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마시기 좋은 계절이다. 어디서 어떻게 무엇을 마시면 더 좋을지 술 애호가에게 물었다.
광화문 한복판, 한낮에 우두커니 서 있게 될 때가 있다. 골목골목 카페가 촘촘히 박혀 있지만, 쾌적하게 원고 작업을 할 만한 공간이 의외로 없다. 포시즌스호텔 서울 2층 바 보칼리노에서 오후를 보내는 것은 그래서다. 낮의 바가 어떤지는, 이전에는 알지 못했다.
손님은 나뿐이다. 조용한 라운지 음악과 층고가 높은 시원한 통창을 통해 들어오는 햇살, 바 테이블의 높이, 의자의 각도나 경도도 모두 마음에 든다. 적당한 칵테일을 골라 마시며 천천히 작업하기에 최적화된 공간이다.
심지어 서비스로 주는 올리브 절임이나 시즈닝을 듬뿍 묻힌 견과류까지 맛있다. 가격도 청담동이나 한남동 바보다 저렴하다. 얼마 전부터 정오였던 바텐더 출근 시간을 오후 2시로 조정한 것은 아쉬운 일이다. 이해림(푸드 칼럼니스트)
술을 마실 때 중요한 것은 누가 뭐래도 안주다. (함께 마시는) 사람이 중요하다고들 하지만, 사실 어울리는 안주와 술을 마실 때는 혼자서도 충분히 행복하며, 사람 같은 건 아무래도 상관없게 된다.
나는 주로 소주나 맥주를 마시지만 왠지 주위에는 싱글 몰트위스키를 좋아한다고들 하는데, 실제로 좋아하기도 하고 혼자 간단한 안주를 준비해 마시기에 적합한 술이다.
집에서 구운 재래김을 기름장에 찍어 안주로, 발베니 17년산(더블우드)을 마시면 음, 아빠가 보고 싶은 기분? 정진화(음악가, 콤파스)
동인천에는 비가 오면 유독 생각나는 술집이 줄줄이 있다. 하지만 우리의 발걸음은 늘 ‘다복집’으로 향한다. 사내들이 좋아하는 안주와 술이 가득한 오래된 대폿집이다. 다른 음식점과는 전혀 다른 맛의 스지탕과 소맥의 궁합은 동인천에서만 느낄 수 있다. 소맥을 소주잔에 5:5 비율로 섞어 마시면 새로운 세계를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김선홍(서프코드)
방 안을 뒹굴면서 만화책 보는 것을 인생의 기쁨 중 상위에 둔다. 최근에는 만화방에서 만화책을 보면서 맥주 마시는 게 좋다. 집에서 마시면서 보면 되지 않느냐라고 할 수도 있다. 엄연히 다르다. 같은 짜파게티라도 만화방에서 먹으면 다른 것처럼, 맥주도 만화방이라는 공간에서 대놓고 마시는 쪽이 더 맛있다.
아직 음주를 허용하는 만화방은 많지 않다. 나는 연남동 만화왕의 맥주 한 병+과자 한 개+만화 2시간 패키지를 이용해 꿀맛 같은 시간을 보낸다. 박의령(피처 디렉터)
어디서나 마시는 걸 좋아하는 편이지만, 최근 지나치게 한 가게에 자주 가는 버릇이 생겼다. 마포구의 조그만 술집 ‘락희옥’이다. 이 집에는 어디서도 살 수 없는 특이한 술이 있는데, 바로 사과로 만든 브랜디 ‘락희’다. 간략하게 말하면 한국에서 만든 칼바도스. 아예 가게 이름으로 지은 데는 이유가 있다.
이 술을 만든 증류 장인 이종기와 유성운 씨에 따르면, 이 브랜디는 락희옥을 위해 만든 거라 다른 데는 납품도 하지 않을 계획이란다. 섬진강 벚굴을 안주 삼아 칼바도스를 마시고 싶은 마음에 계속 끌려가고 있다. 박세회([허핑턴 포스트 코리아] 뉴스 에디터)
맥주 배가 작게 태어난 탓에 본의 아니게 ‘소주파’가 되었다. 그러다 보니 알게 된 것. 우리나라 소주부터 일본과 중국 소주, 보드카 등 맑은 독주와 설탕 범벅 도넛이 엄청나게 잘 어울린다는 사실이다. 극강의 달콤함이 독주의 씁쓸한 뒷맛을 날려주는 덕에 술이 끝없이 들어가고, 다른 요리 안주처럼 입안에 텁텁한 음식 맛이 남지도 않는다.
실제로 미국의 보드카 회사인 360보드카에서는 도넛과 보드카의 조화를 인정해 ‘Glazed Donut Vodka’ 제품을 선보였을 정도. 본래 술의 향을 너무 무시하는 것 아니냐고? 글쎄. 첫 잔부터 병의 마지막 한 방울까지 모든 향과 목넘김을 음미할 만큼 세심한 소주나 보드카를 마실 일이 얼마나 있는지 모르겠다.
그럴 거면 위스키를 마셨겠지! 그리고 설탕은 세상의 모든 향과 잘 어울린다. 이건 진짜다. 이마루([얼루어 코리아] 피처 에디터)
낮술 예찬론자를 종종 만나게 되는데 그들을 뒤로하고 아침 술을 조심스레 추천한다. 휴일 조조 영화를 가끔 보는 편인데, 극장으로 가기 전 포켓용 위스키를 준비한다. 얼음이 든 콜라를 사서 위스키를 부으면 약간은 진한 위스키콕이 된다(포켓용 위스키 한 병에 얼음 콜라 두 잔이 적당하다).
모닝커피처럼 아침에 마시는 위스키콕은 유독 입에 착 감기는 것 같다. 와인처럼 나른하게 졸리지도 않고, 맥주를 마신 뒤 화장실이 급해지는 증상도 없다. 특히 술 당기게 하는 장면이 나올 때는 콜라에 담긴 위스키가 더더욱 고맙게 느껴진다. 양우성(사진가)
집 앞 중국 식품점에 첫발을 들여놓을 때는 몰랐다. 앞으로 이곳을 매주 찾을 거라는 걸. 연태고량은 너무나도 빠르게 내 일상에 들어와버렸다. 싸고 향 좋고 금방 취하고 뒤끝 없으니, 술이 가질 수 있는 미덕은 다 갖춘 셈이다.
비싼 술을 마실 정도로 대단한 하루를 보낸 것 같지는 않은데, 소주는 왠지 처량하고 맥주보다는 하드코어하게 취하고 싶은 날, 정답은 고량주다. 마라 수프 넣어 끓인 눅진한 라면 국물과 함께하면 궁합은 백배다.
몸이 따뜻해지면서 취기가 오르고, 홀홀 마시다 바로 잠들어도 아무 문제없다는 게 집에서 마시는 술의 큰 장점. 물론 취중 SNS만 조심한다면! 박선민(마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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캬 술 땡긴다. 올해 안에 꼭 다 가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