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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heStrok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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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상 당했음에도 스포트라이트는 호날두의 것이었다


페페는 경기 종료 휘슬이 울리자 경기장에 쓰러져 연신 구토를 했다.


페페는 부상으로 4강전을 뛰지 못했다. 급히 몸을 추슬러 결승전에 나섰지만 컨디션이 온전하긴 어려웠다. 더군다나 전반 초반 호날두가 부상으로 교체돼 나가면서 심적, 체력적 부담이 더했다. 에이스의 뜻밖의 부상 아웃은 포르투갈의 수비 부담을 키웠고 포르투갈은 수비에 치중하면서 많이 뛰고 빠르게 역습하는 형태로 홈팀 프랑스의 공세에 맞섰다. 포르투갈 수비의 중심으로 양 팀 통틀어 가장 많은 클리어런스(공 걷어내기/12개)를 기록한 페페는 온전치 못한 몸에다 집중된 심리 체력의 소모, 120분의 긴 경기로 게임이 끝나자마자 쓰러져 구토를 쏟아냈다.


페페의 이 마지막 장면은 유로2016 결승전을 가장 압축적으로 설명해주는 모습이다. 호날두의 전반 25분 부상 교체 아웃은 사실상 이날 경기를 끝낼 수도 있는 포르투갈에겐 치명적인 악재였다. 그렇지 않아도 포르투갈은 경기 전부터 객관 전력이 열세라는 평가를 받았다. 선수 구성, 상승 흐름, 홈 이점 등 프랑스의 우세가 점쳐졌다. 여기에 절대적 에이스인 호날두를 경기 초반 잃었으니 치명적 악재라는 표현이 괜하지 않았다. 이번 대회에서 가벼운 몸놀림을 보여준 나니가 있었지만 호날두를 잃은 나니에게 결승전의 모든 걸 기대하기엔 역부족했다.


하지만 이상한 일이었다. 호날두를 잃은 포르투갈은 오히려 보다 강하게 경기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반면 프랑스는 호날두의 부상 교체 아웃 이후 이상할 정도로 집중력이 흐트러지면서 16강 토너먼트 이후 최악의 경기력을 보이고 말았다. 특히 이번 대회를 통해 프랑스 대표팀의 핵심 자원으로 급부상한 파예의 플레이는 최악일 정도로 좋지 않았다. 왜였을까?


호날두 부상이 오히려 프랑스를 망쳤다


호날두의 부상은 오히려 포르투갈 선수들을 뭉치게 했다


심리 요인이 크게 작용한, 예상치 못한 반전이었다. 포르투갈 선수들은 호날두가 부상으로 빠지자 동료의 고통을 대신이라도 하듯 하나 같이 몸을 던지기 시작했다. 호날두란 존재감에다 그가 마지막까지 경기에 나서고자 했던 강력한 의지가 전이된 듯한 모습이었다. 호날두는 전반 8분 무릎을 크게 다쳤다. 쓰러질 때만 해도 다시 못 뛸 것 같았는데 호날두는 곧 붕대를 싸매고 돌아와 다시 뛰었다. 그리고 버티고 버티다 25분 끝내 쓰러져 들 것에 실려 나갔다. 호날두는 눈물을 쏟아냈다. 19살 이후 다시 한 번 유로 결승전에 섰지만 제대로 뛰어보지도 못하고 물러서야 하는 복받친 감정의 눈물이었다. 호날두는 그러면서도 나니에게 주장 완장을 건네 채워주며 싸움의 의지를 전달하는 걸 잊지 않았다. 주장 완장을 전해 받은 나니가 소리를 지르며 각오를 다잡은 것이며 포르투갈 동료들이 하나 같이 싸움의 의지를 밝히는 모습에서 지켜본 호날두의 전이였다. 페페는 그렇게 토가 쏟아질만큼 뛰었다.


프랑스에게 최악은 파예의 급격한 위축이었다. 전반 8분 호날두의 무릎에 충격을 가한 게 파예였다. 파예가 태클로 공을 치고 나가다 반대 다리가 호날두의 왼무릎을 누르고 들어갔다. 고의성을 따지긴 어려웠지만 파예는 이 플레이 이후 급격하게 자기 페이스를 잃고 말았다. 파예의 강점은 상대의 좁은 공간에서 탈압박해 나오는 능력과 패싱력이다. 전담 키커로 패싱의 정확도와 감각이 탁월한 미드필더다. 하지만 파예는 호날두와의 충돌 이후 자기 플레이를 하나도 보여주지 못했고 결국 후반 초반 교체돼 나오고 말았다. 


프랑스로선 파예의 플레이가 막힌 게 최악이었던 건 포르투갈 선수들이 호날두 부상 아웃 이후 자기 진영으로 깊숙이 내려서면서 수비 공간을 최소화시켰다는 것이다. 움직일 공간이 넓지 않았기 때문에 프랑스로선 파예의 탈압박과 플레이메이킹 능력이 더욱 절실했지만 파예가 아무것도 하지 못하면서 무너지고 말았다. 파예는 끝내 호날두를 다치게 했다는 심리적 미안함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결과적으로 호날두의 부상 아웃이 포르투갈 선수들에겐 절박한 순간 뭉치는 계기가 됐지만 프랑스 선수들에겐 긴장의 끈이 풀어져 늘어지게 하고 호날두를 다치게 한 파예에겐 위축을 주는 안 좋은 흐름으로 이어지고 만 것이었다.


정신력에 대한 오해


심적 부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경기를 망친 파예(오른쪽)


한국축구에선 언젠가부터 심리, 정신력 하면 옛것으로 치부하는 경향이 있다. 그도 그럴 것이 과거 한국축구가 체력이나 기술 준비는 충분히 하지 않은 채 ‘이를 악 물고 싸우거나  배고픔을 강요하는’ 쥐어짜는 정신력만을 강조하면서 생겨난 일종의 반발이다. 이를 악 물거나 헝그리 정신을 강조하는 건 정신력의 하위 단계다. 한국축구가 월드컵서 1승도 거두지 못하고 세계 축구에 쉽게 도전조차 못하던 시절에는 어느 정도 필요한 일이었다. 하지만 더 높은 수준의 상대에 도전하고 싸움을 준비하는 지금은 또 다른 차원의 심리, 정신력이 따라야 한다. 선수 자신과 팀의 현실을 정확하게 직시하는 인지 능력, 그에 따른 고민과 준비의 체계화, 위기와 악재가 발생할 경우 흔들리지 않는 대처, 앞서가고 있다고 넘치지 않고 뒤져 있다고 쫓기지 않는 평정심의 유지, 어떤 상대 어떤 경기에서도 자기 플레이 자기 팀플레이를 유지할 수 있는 실행 능력의 심리, 정신력이다.


호날두가 부상으로 빠지면서 포르투갈과 프랑스를 갈라놓은 결정적인 요인도 바로 여기에 있었다. 포르투갈은 호날두의 부상 아웃이라는 절체절명의 위기와 악재에 흔들리지 않았고 오히려 스스로의 집중력과 싸움 의지를 더하는 자기 동력으로 삼았다. 수비를 강화하는 동시에 평정심을 유지하면서 자신들이 상황에 맞춰 잘 할 수 있는 플레이에 집중했다. 쉽게 느껴지지만 실제 경기 도중 이 같은 돌발 변수를 맞았다면 결코 쉬운 일이 아닌 전환이었다. 반대로 프랑스는 가장 경계했고 대비했던 호날두의 부재라는 돌발 변수에 대처했어야 하는데 아무 것도 하지 못한 채 시간만을 흘려보냈다. 막상 싸워야 하는 상대가 사라지니 뭘 해야 할지 몰라 하는 당혹스러움이었다.


호날두를 쓰러트린 파예는 심적 부담 때문인지 경기 내내 부진했는데 파예를 심리적 안정단계로 돌려놓거나 안 될 경우 적절한 교체를 통해 변화를 주었어야 했지만 이것도 저것도 못한 프랑스였다. 이럴 경우는 누구든 나서 소리치며 동료들을 독려하고 흔들리지 않게 했어야 하지만 프랑스 선수들 중 누구도 그런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데샹 감독도 마찬가지였다. 부상으로 교체돼 나간 호날두가 연장전 들어서 마치 감독처럼 벤치 앞에 나서 소리치던 모습과 대조적인 모습이기도 했다.


사실 이번 대회는 축구의 4요소라 할 수 있는 <전술, 기술, 체력, 심리> 중 준비된 집중력, 정신력, 동기부여 등 심리적 측면이 역대 어느 대회보다 결과에 많은 영향을 끼친 대회다. 선수들의 기술이나 체력 혹은 팀의 전술 면에 있어서는 과거 어느 대회, 어느 팀과 놓고 보더라도 혁신적인 변화가 있었다고는 할 수 없다. 팀마다 “공격적이다, 수비적이다” 라는 식의 차이는 존재했지만 그 바탕의 전술이 혁신적이었던 팀은 없었다. 대회 참가 24팀 중 가장 높은 점유율을 보여준 독일과 스페인은 지금껏 스타일과 크게 다르지 않았으며 점유율에는 신경 쓰지 않으면서 전술 변화와 대응에 뛰어난 모습을 보여준 이탈리아도 유벤투스의 그것 등 과거와 다른 혁신적인 변화는 담고 있지 않았다. 이번 대회를 통해 유로 본선에 사상 최초로 출전해 돌풍을 일으킨 아이슬란드와 웨일스의 경우도 앞서 잉글랜드와 스페인 리그에서 지켜보았던 레스터나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와 크게 다르지 않은 축구였다. 유러피언 스탠다드라는 틀 속에서 찍어낸 듯한 축구(물론 그 완성도에 따른 결과는 갈렸지만)였다. 전체적인 전술의 표준화 흐름이 강했던 유로2016이었다.


축구 4요소


코칭스태프로 변신한(?) 호날두


선수 개인 능력이 뛰어나고 객관 전력이 우세하다는 평가를 받은 팀들은 점유율을 높이고 경기를 지배하며 공격적으로 경기를 풀어나갔다. 반대로 객관 전력이 열세인 팀은 점유율에 연연하지 않는 대신 수비를 견고하게 한 뒤 빠른 역습으로 득점을 노리는 패턴으로 대회를 치렀다. 같은 팀이라도 상대에 따라 전력의 우위가 달라지면 전자와 후자의 패턴을 달리 하기도 했다. 포르투갈이 조별리그 때 아이슬란드를 “수비 축구”라고 비난했지만 포르투갈은 프랑스와의 결승전 때 수비 축구로 승리를 따냈다. 특정한 팀에 특정한 전술이 존재하기보다는 표준화된 전술을 누가 더 잘 구사하느냐가 관건인 유로2016이었던 것이다.


이와 같은 이야기는 유로2016에서 나타난 전술적 흐름이 이전 대회나 프로리그에서 보인 흐름과 다르지 않다는 걸 의미한다. 정보 기술의 발달로 비밀이 사라지고 일상화된 교류와 경쟁의 확장이 가져다 준 전술 표준화의 흐름인데 한편에선 유럽연합의 재편과 이민의 확대 속에서 인적 교류가 지속적으로 늘어나면서 축구 전술과 경기력의 기본 단위라 할 수 있는 선수 자원이 겹쳐지고 있는 걸 전술 표준화의 이유로 들기도 한다. 프랑스 대표팀의 경우는 이미 다민족 선수 구성으로 유명한 팀이며 한 때 게르만 순혈주의를 고집했던 독일 대표팀의 경우도 이번 대회에 출전했던 상당수의 선수들이 다양한 출신의 다민족 대표팀이었다. 스페인계의 마리오 고메스, 터키계의 메수트 외질, 엠레 찬, 폴란드계의 루카스 포돌스키, 세네갈계의 레로이 자네, 알바니아계의 슈코드란 무스타피, 노르웨이계의 베네딕트 회베데스, 튀니지계의 사미 케디라, 가나계의 제롬 보아텡 등이다. 선수 자원이 같아지니 전술도 닮아간다는 것이다.


이번 대회 전술 표준화 흐름이 나타나면서 팀들의 희비를 가르는 중요한 지표 중 하나로 나타난 것이 분명한 동기부여와 싸움에 대한 의지, 변수에 흔들리지 않는 평정심의 유지 등 심리적 영역이었다. 전술이 표준화됐으면 차이를 가르는 건 그 외의 심리적 영역인 것이다. 전술이 특별하거나 혁신적인 것이 없는 상황에서 승패를 가르는 건 누가 준비된 전술을 가장 집중력 있게 실행하는가, 변수와 변화 많은 실전 속에서 어느 팀이 흔들리지 않고 준비된 자기 플레이를 집중시키는가의 심리적 경쟁력이었다. 이번 대회가 선수들의 심리를 통제하는 감독의 능력에 따라 결과가 크게 갈린 것도 이 때문이었다. 사상 최초로 본선 무대를 밟은 분명한 동기부여 속에서 자기들의 축구를 잘 준비하고 구현한 알바니아, 아이슬란드, 북아일랜드, 슬로바키아, 웨일스 등 5팀 중 알바니아를 제외한 4팀이나 16강에 오른 이유 중 하나다. 아이슬란드와 웨일스의 엄청난 응원전과 선수들의 리액션이 담고 있는 경기력 측면의 의미기도 했다. 선수들의 준비 부족, 감독의 통제 부재 속에 무너진 잉글랜드나 체코, 러시아, 터키 등과 대조된 ‘새내기 팀’들 대반전의 바탕이었다.


축구를 못한 잉글랜드는 유로2016에서 실패했다


축구는 전술, 기술, 체력, 심리 등 모든 것이 빠짐없이 갖추어질 때 잘 할 수 있다. 기술이 아무리 뛰어나도 정신력이 받쳐주지 못하면 무너지고, 심리적 준비가 잘 되어 있다 하더라도 기술이나 체력이 뒤따르지 않으면 못하는 게 축구다. 유로 본선 참가팀이 24팀으로 늘어나면서 몇몇 기존 팀들은 대회 경기 질이 떨어졌다는 볼멘소리를 내놓고 있다. 그런데 혹시 경기의 질이 선수 개개인의 이름값과 기술을 말하는 것이라면 그것이 답일 순 없다. 축구는 전술, 기술, 체력, 심리 어느 것 하나 빠지면 잘 할 수 없다. 한 두 개만 잘한다고 으스대다 망신당하기 쉽다. 24팀으로 참가팀이 확대된, 전술 표준화 흐름이 어느 때보다 뚜렷했던 유로2016이 보여준 일이다.


축구를 잘 한다는 건 그렇게 전술, 기술, 체력, 심리 모두를 잘 한다는 것이다. 어느 하나라도 못하면 축구를 잘 한다고 할 수 없다. 축구를 못하면 누구처럼 그렇게 지는 것이다.

박문성 해설위원 포스트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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