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날 점이 생겼다. 내 얼굴 오른쪽 구렛나루 바로 옆에 그것도 아주 까맣게. 자고 일어났는데 갑자기 난 거다. 분명 어제 저녁엔 없었는데. 하루만에 점이 생긴다는 게 말이 되는가? 황당 그 자체다. 피부암인가? 요 근래 자외선을 너무 많이 쬈나? 인터넷을 뒤져보니 그냥 넘기지 말고 피부과를 꼭 가보라고 한다. 피부 속 노폐물이 쌓여 밖으로 나온 것 일 수도 있다며. 간 해독 능력이 떨어져서 몸이 보내는 적신호일 수 있다고. 불현듯 술 담배가 부쩍 는 내 식습관이 떠오른다.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고 부랴부랴 집 근처 피부과를 예약하고 외출 준비를 했다. 아니. 그 전에 잠깐만. 혹시나 해서 전에 찍어둔 셀카를 찾아본다. 화면 속 나는 그 점을 갖고 있었다. 아... 있었구나. 원래 있었어. 1년 전, 3년 전에도 내 오른쪽 구렛나루에는 까만 점이 있었네. 넌 항상 그 자리에 있었구나. 내가 발견하지 못했을뿐. 너의 존재를 알지 못 했다 나는. 나는 나의 일부의 존재를 자각하지 못했다. 나는 아직도 나에 대해 모르는 게 많구나. 그렇다면 이 점은 존재했던 것인가 존재하고 있는 것인가. 나의 인식은 이 점에 머물지 못했고 그래서 존재한다고 느끼지 못 했다. 3년 전 사진을 본 후에야 알았다면 지금까지의 간극 동안 이 점은 내게 존재하지 않았던 무언가다. 쇼펜하우어는 세계가 우리의 표상이라고 얘기했다. 세상은 각자의 인식에 따라 다르게 보인다. 내가 알지 못하는 세계가 내게 인식되지 않고 느껴지지 않듯 내 까만 점은 28년 동안 존재하지 않았었다가 이제야 존재하게 됐다. 이 점은 오늘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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