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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by TheStrok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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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작정 도스토예프스키의 숨결을 느끼겠다고 찾아간다. '상처받은 사람들' 마지막장 덮자마자 결심했다. '아 이건 가야된다'. 그 즉시 휴대폰을 들고 3일 뒤 뜨는 비행기를 예매했다. 아무 대책 없다. 일단 가자고. 숙소 예약이나 준비물은 지금부터 챙기면 된다.

 막상 출발 하루 전날이 되니 엄청 긴장된다. 혼자 여행, 그것도 밑도 끝도 없이 낼모레 출발하는 비행기 표를 끊었으니 사전준비 만무하다. 평소에도 혼자 국내 여행 다니고 대책 없이 떠다는 방랑을 좋아해서 해외도 쉬울 줄 알았다. 근데 해외여행, 특히 다른 문화권 여행은 차원이 다른 문제다. 우선 모든 게 불확실하다. 내 생명과 재산의 안위가 불안정하다. 러시아는 한국만큼 안전하지 않다. 치안은 당연히 불안하고 경찰은 더 믿으면 안된다고 한다. 특히 지하철이나 버스 같은 혼잡한 장소, 관광명소엔 소매치기가 드글드글하다. 2018 러시아 월드컵 기간이라 북적이는 인파를 노리고 프랑스, 이탈리아 소매치기들이 원정까지 왔단다. 미치겠네. 그 새끼들은 왜 그러고 사는지 인간 본성에 대한 의문마저 든다. 여기에 백인우월주의, 극우단체 스킨헤드라도 마주치면 정말 목숨을 부지하기 어렵다. 아시아인이 무차별적으로 폭행 당해서 사망했다는 뉴스도 한 둘이 아니다. 말도 안 통한다. 러시아 사람들은 만국공용어인 영어를 거어어의 못 한다. 그렇다고 내가 영어를 잘하는 것도 아니다. 난 한국말도 겨우 한다. 이런 이유들 때문에 진짜 출발 전에 너무 두렵고 떨려서 한 이틀 밥도 못 먹고 담배만 뻑뻑 펴댔다. 잠 못 잔 건 당연하다. 자려고 누우면 머릿속에서 부정적인 것들만 맴돈다. 잊어보려고 재밌는 예능을 틀어도 눈과 귀에 들어오질 않는다. 살면서 이렇게 스트레스 받은 적이 있었나 싶다. 좀 더 솔직해지자면 인천공항 가는 지하철에서 내가 보는 이 풍경을 다시 볼 수 있을까 하는 바보같은 생각도 들었다. 이쯤되면 대체 왜 가는지 궁금하다. 이런 스트레스 받으면서까지 굳이 왜?

 물론 첫번째 이유는 도스토예프스키를 만나기 위해서다. 내 인생 최고의 소설가니까. 두 번째 답은 '그래도'다. 그래도 극복해보고 싶었다. 회사 자소서 쓸 때마다 '인생 최대의 고비'를 묻는 칸에 '난 그딴 거 없다. 순간 순간이 고비고 도전이다'고 적어왔다. 아니다. 시부랄 이 러시아 여행이 내 인생 최대의 고비다. 난 이 두려움을 깨부수고 혈혈단신 세계 속을 누벼야 한다. 그래야 한 단계 성장할 수 있다고, 그런 생각이 든다. 아무리 상황이 극단적이라도 그래도 가야한다. 결정적으로(좀 뜬금 없지만) 유튜브에서 본 우주의 끝을 찾아서 라는 다큐멘터리에서 용기를 얻었다. 아니 시발 내가 영영 돌아올 수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는 달나라나 명왕성 가는 것도 아니고 같은 지구, 사람 사는 곳 가는데 뭐 그리 쫄고 앉았나 싶었으니까. 나 자신이 되게 한심해보였다. 요 이틀 간 스트레스 받으면서 머릿속을 계속 울린 노래 가사 한 소절이 있다. '일어나지도 않은 일 미리 걱정 말라고' 그래서 지금 난 러시아행 비행기에 오른다. 까라마조프 씨의 형제들을 만나러.

 

16:55 이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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