시장 근처 파르티잔스카야 역이다. 웬 열차가 전시되어있다. 이미 퇴역하고 안 쓰이는 기종인 듯하다.

 역 이름 답게 요런 게 있다. 파르티잔(비정규군)은 우리나라 말 빨치산의 어원이다. 쟤들이 파르티잔인갑다. 듣던대로 지하철 역 안에 별의 별 작품들이 다 있구나. 작은 미술관을 연상케 한다. 저기 기둥이나 벽의 대리석도 멋지지 않아? 나만 멋있나. 역시 모름지기 국가의 역사라 함은 굵직굵직해야 한다. 남에게 침략 당하면 그만큼 갚아주고 한번 본때를 보여주는 그런 패기가 있어야지. 그래야 정치, 경제, 군사적 힘이란 게 생긴다. 정복과 경쟁에 기반하여 그를 주제로 한 소설, 미술, 음악 등의 문화도 꽃필 수 있다. 허구한 날 쥐어터지기만 하면 피해의식이나 가득한 찐따 국가가 되어버린다.

밖으로 나와서 15분 정도 걸으면 이즈마일로보 시장이 보인다. 다른 블로거들은 저 뒤편 놀이동산 처럼 생긴 부분에 포커스를 맞춰 사진을 찍었다. 나도 거길 보고 싶었으나 길을 못 찾았다. 여기는 후문이다.

 생각보다 한산하다. 아니나 다를까 오늘이 휴일이랜다. 아 조졌네. 그래도 몇 점포는 운영한다고 하니 들어가보자. 좋은 점도 있다. 원래 입장료를 받지만 휴일은 안 받는다는 거 ㅋ

영상에서 말했듯 마트료시카를 사러 왔다. 마트료시카는 러시아 전통 인형으로

이런 엄마 인형을

이렇게 열면 안에서 또다른 인형이 나온다. 반복하면

짜자잔. 이렇게 총 열 개의 목재인형이 겹쳐져 있다. 풍요와 다산의 상징이다. 예상보다 가격이 비쌌다. 하나에 약 3만원 돈이다. 시장에 가기 전 어떤 블로그를 검색해보니 러시아어를 잘 못하는 외국인에게는 바가지를 씌운다는 얘기가 있다. 어느나라든 시장은 다 비슷한가.. 그러고서는 아무리 비싸도 절대 1000 루블(20000원) 이상은 주지 말라는 얘기도 적혀있다. 근데 내가 간 가게는 1500루블(3만원)을 부른다. 아오 이새끼 누굴 호갱으로 아나 다른 가게로 가자. 근데 이상하게 옮긴 가게도 저런 퀄리티의 마트료시카는 죄다 비슷한 가격을 부른다. 마트료시카라고 다 같은 마트료시카가 아니다. 당연한 얘기지만 공장에서 기계로 찍어낸 무늬의 마트료시카는 수작업으로 그린 그림이 그려진 마트료시카보다 싸다.+안에 들어있는 인형 개수가 많을수록 비싸다. 난 손수 그린 고퀄리티의 10개짜리 인형을 갖고 싶었으므로 어느정도 가격은 감수해야 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50% 이상을 더 부르냐? 괘씸하여 '다른데 둘러보고 올게요' 시전하고 조금이라도 더 싸게 부르는 곳을 찾아 헤맸다. 하지만 죄다 비슷하다.. 이게 뭔 일이지.. 일단 현금부터 인출해와서 쇼부를 봐야겠다. ATM이 있는 근처 특급호텔로 향한다. 다리 아파서 호텔 의자에 앉으려고 다른 중국인 관광객과 일행인척 했다 ㅋㅋ 러시아인들이 보기엔 비슷하게 생겼으니 뭐라 안하겠지. 편안한 쇼파에 앉아 느긋하게 마트료시카 정보를 알려준 그 블로그에 다시 들어가봤다. 게시물을 한번 자세히 다시 보니.. 무려 무려 8년 전 글이었다. 에라이 이게 무슨.. 그동안 물가가 올라도 두 배는 올랐을 거다. 다시 최근에 게시된 다른 블로그 글들을 읽고 대충 가격을 파악해보니 1500루블이면 거저다 거저ㅋㅋㅋㅋㅋ 아이고 상인 마음 바뀌기 전에 빨리 가자! 시장에 돌아가니 마침 상인들이 폐점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일단 얼른 마트료시카를 샀다. 내꺼, 집꺼, 친구 두 놈꺼 해서 총 네 개. 마감 중인 가게에서 떨이로 자그마한 인형도 하나 구했다.

내껀 뒷편의 검정 황금 마트료시카다. 앞줄 왼쪽은 떨이로 산 인형, 오른쪽은 친구 주려고 산 마트료시카다.

시장을 나서니 목이 마르다. 레쓰비가 간절했다. 근데 없다. 이런 망할. 하는 수 없이 물을 마시며 근처 공원에서 길거리 공연을 보며 쉰다. 쇼핑이 생각보다 빨리 끝나 시간이 붕 뜬다. 어디갈지 고민하다가 숙소 근처에 도스토예프스키 박물관이 있다는 걸 발견했다!! 좋아 여길 들렀다가 숙소로 돌아가면 되겠구나. 무조건 가자. 내 인생의 영웅을 보러 가자. 목적지는 도스토예프스카야다. 역 이름부터가 도스토예프스키 냄새가 물씬 난다. 러시아에서 '카야'란 이름은 '~의 딸'에 붙이는 이름이다. 즉 '도스토예프스카야'는 도스토예프스키의 딸이다.

도스토예프스카야 역 내부. 어디선가 음산한 음악이 흘러나온다. 한 음악가가 라이브로 연주하는 소리였다. 보다시피 역의 기둥 벽면에 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이 새겨져있다. 도선생 덕후인 내게는 천국 같은 곳이다. 그림이 너무 커서 한 컷에 잘 안 잡힌다. 전부 나오게 찍으려면 선로로 내려가야 한다. 그러면 연합뉴스에 '모스크바에서 한국인 관광객 열차사고로 사망(1보)'이 뜨는 참극이 벌어지겠지.

소설 제목이 러시아어로 적혀있지만 난 읽지 못하기에 벽화만 보고 유추해본다. 위 사진은 '악령'인 듯하다. 대부분의 도스토예프스키 소설이 그렇지만 이건 특히 더 어둡고 침울하다. 개인적으로 '까라마조프씨네 형제들' 다음으로 좋아하는 작품.

그렇다면 얘는 스타브로긴이겠지.

이건 백치인가? 가장 감흥 없이 읽은 건 이거다. 너무 흔한 스토리란 말이지. 이외에도 죄와 벌, 까라마조프씨네 형제들 등의 작품도 새겨져있다. 핸드폰 배터리가 간당간당 해서 사진은 못 찍었다.

아저씨 안녕하세요.

지하철역을 나와 박물관 가는 길에 있는 러시아군 중앙아카데미극장. 건물이 굉장히 크다. 여기서 약 10분 정도 룰루랄라 뛰다시피 걸으니

우와악! 담 너머로 도스토예프스키 센세의 모습이 보인다. 흥분에 휩싸여 내달았다. 그러나... 당최 입구가 어딘지 안 보인다. 30분 정도 크게 뺑글뺑글 돌다가 입구를 겨우 찾았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들어가지 못했다. 입구는 굳게 닫혀있고 주변은 차가운 쇠창살로 막혀있다. 아.. 이게 아닌데. 입구의 경비에게 사정사정 했지만 서로 알아들을 수 없는 말만 주고 받는다. 번역기를 돌리려 해도 무슨 일인지 인터넷 연결이 안된다. '이 사람 보러 정말 멀리서 왔다' 얘기하고 싶었으나 경비가 알아들을리 없다. 계속 '짜아트라' '짜아트라'만 반복한다. 대체 빌어먹을놈의 짜아트라가 뭐냐고요. 경비는 사람 좋은 웃음으로 '미안하지만 안된다'라고 반복하는 듯했다. 사진 한장만 찍게 해주세요 해도 말이 안 통하니 원... 나중에 알고보니 내가 간 시간이 너무 늦어서 관람시간이 이미 끝나버린 것이었다. 염병할 '짜아트라'는 바로 '내일'을 뜻했고. 인터넷이 안 된 이유는 선불 데이터를 다 소진해서였다. 참... 아쉽기 그지없었다. 물론 모스크바의 도스토예프스키 박물관보다는 다음날 방문 예정인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도스토예프스키 생가가 훨씬 의미 있는 장소였기에 크게 절망하진 않았다. '오늘 못 다 본 도선생의 기록은 내일 하루종일 봐주마'라고 다짐하며 발걸음을 돌렸다. 그래도 아쉬운 건 어쩔 수 없다. 쇠창살 담을 부여잡고 멀리 있는 그분의 동상만 하염없이 바라보다 돌아왔다. 흑..

숙소로 돌아가는 길, 환승 역에서 마주한 길거리 악단. 공연값으로 100루블을 주고 사진과 동영상을 찍었다. 러시아는 곳곳에서 이런 길거리 공연이 이루어진다. 근데 시민들은 별 관심 없다는 듯 지나친다 ㅋ 하긴 차이코프스키와 라흐마니노프의 음악을 듣고 자란 이들에게 이런 대중음악은 애들 장난으로 느껴질지도. 록의 본산지인 영국이면 모를까 러시아에서 락은 큰 임팩트가 없다.

숙소 복귀하는 길에 근처 휴대폰 통신사 대리점에 들러 선불데이터를 충전했다. 난 국내 통신사의 와이파이 에그나 도시락 대신 러시아 통신사(MTC)의 심카드를 구매해 충전해가며 사용했다. 실컷 재밌게 여행했는데 귀국해서 요금 폭탄 맞으면 기분 더럽잖아. 미리 선불 충전해서 정해진 만큼만 사용하는 편이 속편하다. 충전이 어렵지도 않다. 시내 곳곳에 대리점이 있고 지하철 역사 내에도 충전 기기도 있다. 대리점 직원이 매우 친절하게 하나하나 알려줘서 무사히 충전할 수 있었다. 영어도 할 줄 아는 매우 똘똘한 친구였다. 그렇게 터덜터덜 숙소로 복귀한다.

다시 온 숙소 옆 레스토랑. 시간이 늦어서 식사는 안되고 술과 간단한 안주만 주문이 가능했다. 어쩔 수 없이 맥주와 보드카, 육포로 배를 채운다. 저래봬도 저게 러시아에서 가장 인기 많은 맥주다. 웨이터한테 그렇게 요청했거든ㅋ 하루 종일 돌아다녀 땀 뻘뻘 흘리고 피곤한 상태에서 뜨거운 물로 샤워를 따악 하고 마시는 맥주, 캬 그게 바로 인생의 진리다. 빠듯하고도 꿈 같은 하루였다. 잘 시간 따윈 없다. 걷고 놀고 먹고 마실 시간도 부족한걸! 꿈 속에서라도 둘러보고 싶은 그 땅에 와있는데. 깨어있는 동안 꿈 같았다면 그게 바로 숙면일지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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