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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heStrok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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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황국 터엔 못 다 꾼 꿈의 형해

 이문열의 글쓰기는 ‘지우기'의 글쓰기다. 이 말은 그의 가장 중요한 소설일 『황제를 위하여』와『영웅시대』에 대하여 유효하다. 『영웅시대』에서 이문열은 이데올로기에 의한 죽기 살기의 역사를 지웠고, 『황제를 위하여』에서는 조선조의 멸망 이후 한국 현대사 전체를 지웠다. 지우려고 덤벼들었다. 이문열은 지워내는 것만큼 세우지는 않는다. 우리는 그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황제를 위하여 』의 지우개는 정감록이다. 이 소설은 정감록에 기록된 참언에 의지하여 한국 현대사 속의 인(仁)과 의(義)의 나라를 세우려 했던 '황제'의 생애에 관한 기록이다. 가장 명료한 세계관을 가진 그 황제는, 그러나 미치광이다.
 세계는 세계관에 따라서 질서정연하게 돌아가는 것이 아니다. 뒤죽박죽이야말로 세계의 영원한 존재양식이다. '황제'의 저 거룩한 영혼은 세계의 뒤죽박죽을 긍정하거나 수용할 수 없었다. '황제'는 제왕의 위엄으로 이 뒤죽박죽의 세계와 싸웠다. 황제는 계룡산 아래 신도안 마을에서 몇몇 충성스러운 신하들과 함께 황국의 기업을 열었다. 황제의 군사들은 대나무 활과 녹슨 농장기를 들고서 거룩한 황토를 더럽히는 일본군과 싸웠다.
 인간의 정신을 부정하면서 '평등'을 내세워 먹을 것을 나누어먹자고 덤비는 저 근본적으로 천한 것들과 황제는 싸웠고, 다스린다는 것은 하늘을 대신한다는 저 오묘한 치(治) 의 섭리를 깨닫지 못하는 자들, 뽑기로 지도자를 정하고 그 천박한 뽑기 위에 세계를 세우려는 저 속악한 무리들을 멸하기 위하여, 그리고 한갓 제 썩어질 육신에 뚫어진 눈구멍에 비치는 현상계에만 급급하여 '과학'입네 '합리'입네 떠들어대는 저 가엾고도 우매한 것들을 교화하기 위하여, 그 포의(布衣)의 황제는 슬픈 울음을 울면서 풍찬노숙의 싸움을 싸웠다.
황제는 패배하였으나 그가 세상에서 이루지 못하였다는 이유만으로 어찌 그의 거룩한 싸움을 패배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인가. 그 황제는 '승리' 속에서 이승의 마지막 숨을 거두었고, 지금은 영원한 관념과 조화의 나라, 우주의 시간과 공간의 한복판인 자미궁에서 별떨기에 둘러싸인 새 황국을 열었으니, 그 황국의 앞날은 푸르고 강성하리라.

 그대들이 삶의 껍질을 벗는 날을 짐은 아득한 북쪽 하늘 자미궁에서 기다리고 있으리라.' (황제의 유언 중에서)

 황제의 삶은 미친 거지의 삶이다. 그러나 그 '황제'를 안심하고 미치광이라고 부를 수 있기 위해서는 황제를 제외한 이 세계가 명백하게 미치지 않았다는 전제가 필요하다. 만일 그 전제가 추호라도 흔들린다면 우리는 그 황제의 영광과 황제의 수난과 황제의 관념을 가리켜 함부로 미치광이라고 부르는 방자하고도 백치스러운 입놀림을 자숙하지 않으면 안 되리라. 잡새들이 어찌 봉황의 뜻을 알 것이며, '합리'라는 미신에 눈이 멀어 청천백일의 광명천지를 소경처럼 더듬고 헤매는 저 우매한 창맹들이 어찌 인과 의의 나라를 꿈꾸는 황제의 크나큰 슬픔을 헤아릴 수 있으랴.

 관념의 거룩함과 그 힘없음
 『황제를 위하여』의 무대인 겨울의 계룡산은 작고한 동양화가 소정 변관식(小亭 卞寬植)의 목마른 갈필(渴筆)이 먹을 겨우겨우 이어가며 그려낸 것 같은 산수화였다. 그 마의의 노대가가 자신의 예술적 생애의 절정에서, 어째서 그토록 먹을 아껴가며 끊어질 듯한 목마른 갈필의 붓을 이어 갔던가가 궁금한 사람들은 겨울의 눈 덮인 계룡산에 가보라. 그 겨울산 마른 나뭇가지들은 재료의 빈곤감에 의해서만 표현되어질 수 있을 순결한 형해들의 거대한 집적이었으며, 버릴 수 있는 모든 것을 내버린, 그래서 더 이상은 버려질 수 없는 것들만을 엄격하게도 남겨놓은 어떤 극한이었다. 소정 갈필의 목마름은 그 극한을 추적하는 목마름이다.
 옛 산수화는 후인들에 의하여 '관념산수'라고 폄훼되기도 하지만, '관념'이야말로 쉴새없이 인간의 목을 누르는 가장 지엄한 현실'일진대, 옛 산수화가 관념산수가 아니라, 이 난해한 현실 전체가 오히려 거대한 관념산수는 아닐 것인지, 그런 쓸쓸한 의문을 그 겨울산은 품고 있었다.
 황제가 개국했던 계룡산 밑 신도내는 그 '관념'들의 피 흘린 격전장이다. 그 황제는 하늘이 이씨에게 맡기었던 5백 년 왕홀을 거두어 자신에게 기탁했다고 스스로 믿고, 거렁뱅이 · 덜렁뱅이 · 주정뱅이 · 건달 · 미치광이 · 반푼이들을 개국공신으로 삼아 계룡산 밑 흰돌머리마을에 덕치와 인의의 황국을 열었다. 황제는 정감록에 기록된 바, 정씨 8백 년의 왕홀을 쥐고 한국 현대사 속으로 뛰어든 '정진인' 바로 그였다.
 황제는 신도안 마을 안에 낡은 초가집을 한 채 장만하고, 그 초가집을 새로운 도읍의 기초로 삼아 흙으로 계단 3개를 만들고, 억새풀로 지붕을 얹고 그 끝을 다듬지 않았는데, 그것은 『묵자』에 기록된 요순(堯舜)의 거처를 그대로 옮긴 것이었다.
 황제는 스스로의 관념 안에 이 세계의 현기증 나는 중심부를 간직하고 있었던 것인데, 계룡산 밑 신도안(이 지명은 충남 논산시 부남 · 석계 · 정장 · 용동 · 암사 5개 동에 대한 통칭이다)에는 한때 스스로 세계의 중심부를 간직한 1백여 명의 '황제'들이 저마다의 황국'을 열고 있었다.
 소설 속의 황제는 그가 동양고전을 통해 터득한 인의의 덕치로써 색목인(色目人)들의 저 요사스런 손재주와 저들이 믿고 있는 과학과 합리라는 미신과, 그 미신의 힘에 바탕한 모든 정치권력들을 무의미한 한 줄의 낙서를 지우듯 지워버리려 했으나, 지금 신도내의 그 황국들은 과학과 합리의 힘에 의하여 모조리 지워져버리고 단 하나도 남아 있는 것이 없다.

 산은 유혹할 뿐
 계룡산과 신도안 일대의 지덕은 예로부터 수많은 지론가(地論家)들에 의하여 8백 년 왕업의 기상이 서린 거룩한 땅으로 일컬어져 왔다. 백두산에서부터 뻗어내려 남으로 치달아온 반도의 지세가 충청도 논산 · 공주와 대전의 경계에 이르러 문득 웅장한 기세로 멈추어 서면서 이 산을 일으켜 세우니, 그 땅의 기상은 가히 '용비봉상'(龍飛鳳翔)의 형세였다.
 계룡산 주봉에서 신도안 쪽을 내려다보면 금강으로 흘러들어가는 물줄기와 벌판을 휘감은 산자락들이 혹은 서로 끌어안고 혹은 서로 안겨들면서, 산이 좌측으로 돌아감에 물이 잇달고 물이 우측으로 돌아감에 산이 잇달고 있어 옛 지론서에 기록된 바 '산태극 수태극 (山太極 水太極)'의 신묘한 조화를 이루었고, 산의 기상과 물의 기상이 서로 부추겨 가면서 하늘에 닿았으니, 그 땅과 그 산은 '관념'이 끝끝내 현실에 의하여 배신당하는 것이라 할지라도 인과 덕으로써 다스려지는 새로운 왕도를 꿈꾸는 수많은 슬픈 황제들과 천대받는 백성들의 가엾은 꿈을 유혹해 가면서 5백여 년을 오직 적묵(默)의 침묵으로 버티어 서 있을 뿐이다. 산은 유혹할 뿐 대답하지 않는다.
 소설 속의 '황제'가 새 왕도의 기업을 열었던 '흰돌머리마을'은 계룡산 속이나 신도안 마을의 어느 부락일 것이었다. 계룡산의 수많은 슬픈 '황제' 들과 그들의 암자 · 움막들은 계룡산 국립공원조성(1975년)과 충청남도의 재개발사업(1983~84년)에 밀려나 지금은 모두 흩어져 버리고 말았다. 그들은 저마다 세계와 우주의 중심부였으며, 그들의 '관념' 속에서 억조창맹들을 구원하고 교화할 몽상의 왕국이 세워져 있을 것이나, 관념의 거룩함과 그 힘없음이 합리의 불도저에 밀려나 흩어짐이 저 같을진대 진실로 왕자의 길은 험난하여라. '하늘이 그 뜻을 이루심은 어찌 이리 더디던가!'
 종교학자들의 추적에 따르면 계룡산과 신도안을 떠난 그 슬픈 몽상의 '황제'들은 또 다른 신경한 산인 전북 모악산 기슭으로 그들의 도읍지를 천도해 갔거나, 계룡산의 영험한 주봉이 바라다보이는 대전 근교나 논산 · 공주 등지로 흩어져 갔다는 것이다.
 신도안 입구인 충남 공주시 반포면 학봉리 2구의 한 산비탈 마을에서 수년 전 신도안 재개발사업으로 밀려난 한 '황제'를 만났다. '신우보살'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그 '황제'의 세 칸 슬레이트집 마당에는 오색찬란한 ‘천준기'(旗)가 겨울의 계룡산 주봉을 향해 펄럭이고 있었고, 그 옆에 깨끗한 태극기가 게양되어 있으니, 이 가난한 '황제'의 '관념' 속에서 이 세 칸 슬레이트집이야말로 세계의 중심부이며 우주의 중심부임을 알 수 있다. '신우보살'은 오랜 세월동안 저 자신만의 언어에 길들여진 세월을 살아와서, 그의 말은 거의 알아들을 수 없었다. 가까스로 해득한 그의 말 중의 한마디는 “인생은 좋은 세상에서 살아야 하는 법이여. 천신의 뜻을 거역하고 시는 것은 죽도 밥도 아니고 아무것도 아니여!”라는 말이었다.
 그 보살은 매일매일 계룡산의 산천명기 (山天明氣)에 기도를 드리는데, “나 잘 되라고 기도드리는 것이 아니여! 세상 잘 되라고 기도드리는 것이여!”라고 말했다. 언제 어디서부터 계룡산으로 흘러들어왔느냐고, 하찮은 신변잡사에 관해서 묻자 그 보살은 “그런 것은 중요한 것이 아니여”라고 면박을 줄 뿐 더 이상 대답하지 않았다.
 그의 마당에 세워진 '천준기’는 깊은 겨울잠에 빠져 있는 대답없는 계룡산을 향해 길게길게 펄럭이고 있었다. '황제' 스스로 깃발 이름을 지었다는 그 '천준기'만이 인간의 '관념'의 힘없음과 그 힘없는 '관념'의 무서움을 동시에 말해 주고 있었다. <김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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