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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heStrok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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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르쿠츠크-모스크바
고생 고생 개고생의 그 날

드디어 첫 번째 목적지인 모스크바로 떠나는 날이다. 아침 일찍 일어나 샤워를 하고 이르쿠츠크 공항으로 향한다. 어우 아침되니 춥네.

어젯밤 캄캄할 땐 몰랐는데 이제보니 굉장히 시골스러운 분위기다. 몰락한 공산주의 국가의 전형이랄까. 70~80년대 낙후된 한국을 보는 것만 같다. 자동차는 낡았으며 도로 정비도 덜 되어있다. 근데 그게 뭐 중요하냐ㅋ

이르쿠츠크 공항에서 산 물. 러시아에서 주의할 점 하나. 물에는 맹물과 탄산수 두 종류가 있다. 난 맹물을 먹고 싶었지만 말 안 통해서 탄산수를 잘못 골랐다. 탄산 못 먹어서 콜라도 안 먹는데.. 캭.

 아, 그 유명한 바이칼 호수가 바로 이르쿠츠크에 있다. 일정 조금만 길게 잡았으면 구경 가도 좋았을걸. 러시아 여행 중 가장 후회되는 일이 바이칼 호수를 못 가본 것이다. 거기까지 가서 못 가다니. 근데 생각해보니 뭐 별 거 있겠냐 걍 호수지 뭐. 바다만큼 크다는데... 물이 그렇게 맑다는데... 흑. 저 물을 바이칼에서 길어온 거라 생각하며 마셨다.

이르쿠츠크 공항 내부. 모스크바 행 체크인을 하는 곳이다. 여기서 우려했던 일이 터졌다. 여권과 비행기표 이름이 달라서 발권이 안된다는 것. 큰일났다 싶어 부랴부랴 e티켓을 띄워 데스크에 주의사항을 보여줬다.

'여권 속 이름과 티켓 속 이름이 세 글자 이상 다르지 않으면 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라는 내용이다. 이걸 보여주니 그제서야 끄덕이며 체크인을 해준다. 직원이라고 모든 사항을 아는 건 아니다. 천만다행이다. 역시 내 앞길은 내가 챙겨야 한다.

한시름 놓고 2층 커피숍에서 차를 한잔했다. 별로 맛은 없었지만 의자가 매우 편해 좋았다. 맙소사 근데 여기서 어제 비행기 옆자리에 탔던 불곰국 형을 만났다. 나에게 러시아어 회화를 알려주고 음료수 통을 들어 보여준 그 형. 왜 여기있냐 물어보니 환승 때문에 밤새 공항에서 잤단다. 근처에서 숙박하기엔 돈이 아깝다고. 어이고 그거 얼마나 한다고 노숙을 하나 물으려다가 아, 얘는 러시아 사람이지 싶어 그만뒀다. 사실 여기 생필품 물가는 한국이랑 비슷하지만 1인당 국민소득이 우리나라의 3분의 1밖에 안된다. 같은 돈이라도 체감이 다르다. 내가 잔 숙소가 1박에 9000원쯤 했으니 러시아 사람에게는 27000원인 셈이다. 엥 적어놓고 보니 27000원이면 숙소 갈만하지 않나? 모르겠다. 사람마다 사정이 다르니까. 마침 그 형 목적지도 모스크바라 같이 대화 좀 나누다가 갔다. 뭔가 이역만리 외딴 땅에 동맹군이 생긴 것 같아서 든든.

모스크바행 비행기 타러 가는 길. 공항이 오래돼서 터널 게이트가 없다. 영화에서만 보던 이착륙장 버스를 다 타보네.

비행기에서 찍은 팜플렛이다. 사진 속 저 동그란 게 케잌이라고 한다. 예전에 인터넷에서 우연히 보고 러시아 가면 꼭 한번 먹어봐야겠다고 다짐했다. 근데 어디서 파는지를 알아야지ㅋㅋ 일단 스크랩용으로 찍어뒀다. 근데 결국 못 먹음. 양옆 러시아 형 누나들은 대체 이걸 왜 찍나 싶은 눈치다.

약 6~7시간의 비행 끝에




드디어 모스크바 도모데도보 공항에 도착했다. 여기가 불곰국의 수도입니까? 톨스토이의 도시, 2차 대전 탓에 수도가 된 도시, 나폴레옹을 고전시킨 그 도시에 내가 왔도다. 나 빼고 다 서양인이다. 눈알 노란 건 나 혼자다. 난 레어템이다!

아 그 전에 담배부터... 공항 문을 나서마자 흡연구역으로 달려갔다. 아 비행기는 이게 너무 힘들다. 예전엔 흡연석이 따로 있었다던데 왜 없앴나 몰라. 니코틴을 즐기고 사람을 구경하고 건물을 구경하고-근데 감상에 젖을 때가 아니다. 숙소부터 가자! 짐 내려놓고 배 채우고 감상해도 늦지 않아.

공항에서부터 숙소까지는 고속열차, 지하철 환승해서 약 한시간 반 거리다. 택시를 타면 간편하지만 비용도 만만치 않고 바가지 쓸 위험이 있다. 듣자하니 러시아 지하철 역이 그렇게 아름답단다. 요걸 타고 가야지. 근처에서 지하철역 까지 고속열차를 타고 가야 한다.


내가 있는 도모데도보 공항은 맨 아래 오른쪽에서 세번째의 진한 녹색 호선 끝에서 두번째다.

 그리고 목적지는 시내 중심가인 teatralnaya. 단순히 한국처럼 여차여차 타면 되겠지 하다가 안드로메다 가는 수가 있다. 우리나라에선 노선도, 역 이름 같은 글자들 읽어가며 쉽게 탈 수 있지만 러시아에서 난 말 그대로 눈뜬 장님이다. 키릴어를 대충 생긴대로 짐작해보려다가 포기했다. 일단 낯설고 알아먹을 수 없게 생겼다. 게다가 모양은 똑같은데 크기가 다른 글자가 있어서 더 헷갈린다. 위 캡쳐 화면도 겨우 구한 영어 번역본이다. 근데 정작 러시아 지하철 역에는 영어로 안 써있다는 게 함정ㅋ 한 10분 뚫어져라 노선도를 분석했지만 도저히 답이 안 나왔다.

 그때 영어 잘 할 것 같이 생긴 젊은 아랍인이 눈에 띈다. 내 일생을 구하러 온 나의 구원자, 알라신이 저기 계신다. 그는 리비아 출신 무하마드란 청년이었다. 정말 착했다. 눈망울이 너무 선했다. 근데 왠지 모르게 경계하고 두려워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모르긴 몰라도 아랍 사람이라 이런 저런 차별이나 고충을 많이 겪은 모양이다. 어디까지나 내 추측이지만 괜히 불심검문도 당하고 테러리스트로 오인도 받았나보다. 같이 열차를 타고 가면서 대화를 나누는데 말 속에 그런 감정이 묻어났다. 날 환승역까지 직접 데려다주고 열차 타는 곳, 방향, 몇 정거장 뒤에 내려야하는지까지 다 알려줬을 정도로 친절했는데 말이다. 너무 고마워서 사진 한장 찍어 간직하고 싶었지만 거절당했다. 내가 나쁜 놈으로 보였는지도.

 무함마드는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산다고 했다. 모스크바엔 잠깐 여행 온 거라고. 상트와 모스코 중 어디가 낫냐고 묻자 주저없이 상트를 택한다. 도시 곳곳에 퍼져있는 강줄기가 그렇게 아름답단다. 내 모스크바 다음 목적지가 상트페테르부르크라 더욱 기대됐다. 나는 한국에서 왔다고 하자 갑자기 엄청 반가워하는 기색을 비친다. 오잉? 그러고는 롤이니 배틀그라운드니 오버워치니 하는 게임 이야기를 쏟아낸다. 어떤 프로게이머 아느냐, 너도 게임 잘하느냐 등등 신나서 떠든다. 역시 남자는 게임으로 하나가 되는 것인가. 근데 무함마드, 미안해. 모든 한국인이 게임을 좋아하진 않아. 나는 게임을 정말 더럽게 못하고 별로 좋아하지도 않는단다. 그래도 그 설레고 기뻐하는 모습을 계속 보고 싶어서 게임중독자 코스프레를 해줬다. 참 러시아에서 별짓 다하네.



모스코 외곽인 공항에서 중심으로 가는 길. 고속열차에서 찍은 바깥 풍경이다. 러시아는 면적이 워낙 넓어서인지 시외지역은 전체적으로 관리가 덜 된 모습이었다. 광활한 땅덩어리를 일일이 돌보는 일이 애초에 가능하지도 않겠지만. 곳곳에 깔끔하지 못한 풍경이 눈에 띄었다. 열차는 어느새 pavelskaya에 도착했다. 여기서 지하철로 환승한다. 

무함마드의 도움을 받아 교통카드를 구매했다. 하얀 건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충전식 교통카드, 빨간 건 모스크바에서 사용하는 1회용 카드. 우리나라 지하철에서 파는 1회용 교통카드랑 비슷하다. 환급받을 수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난 기념삼아 가져왔다. 무함마드는 내가 가야할 곳까지 알려주고 열차 타는 것까지 본 후에 손을 흔들었다. 이제 작별이다. 안녕. 행복하렴. 복 받아라.



지하철 역 내부.

러시아 지하철 특징
1. 듣던대로 역 자체가 하나의 예술작품이다. 천장, 벽 무늬 하나하나 허투루 새기지 않았다.
2. 역의 깊이가 어마어마하다. 우리나라에서 제일 깊은 역 다 갖고 와도 상대가 안 된다. 러시아 돌아다니는 동안 가봤던 모든 지하철역이 굉장히 깊었다. 구 소련 시절 핵전쟁에 대비하다보니 이런 모양을 띄게 됐다고 한다. 미사일 몇 개 정도는 우습게 막는다고.
3. 에스컬레이터가 엄청 빠르다. 위 세 번째 사진을 보라. 사람 잔상 남을정도다. 근데 러시아 사람들은 이것도 느리다며 뛰어댕긴다.
4. 배차간격이 무지 짧다. 열차 놓칠까봐 뛸 필요 없다. 가자마자 바로 다시 온다.
5. 열차 내부가 더럽게 시끄럽다. 이거 가다가 박살나는 거 아닌가 싶을정도로 우당탕탕 소리가 작렬한다.
목적지는 생각보다 가까웠다.


지하철 역을 나서자마자 탄성이 절로 나왔다. 말도 안된다 이건. 눈 돌리는 모든 곳이 작품이다. 생전 처음 보는 광경이다. 바로 위 그리스 신전같이 생긴 곳이 그 유명한 볼쇼이 극장이다. 여기서 발레 공연 하나 봐야겠다고 다짐한다. 휴대폰 배터리가 얼마 없었지만 어차피 숙소가 가까웠고 머릿속에 지도도 다 외워뒀기에 별 걱정 없었다. 배터리 다 닳을 때까지 사진 찍고 열심히 일기 썼다. 웬걸 그게 문제였다. 모든 비극은 스마트폰을 챙기지 않은 탓에 탄생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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