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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heStrok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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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년의 일들은 언제나 돌연스럽다. 실은 그 일이 구체적으로 모습을 드러내기까지에는 알게 모르게 조짐과 예비와 진행이란 과정이 있었겠지만, 그 시절의 불완전한 의식은 언제나 그 완성된 형태나 결말만 돌연스러움으로 받아들일 뿐이다. 또 유년의 일들은 그 해석과 기억에도 그 시절의 단순성으로 왜곡된다. 세상이 모두 놀이터처럼 보이는 것과 마찬가지로, 거기서 벌어진 모든 일도 그 무렵에 특히 열중했던 놀이 또는 깊이 빠져있던 관념과 연관되어 해석되고 기억될 뿐이다.

차차 자라가면서 그 모든 일은 원인과 결말이 가지런해지고 해석은 객관성을 회복하고 기억은 왜곡에서 벗어나지만, 그러나 이미 그것은 우리의 유년과는 무관하다. 그것은 다만 인상의 종합이며, 기억의 재조정이고, 세월에 부대끼어 닳아빠진 의식의 새로운 왜곡에 지나지 않는다. 성숙 또는 논리란 이름의, 성년끼리 약속된 어떤 허구에 바탕한. (변경)



지금에 와서는 그리움으로 떠오를 때도 있지만 그 무렵의 내 하루는 거의 참담했다. 나는 토굴 같은 내 방에 홀로 누워 가벼운 읽을거리와 얕은 잠과 우울한 몽상으로 긴긴 해를 보냈다. 그러다가 해거름이 되면 골방을 나와 갯가의 갈대밭 사이에 난 둑길을 천천히 산보했다. 어느새 여름이 깊어져서 볕이 뜨거운 대낮에는 나돌아 다닐 수 없기 때문이었다. 매우 느린 걸음이어서 그 산보가 끝날 때쯤은 완전히 해가 지고 나는 피어오르는 저녁 안개와 함께 돌아오곤 했다. 그 다음은 괴롭고 긴 밤이었다. 바다가 가까운 탓인지 강바람 탓인지 그때의 여름밤은 그리 덥진 않았지만, 일단 밤의 요기(妖氣)에 휩싸이고나면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낮동안 무슨 축복처럼 간간 찾아들던 잠도 밤이 되면 마치 낮의 선심이 화가 난다는 듯 무정하게 나를 외면했고 유일한 위로였던 책도 어둠이 찾아들기 무섭게 깊은 침묵 속으로 빠져들었다. 다만 낮의 우울한 몽상만이 혹은 무성한 번민의 수풀로, 혹은 치열한 고뇌의 불길로 나의 밤을 지배할 뿐이었다.

추억하기 조차 가슴이 서늘한 그때의 풍경 중 하나는 그런 불면의 밤 내가 늦도록 배회하던 갯가의 둑길이다. 으스름한 달빛과 안개 자욱한 포구, 끝없이 출렁이는 갈대의 바다와 그 위를 스쳐가는 바람소리, 이름 모를 새들의 구성진 울음소리... 나는 그러한 것들 사이를 마치 몽유병자처럼 늦도록 거닐었다. 그리고 그때 나를 지배하는 것은 어두운 방안에서의 번민과 고뇌 대신 울고 싶도록 철저한 외로움이었다. (젊은 날의 초상)

수호지(水滸志)를 쓴 시내암(施耐菴)은 도둑을 찬양하는 글을 썼다하여 자손 오대가 모두 눈이 멀었다고 한다. 말과 글이란 그토록 다루기가 어려운 것이다. 너희들은 백성들에게 뽑힌 것도 아니요, 나라로부터 권세를 부여받은 일도 없으면서 듣기에 대단한 세력을 누린다고 한다. 그것은 필시 말과 글의 힘에 의지한 것일 터이다. 그리고 말과 글의 힘은 그 논의가 올바르고 전하는 내용이 참된 데서 나온다. 그런데 너희들은 혹은 사리사욕에 눈이 어두워. 혹은 매가 두렵고 시비가 싫어서, 곡필(曲筆)과 과장을 일삼으며 은폐와 왜곡을 밥먹듯하니 어찌 도둑을 찬양하는 것과 다를바 있으랴. (황제를 위하여)



티끌 자옥한 이 땅 일을 한바탕 긴 봄꿈이라 이를 수 있다면, 그 한바탕 꿈을 꾸미고 보태 이야기 함 또한 부질없는 일이 아니겠는가. 사람은 같은 냇물에 두 번 발을 담글 수 없고, 때의 흐름은 다만 나아갈 뿐 되돌아오지 않는 것을, 새삼 지나간 날 스러진 삶을 돌이켜 길게 적어 나감도, 마찬가지로 헛되이 값진 종이를 버려 남의 눈만 어지럽히는 일이 되지 않겠는가.

그러하되 꿈속에 있으면서 그게 꿈인 줄 어떻게 알며, 흐름 속에 함께 흐르며 어떻게 그 흐름을 느끼겠는가. 꿈이 꿈인 줄 알려면 그 꿈에서 깨어나야 하고, 흐름이 흐름인 줄 알려면 그 흐름에서 벗어나야 한다. 때로 땅끝에 미치는 큰 앎과 하늘가에 이르는 높은 깨달음이 있어 더러 깨어나고 또 벗어나되, 그 같은 일이 어찌 여느 우리에게까지도 한결같을 수가 있으랴. 놀이에 빠져 해가 져야 돌아갈 집을 생각하는 어린아이처럼, 티끌과 먼지 속을 어지러이 헤매다가 때가 와서야 놀람과 슬픔 속에 다시 한줌 흙으로 돌아가는 우리인 것을.
또 일찍 옛사람은 말하였다.

"그대는 저 물과 달을 아는가. 흐르는 물은 이와 같아도 아직 흘러 다 해 버린 적이 없으며, 차고 이즈러지는 달 저와 같아도 그 참크기는 줄어 작아짐도 커서 늘어남도 없었다. 무릇 바뀌고 달라지는 쪽으로 보면 하늘과 땅의 모든 것이 짧은 사이도 그대로일 수가 없지만, 그 바뀌고 달라지지 않는 쪽으로 보면 나와 남이 모두 바뀌고 달라짐이 없다."
그게 글 잘하는 이의 한갓 말장난이 아닐진대, 오직 그 바뀌고 달라짐에 치우쳐 우리 삶의 짧고 덧없음만 내세울 수는 없으리라.더욱이 수풀위를 떼지어 나는 하루살이에게는 짧은 한낮도 즈믄 해에 값하고, 음한다. 우리 또한 그와 같아서, 가시덤불과 엉겅퀴로 뒤덮인 이땅, 끝모를 하늘에 견주면 수레바퀴 자국이나 다름없고, 그 속을 앉고 서서보낸 예순 해 도한 다함없는 때의 흐름에 견주면 짧은 한낮에 지나지 않으나, 차마 그 모두를 없음이요 비었음이요 헛됨이라 잘라 말할 수는 없으리라. (삼국지 서사)



하늘 아래의 큰 흐름은 나뉘면 다시 아우러지게 되어 있다던가. 이로써 이웃나라 솥발처럼 나뉘고 꽃답고 빼어난 이들 구름 같이 일어 다투며 치닫던 온해는 다 했다. 착한 이 모진 이 가릴것 없이 모두 죽고, 힘센 이 여린 이며 고운 이 미운 이 또한 모두 죽어, 이제는 한결 같이 끝모를 때의 흐름 저쪽으로 사라졌다.
부질없을진저, 그들의 빛나는 꿈 큰 뜻 매운 얼을 추켜세움이여. 이미 그 몸이 스러진 뒤에 낯 모르는 사람들 사이를 떠도는 이름이 뜻있다 한들 그 얼마이겠으랴. 그걸 위해 한 번뿐인 삶을 피로 얼룩지우거나 모진 아픔에 시달리고, 또는 외로움과 고단함 속에 내던진 그들이 저승에서 뉘우치고 있지 않다 뉘 잘라 말할 수 있을 것이랴.

까닭 모를레라, 그들의 어리석음이며 어두움과 못남을 뒤에 살아 깍아 내리고 꾸짖음도, 누군들 하늘과 땅의 고임받는 아들딸로 태어나, 더러운 이름 아래 죽고 업신여김 속에 되뇌어지기를 바랐으랴. 한 자투리의 땅이나 몇 닢의 돈에 그 뜻을 팔고, 끝을 날카롭게 한 쇠붙이나 무리의 힘에 눌려 남 앞에 무릎 꿇을 때 하마 그 마음의 단근질이 없었는지 어찌 알랴.

그러하되, 헛된 매달림일지라도 없음보다는 있음이 값지게 여겨져야 하고 그게 우리의 좀스러움이 될지라도 가림과 나눔은 뚜렷이 지켜져야 한다. 우리가 있음에 껴있기 때문이요, 아직도 뒤를 이어 이 땅을 살아야 할 우리가 끝없이 남아 있기 때문이며, 그 삶은 어둠보다는 밝음에, 굽음보다는 곧음에 이끌어져야 함을 우리의 지난 겪음이 일러주기 때문이다.

우리의 몸과 마음이 주어진 동안만을 모였다 흩어지는 없음으로 보기보다야 비록 있음의 빈껍질일지라도 길이 남는 이름을 믿는 게 한결 든든하지 않겠는가. 이름이라도 기림받는 이름을 가꾸어 삶을 아득한 없음에서 건져내야 하지 않겠는가. 그리하여 그런 애씀 가운데서 이 살이가 더욱 밝고 따뜻하고 편해지도록 서루를 북돋우고 뒷사람을 부추기는 게 작은 대로 앎을 가진 이의 할 바가 아니겠는가. (삼국지 결사)

민주주의란 말이 세상에 선뵌지는 벌써 2천 년이 넘었고, 세계의 정치판이 역사의 창고 깊숙한 곳에서 그걸 다시 찾아내 무슨 만능의 부적처럼 이마빼기에 붙이고 시도 때도 없이 그 신통한 효능을 우려먹은 지도 그럭저럭 두 세기가 넘었다. 내게는 그 민주주의가 한물 가서 추해진 창녀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젊어 한때는 매력으로 빛나는 홍등가의 여왕이었으나 이놈 저놈이 함부로 끼고 자며 짓물러 놓은 바람에 이제는 엉덩이 짓밖에 볼 게 없어진 늙은 창녀 말이다.

내 생각으로 민주주의가 그 꼴이 난 것은 민주란 말이 가지는 정치적 최음효과와 그 의미의 가변성 내지는 가소성 때문일 것이다. 처녀보다는 창녀란 소리를 들으면 더 쉽게 성욕을 느끼고 화사한 대리석은 어찌 해볼 엄두조차 내지 못하면서도 진흙 덩어리를 보면 공연히 주물러보고 싶어지듯 민주란 말은 힘없는 민초들을 턱없이 정치적인 흥분에 빠져들게 하는데가 있으며 또 머리깨나 굴리는 권력추구자들에게는 우물떡 주물떡 저희 쓰기에만 편리한 물건을 만들고 싶은 유혹을 일으키는 데가 있다. 두 놈이 똑같은 민주를 외쳐대는데도 가만히 내용을 따져보면 하늘과 땅 같은 차이가 나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그 예를 들어보자면 끝이 없다. 아테네의 구닥다리 민주와 근대에 들어 푼돈깨나 거머쥔 소시민들의 민주가 다른 것은 물론이거니와 비슷한 시기에 들어서도 블랑키의 민주와 로베스피에르의 민주가 다르고 링컨과 바쿠닌과 마르크스의 민주가 각기 다르다. 같은 마르크스의 민주가 새끼를 쳐도 레닌의 민주와 스탈린의 민주가 꼭 같지는 않았으며 짐작대로 트로츠키의 민주 또한 조금은 달랐을 것 같다. 그 민주 가운데서도 유별나게 싸구려 자유만을 소리소리 외쳐대는 민주가 있다. 나는 너의 정강이를 걷어찰 수 있다. 그러나 너도 또한 그러는 내 콧등을 후려깔 자유가 있다. 이런 식인데, 쉽게 말하자면 니 뻥(너 한 주먹) 내 뻥(나 한 주먹) 하는 자유로 남는 것은 멍든 정강이와 깨진 콧등 밖에 없을텐데도 그거 어떻게 좀 제한하자고 나섰다가는 큰일이 난다. 그런데 지금 한국에 한창 유행하는 자유가 그런 것인 모양이었다. (오디세이아 서울)

우리 정신의 유년(幼年)은 저들 서구의 지성이 다채롭게 펼쳐보인 지난 세기말의 노을에 취하면서 시작되었다. 에드거 앨런 포와 보들레르와 오스카 와일드의 퇴폐적 유미주의에 젖어 아슴아슴 잠들다가 '신은 죽었다'는 니체의 선언에 가슴 섬뜩해 깨어나 우리의 세기로 들어섰다. 그리고 아직 우리의 세기에 익숙해지기도 전에 벌써 작별을 고해야 할 때가 왔다. (이것도 오디세이아 서울 같은데 정확히 기억이 잘 안남)

사람은 같은 물에 두 번 발을 담글 수 없다지만, 나는 아련한 꿈 속에서 또는 애틋한 그리움 속에 수없이 그때의 그 강물에 내 발을 담갔다. 봄눈 녹아 흐르던 찬 여울살에 모래펄을 얕고 넓게 지나느라 뜨거워져 강을 거슬러 올라오던 은어 떼를 이따금씩 혼절시키던 여름철의 느린 목에,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까닭 없이 슬퍼지던 가을의 교각 곁 그 맑다 못해 푸르스름하게 보이기까지 하던 웅덩이에, 이미 유리같은 살얼음이 끼기 시작하던 그 발저린 겨울 물굽이에, 세월은 구름처럼 허망히 흘러가버렸으나 내 발을 감싸는 물살은 언제나 예전의 그 물살이었다. (변경)

당신들은 누구와 사랑에 빠져 본 적이 있는가. 당신들은 틀림없이 그 아름다움이나 달콤함, 헤어질 때의 고통과 슬픔이며 그 뒤의 그리움과 공허함을 미화하고 과장하려 들테지만 기실 그 일의 진상은 뜻밖으로 단순하고 명백하다. 그것은 당신이 이 힘들고 따분한 여행 중에 눈길을 끄는 한 소녀를 만났다는 것이며, 결국은 부정확하게 마련인 관찰에 이어 당신이 던진 맹목적인 열정의 눈길에 그녀가 미소로 답했다는 것이며, 무료함을 함께 달래자는 당신의 용기를 다 한 요청에 그녀가 다소곳이 응했다는 것이며-그리하여 약간은 야릇한 열에 들뜬 당신들이 깜빡깜빡 자신을 잊어가며 주고받은, 그때로서는 세상과 맞바꿀 만한 기쁨이고 몰입이었으나 본질적으로는 그리 대단할 것도 없는 몇 개 유형의 행위들과 가끔은 정색할 만하지만 대개는 무의미하거나 지리멸렬한 대화들의 집합에 지나지 않는다.

설혹 당신들에게 공통된 추억과 꿈이 있었으며, 참되고 착하고 아름답고 거룩한 것들을 함께 우러렀고, 때로 그 이상 절대와 영원을 향한 동반을 다짐했더라도 이 심란한 여행에서는 누군가 둘 중 하나는 도중에 내리게 되어있다. 우리의 대지에는 너무나 많은 역이 있고 대개의 경우 우리의 행선지는 다르기 때문이다. 따라서 종종 당신들은 만나기 전보다 훨씬 쓸쓸하고 허전한 마음으로 헤어져야 하며 불행히도 마땅한 새 상대를 구하지 못하면 나머지 여정은 더욱 견디기 힘든 것이 되어버린다. 물론 헤어질 무렵에는 서로가 오래도록 기억해줄 것을 열렬히 희망하고 혹은 다시 만날 것을 굳게 다짐하지만 그 또한 온전히 허망한 일이 되기 일쑤다. 사람이 살아가는데는 너무도 기억해야될 일이 많고, 한번 헤어진 이들이 다시 만나기에는 이 세상이 너무 넓은 까닭이다. 어쩌다 둘의 행선지가 여행이 끝나도록 같은 경우에도 결과의 허망에는 큰 차이가 없다. 서로가 미지이던 시기, 눈 먼 열정의 한나절이 지나고 나면 마침내 당신들은 서로를 묶고 있는 일상성과 권태에서 벗어나기를 간절히 소망하게 될 것을... (변경)

그때 나는 열일곱이었고, 계절은 한창 길 떠나기 좋은 늦봄이었다. 이성은 그쯤에서 집으로 돌아가기를 권유했으나, 감성은 그대로 내처 떠나기를 부추겨댔다.

거기서 한동안 이성과 감성의 뻔한 싸움이 벌어졌다. 아니 싸움이라기보다는 오히려 그 어이없는 감정을 해석하고 변호하는 도구로 내 이성을 써먹었다는 편이 옳을지도 모르겠다. (변경 6권 273p)

요즘에야 상상조차 어렵겠지만 벌써 한 세대 넘는 세월이 훌쩍 흘러가버린 그떄의 국토는 대게 트럭 두 대가 스쳐가기 어려운 자갈길이었다. 또 거리란 게 일쑤 그만큼 가는 데 드는 시간으로 측정된다는 점에서 그때는 읍과 읍, 마을과 마을 사이가 지금보다 적어도 몇 배는 멀었다. 옛적에 한나절을 걸어야 했던 사오십 리 장 나들이 길이 포장되어, 잘 나가는 승용차로 십여 분만에 지나고 보면 우리가 기억 속에 간직하고 있는 옛적의 거리감이라는 것이 허망하게까지 느껴지는 때가 있다. 아마도 그것은 우리가 거리를 온전히 시간으로 바꾸어버린 까닭일 것이다. (6권 281p)


다니던 대학교에는 자퇴원을 내어 영영 돌아갈 다리를 끊고, 어렵게 이어왔던 2년의 어지러운 인연들과도 아무 기약 없이 결별했다. 더러는 영롱하기 그지없던 개성들과 아직은 아니지만 언젠가는 빛날 것 같은 영감(靈感)도 만났지만, 그들과 우의도 나누고 오해도 주고받았지만, 함께 아파하며 뒹굴고, 때로는 성난 주먹질로 피탈까지 본 적이 있지만, 잘 알지 못하는 진실과 미신을 밤새워 떠들며 술잔도 정도 함께 나누었지만, 누구와도 다시 만나자고 다짐한 적 없고 누구에게도 돌아오겠다는 약속을 한 적 없이 나는 떠났다. 누구에겐가는 내가 새로 걸으려는 길을 알리고도 싶었으나, 이해받기보다 떠나는 내가 세상을 향해 품은 속된 원한이나 천박한 악의가 들킬까 겁났고, 더러는 이미 탄로 난 내 나약과 들춰진 영혼의 상처들을 다시 떠올리게 만드는 게 싫었다.

그는 한층 과장된 의식으로 오래 덮어두었던 기억을 더듬다가 다시 그때의 작별 의식과 이어지는 고리 하나를 더 찾아냈다. 그래, 맞아. 나는 그때 다시는 너희를 만나지 않겠다고 모진 맹세를 내걸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른바 뜻을 이루어 돌아온다 해도 그때 너희들이 있을 곳은 어김없이 낯선 곳. 그 시절 우리에게 공기와도 같던 자살의 충동과 허무, 함께할 전우도 없고 끝내는 이겨낼 수 있을 것 같지도 않던 그 암담한 싸움, 숱한 설익은 영혼들이 전열조차 제대로 갖춰보지 못하고 스러져간 그 참혹한 전장을 너희가 어떻게 헤쳐 나가 그 어디에 가 있을지 나는 전혀 가늠할 수 없었다.

어정쩡한 사랑놀이 뒤의 부질없는 미련 같은 것은 있었지만, 그 또한 한번 나뉘고 나니 돌아갈 다리는 이미 끊겼고 지워진 길은 다시 찾지 못했다. 마음속에 남겨놓은 한 가닥 길도 그때는 들켜서는 안 될 치명적인 외길처럼 느껴졌으며, 그래서 아직 제대로 펼쳐보지 못한 내 청춘은 교정을 떠나는 그날로 엄중하게 봉인되어 유폐되었다.

그때 틀림없이 나는 무언가 거창한 꿈을 꾸었지만, 그게 푸른 구름이었는지 솟구치는 바람이었는지 너무 멀고 허망해 잡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으며, 여기저기 기웃거리다가 얼결에 접어든 길은 누구도 지난 흔적이 없어 그저 아득하기만 했다. 모든 것을 부정하고 부인하며 떠나는 길이라 나를 잡을 이도 없지만, 내가 바라보는 곳이 애매해 그 어느 길모퉁이에서 기다려주는 이를 바랄 수도 없었다. (둔주곡 80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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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열 글을 가만 읽고 있자면 하나의 완성된 예술 작품을 손에 쥐는 듯한 느낌이다. 자칫 버거울 수 있는 문장의 길이, 호흡을 특유의 필력으로 절묘하게 빼어내고, 모든 문단과 단락을 유기적으로 연결해낸다. 김훈과 황순원이 한국말 활용의 최고봉이라면 이문열은 국어 활용의 끝판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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