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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by TheStrok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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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러분은 지금이 도덕적 위기의 시대라는 이야기를 들어왔습니다. 여러분은 두려움과 희망이 반반씩 섞인 마음으로 말은 아무 의미도 없다고 스스로에게 말해왔습니다. 여러분은 인간의 죄가 세상을 파괴하고 있다고 외치며 여러분이 요구하는 미덕들을 실천하지 않으려는 인간의 본성을 저주해왔습니다. 여러분에게 미덕이란 희생을 의미하기에 여러분은 연이어 재난이 일어날 때마다 더 많은 희생을 요구했습니다. 여러분은 도덕으로의 회귀라는 명목 아래 여러분이 곤경의 원인으로 여기며 악이라고 칭하는 모든 것을 희생시켰습니다. 여러분은 자비를 위해 정의를 희생시켰습니다. 통합을 위해 독립성을 희생시켰습니다. 믿음을 위해 이성을 희생시켰습니다. 필요를 위해 부를 희생시켰습니다. 자기부정을 위해 자아존중을 희생시켰습니다. 의무를 위해 행복을 희생시켰습니다.

 여러분은 악이라고 여기는 모든 것을 파괴하고, 선이라고 여기는 모든 것을 이루었습니다. 그런데 왜 주위 세상을 둘러보며 공포로 움츠려드는 거죠? 이 세상은 여러분이 죄라고 여기는 것들의 산물이 아니라 여러분의 미덕들의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도덕적 이상이 완벽하게 구현된 모습입니다. 여러분은 그 이상을 위해 싸웠습니다. 그 이상을 꿈꾸고 소망했습니다. 그리고 내가, 바로 내가 여러분의 소망을 들어준 사람입니다.

 여러분의 이상은 화해 불가능한 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여러분의 도덕률에 의하면 그 적은 파괴되어야만 할 존재였습니다. 나는 그 적을 철수시켰습니다. 그들이 여러분의 앞길을 막지 못하도록 여러분의 손이 닿지 않는 곳으로 데려갔습니다. 여러분이 하나씩 차례로 희생시키고 있는 모든 악의 근원을 제거했습니다. 여러분의 싸움을 종결시켰습니다. 여러분의 모터를 껐습니다. 여러분의 세상에서 인간의 정신을 제거했습니다.

 여러분은 인간은 정신으로 살지 않는다고 했죠? 정신으로 사는 사람들을 내가 철수시켰습니다. 여러분은 정신은 무력하다고 했죠? 그렇지 않은 정신을 지닌 사람들을 내가 철수시켰습니다. 여러분은 정신보다 더 높은 가치들이 있다고 했죠?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을 내가 철수시켰습니다.

 여러분이 정의와 독립심, 이성, 부, 자존감을 가진 사람들을 희생의 재단으로 끌고 가는 동안 내가 선수를 쳐서 그들을 먼저 손에 넣었습니다. 나는 그들에게 여러분이 벌이는 게임의 본질을, 여러분의 도덕률의 본질을 말해주었습니다. 그들은 너무나도 순진하고 관대한 나머지 진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으니까요. 나는 그들에게 다른 도덕률, 나의 도덕률에 따라 사는 길을 제시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내가 제시한 길을 선택했습니다.

 세상에서 홀연히 사라진 모든 사람, 여러분이 증오하면서도 잃기를 두려워한 그 사람들을 여러분에게서 빼앗아간 사람이 바로 나입니다. 우리를 찾으려고 애쓰지 말기 바랍니다. 우리는 여러분에게 발견되지 않을 테니까요. 여러분을 위해 봉사하는 것이 우리의 의무라고 외치지 말기 바랍니다. 우리는 그런 의무를 모르니까요. 우리가 필요하다고 외치지 말기 바랍니다. 우리는 필요를 권리로 여기지 않으니까요. 우리가 여러분의 소유라고 외치지 말기 바랍니다. 그렇지 않으니까요. 우리에게 돌아오라고 애원하지 말기 바랍니다. 우리, 정신의 소유자들은 파업 중이니까요.

 우리는 자기희생에 대항해 파업 중입니다. 거저 얻는 보상과 대가 없는 의무에 대항해 파업 중입니다. 자신의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 악이라는 도그마에 대항해 파업 중입니다. 삶은 죄라는 주장에 대항해 파업 중입니다.

 우리의 파업은 여러분이 수세기 동안 벌여온 파업과 다릅니다. 우리의 파업은 요구를 하는 게 아니라 요구를 들어주는 것입니다. 우리는 여러분의 도덕에 따르면 사악합니다. 우리는 더 이상 여러분에게 해를 끼치지 않기로 했습니다. 여러분의 경제학에 따르면 우리는 무용한 존재들입니다. 우리는 더 이상 여러분을 착취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여러분의 정치학에 따르면 우리는 위험하고 족쇄를 채워야 할 존재들입니다. 우리는 더 이상 여러분을 위험에 빠뜨리지도, 족쇄를 차지도 않기로 했습니다. 여러분의 철학에 따르면 우리는 환상에 불과합니다. 우리는 더 이상 여러분의 눈을 가리지 않고 현실을 직시할 수 있게 하기로 했습니다. 여러분이 원하던 현실, 지금 여러분이 보고 있는 세상, 정신이 존재하지 않는 세상.

 우리는 여러분의 요구를 모두 들어주었습니다. 늘 주는 자였던 우리는 이제야 그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우리는 여러분을 상대로 요구할 것도, 협상할 것도, 타협할 것도 없습니다. 여러분은 우리에게 제공할 것이 없습니다. 우리는 여러분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지금 여러분은 이렇게 외치고 있나요? '아니야, 이건 우리가 원한 게 아니야! 우리의 목표는 이런 폐허뿐인 세상이 아니었어! 우리는 당신들이 떠나는 걸 원하지 않았어!' 도덕을 내세우는 식인종들인 여러분은 자신이 원하는 것의 실체를 늘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게임은 끝났습니다. 이제 우리도 그것을 알게 되었으니까요.

 여러분은 지난 수세기 동안 여러분의 도덕률이 초래한 천벌과 재앙에 시달리며 도덕이 땅에 떨어져서 그 벌을 받고 있는 것이라고, 인간은 너무나 약하고 이기적이어서 도덕이 요구하는 피를 흘리지 못한다고 부르짖었습니다. 여러분은 인간을, 존재를, 세상을 저주했습니다. 하지만 여러분의 도덕률에는 감히 의문을 품지 못했습니다. 여러분의 희생자들은 그 책임을 떠안고 고투를 계속했고, 그들이 희생의 대가로 받은 것은 여러분의 저주였습니다. 그동안 여러분은 여러분의 도덕률은 숭고하며, 인간의 본성이 그것을 실천할 수 있을 정도로 훌륭하지 못할 뿐이라고 외쳐댔습니다. 하지만 아무도 분연히 일어나 이런 질문을 던지지 않았습니다. '인간의 본성이 훌륭하지 못하다고? 어떤 기준에서?'

 여러분은 존 골트의 정체를 알고 싶어했습니다. 그 질문을 던진 사람이 바로 나, 존 골트입니다.

 맞습니다. 지금은 도덕적 위기의 시대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여러분의 악에 대한 벌을 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제 심판대에 오른 것은 인간이 아닙니다. 비난받아야 할 대상은 인간의 본성이 아닙니다. 이제 여러분의 도덕률은 운이 다했습니다. 여러분의 도덕률은 이미 절정을 지났고, 이제 막다른 골목에 이르렀습니다. 여러분은 계속 살고 싶다면 도덕으로 돌아갈 것이 아니라 그 실체를 발견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아는 도덕은 신비주의적이거나 사회적인 것뿐입니다. 여러분은 도덕이 초자연적인 힘의 변덕이나 사회의 변덕에 따라 여러분에게 부과되는 행동의 기준이라고 배워왔습니다. 도덕은 신의 목적이나 이웃의 복지를 위한 것이라고, 무덤 너머나 이웃에 있는 존재를 기쁘게 해주기 위한 것이라고 배워왔습니다. 여러분 자신의 삶이나 기쁨을 위한 것이 아니라요. 여러분 자신의 기쁨은 부도덕한 것이고, 여러분 자신의 이익은 악한 것이며, 모든 도덕률은 여러분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것에 반해서, 여러분의 삶을 증진시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고갈시키기 위해서 만들어져야 한다고 배워왔습니다.

 지난 수세기 동안 도덕을 둘러싼 싸움은 여러분의 삶이 신에게 속해 있다고 주장하는 무리와 여러분의 이웃들에 속해 있다고 주장하는 무리 사이에서 이루어졌습니다. 선은 하늘의 유령들을 위한 자기희생이라고 설교하는 무리와 지상의 무능력자들을 위한 자기희생이라고 가르치는 무리 사이에서요. 여러분의 삶은 여러분 자신에게 속해있고, 선은 그런 삶을 사는 것이라고 말해준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 양쪽 무리 모두 도덕은 여러분의 자기이익과 정신의 포기를 요구하고, 도덕적인 것과 실리적인 것은 반대되며, 도덕은 이성이 아닌 믿음과 힘의 영역에 속한다는 데 동의했습니다. 양쪽 무리 모두 합리적 도덕은 불가능하고, 이성에는 옳고 그름이 없으며, 이성은 도덕적일 이유가 없다는 데 동의했습니다.

 여러분의 도덕주의자들은 다른 문제에 대해서는 싸워도 인간의 정신에 대항하는 데는 의견이 일치했습니다. 그들의 모든 계획과 체제는 인간의 정신을 훼손하고 파괴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여러분, 이제 파멸하든지 아니면 反 정신은 反 생명임을 배우든지 둘 중 하나를 선택하기 바랍니다.

 인간의 정신은 생존의 기본 도구입니다. 생명은 인간에게 거저 주어지는 것이지만 생존은 그렇지 않습니다. 몸은 거저 주어지는 것이지만 몸의 유지는 거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정신은 거저 주어지지만 그 내용은 그렇지 않습니다. 인간은 살아 있기 위해서는 행동해야 하고, 행동하기 전에 자신의 행동의 본질과 목적을 알아야 합니다. 인간은 음식에 대한 지식과 그것을 얻는 방법을 터득하지 못하고서는 음식을 얻을 수 없습니다. 도랑을 파든 소립자 연구용 입자가속장치를 만들든 그 목적과 방법을 알아야만 합니다. 인간은 살아남으려면 생각해야 합니다.

 하지만 생각하는 것은 선택의 행위입니다. 여러분이 너무나 경솔하게 '인간의 본성'이라고 부르는 것의 핵심은, 여러분 모두가 아는 공공연한 비밀이지만 말하길 두려워하는 그것은 인간은 의지적 의식의 존재라는 사실입니다. 이성은 자동적으로 작동하지 않습니다. 생각은 기계적인 과정이 아니며 논리의 연결은 본능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의 위와 폐, 심장의 기능은 자동적이지만 정신의 기능은 그렇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언제든, 어떤 문제에 대해서든 여러분의 뜻에 따라 생각할 수도, 생각을 회피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여러분의 본질은, 이성이 여러분의 생존수단이라는 사실은 피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인간인 여러분에게 '사느냐 죽느냐'의 문제는 '생각하느냐 생각하지 않느냐'의 문제입니다.

 의지적 의식의 존재는 자동적으로 행동하지 않습니다. 인간에게는 행동을 이끄는 가치 기준이 필요합니다. 인간은 '가치'를 얻고 지키기 위해 행동하며, 가치를 얻고 지키는 행위가 바로 '미덕'입니다. '가치'는 '누구에게, 무엇을 위해 가치가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을 전제로 합니다. '가치'는 선택이 가능한 상황에서의 기준과 목적, 행동의 필요성을 전제로 합니다. 선택이 없다면 가치는 불가능합니다.

 우주의 유일한 근본적인 선택은 존재냐, 비존재냐 입니다. 그리고 그 선택은 단 한 종류의 실체, 살아 있는 유기체에만 해당됩니다. 생명 없는 물질의 존재는 무조건적인 것입니다. 하지만 생명의 존재는 그렇지 않습니다. 생명의 존재는 특정한 행동 수칙에 의존합니다. 물질은 파괴될 수 없으며 형태를 바꿀 수는 있지만 존재를 멈출 수는 없습니다. 사느냐, 죽느냐 부단히 선택해야 하는 존재는 살아 있는 유기체뿐입니다. 삶은 스스로를 유지하는 자생적인 행위의 과정입니다. 유기체가 그 행위를 수행하지 못한다면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화학적인 요소들은 남아 있겠지만 생명은 존재하지 않게 됩니다. '가치'라는 개념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삶'이라는 개념뿐입니다. 오직 살아 있는 실체에게만 선과 악이 있을 수 있습니다.

 식물은 살기 위해 섭취를 해야만 합니다. 식물에게 필요한 햇빛 물 화학물질들은 식물이 본능적으로 추구하도록 정해진 가치들입니다. 식물의 생명은 식물의 행위들을 통제하는 가치 기준입니다. 하지만 식물에게는 선택의 행위가 없습니다. 식물이 만나는 조건들에는 선택이 있지만 식물의 기능에는 선택이 없습니다. 식물은 자동적으로 생명을 이어갑니다. 식물은 스스로를 파괴하는 행동을 할 수 없습니다.

 동물은 생명을 유지하는 도구를 갖추고 있습니다. 동물이 지닌 감각은 자동적인 행동법칙을 제공합니다. 동물은 감각을 통해 자신에게 무엇이 좋고 나쁜지 자동적으로 알 수 있습니다. 동물은 그 앎을 확장하거나 회피할 능력이 없습니다. 그 앎에 맞지 않는 조건 아래에서는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살아 있는 한은 그 앎에 따라 행동합니다. 그렇게 자동적인 안전을 얻지만 선택 능력은 없는 채로요. 동물은 자신에게 좋은 것을 무시할 수도 없고, 자신에게 나쁜 것을 선택해 스스로를 파괴하는 행동을 할 수도 없습니다.

 인간에게는 자동적인 생존법칙이 없습니다. 인간이 다른 생물체들과 다른 점은 의지적 선택에 따라 행동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자신에게 무엇이 좋고 나쁜지, 자신의 삶이 어떤 가치들에 의존하고 있는지, 어떤 행동수칙이 요구되는지 자동적으로 알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 자기보존 본능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은가요? 자기보존 본능은 엄밀히 말하면 인간이 갖고 있지 않은 것입니다. '본능'은 정확하고 자동적인 형태의 앎입니다. 욕망은 본능이 아닙니다. 삶의 욕망은 삶에 필요한 앎을 제공해주지 않습니다. 인간의 삶의 욕망이 자동적이지도 않습니다. 여러분의 은밀한 악은 여러분이 그 욕망을 갖고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지닌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삶에 대한 사랑이 아니며, 삶을 지속하기 위해 필요한 앎을 주지도 않습니다. 인간은 앎을 얻어야만 하고 생각의 과정을 통해 자신의 행동을 선택해야 합니다. 그러나 본성은 그것을 강요하지 않습니다. 인간은 스스로를 파괴하는 행동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있으며, 인류 역사의 대부분의 기간 동안 그렇게 행동해왔습니다.

 자신의 생존수단을 악으로 여기는 생물체는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 제 뿌리를 망가뜨리려고 애쓰는 식물이나 제 날개를 부러뜨리려고 몸부림치는 새는 오래 살아남을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도 인간의 역사는 자신의 정신을 부정하고 파괴하려는 노력의 연속이었습니다.

 인간은 합리적인 동물이라고 불려왔지만 합리성도 선택의 문제입니다. 본성은 인간에게 합리적인 존재와 자멸적인 동물, 이 두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인간은 선택에 의해 인간이어야 합니다. 인간은 선택에 의해 자신의 삶을 하나의 가치로 여겨야 합니다. 인간은 선택에 의해 삶을 유지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인간은 선택에 의해 삶이 요구하는 가치들을 발견하고 미덕을 행해야 합니다.

 선택에 의한 가치 기준이 바로 도덕률입니다.

 지금 나의 말을 듣고 있는 여러분이 누구든, 나는 여러분 안에 썩지 않고 남아 살아 있는 것, 인간다운 모습, 여러분의 정신을 향해 이렇게 말합니다. 이성의 도덕, 인간에게 적합한 도덕이 존재합니다. 그리고 인간의 삶이 가치의 기준입니다.

 합리적 존재의 삶에 적합한 것은 모두 선하고, 그것을 파괴하는 것은 모두 악합니다.

 인간의 본성이 요구하는 삶은 무지한 야만인이나 약탈하는 악당, 남을 등쳐먹는 신비주의자의 삶이 아니라 생각하는 존재의 삶입니다. 강압이나 기만에 의한 삶이 아니라 성취에 의한 삶입니다. 어떤 대가를 치르고라도 살아남는 삶이 아닙니다. 그렇게 살아남기 위해 치르는 대가는 이성뿐이니까요.

 인간의 삶은 도덕의 기준이지만 열분 자신의 삶은 도덕의 목적입니다. 만일 세상에 존재하는 것이 여러분의 목표라면 여러분은 인간에게 적합한 기준에 따라 행동과 가치를 선택해야 합니다. 여러분의 삶이라는 대체 불가능한 가치를 보존하고 실현하고 즐기기 위해서요.

 삶은 특정한 행동수칙을 요구하므로 다른 행동수칙은 삶을 파괴할 것입니다. 자신의 삶을 행동의 동기와 목표르 삼지 않는 인간은 죽음의 동기와 기준에 따라 행동하는 것입니다. 그런 인간은 자신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반대하고 부정하고 반박하며 파괴의 길을 맹목적으로 질주하는, 고통밖에 모르는 형이상학적 괴물입니다.

 행복은 삶의 성공적인 상태이고, 고통은 죽음의 대리자입니다. 행복은 자신의 가치를 이루는 데서 나오는 의식 상태입니다. 여러분에게 자신의 행복을 포기하는 것에서 행복을 찾고, 자신의 가치의 실패를 가치로 여기라고 말하는 도덕은 도덕을 뻔뻔스럽게 부정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이상이랍시고 타인의 제단에 오르는 희생양의 역할을 부여하는 가르침은 여러분에게 죽음을 기준으로 삼도록 하는 것입니다. 현실과 삶의 본질에 따라 인간은, 모든 인간은 그 자체가 목적입니다. 인간은 자신을 위해 존재하며 자신의 행복을 성취하는 것이 인간의 가장 높은 도덕적 목적입니다.

 하지만 비합리적인 변덕의 추구로는 삶도 행복도 성취할 수 없습니다. 인간은 스스로 삶의 방식을 택할 자유가 있지만 자신의 본성이 요구하는 대로 살지 않는 한 파멸하게 되는 것처럼, 무분별한 기만을 통해 행복을 추구할 수는 있지만 인간은 적합한 행복을 추구하지 않는 한 좌절의 고통만을 느끼게 됩니다. 도덕의 목적은 고통받고 죽는 법이 아니라 자신을 즐기고 사는 법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의 정신이 낸 수익으로 살면서 인간에게는 도덕도 가치도 행동수칙도 필요치 않다고 주자하는, 국가보조금으로 유지되는 강의실의 기생충 같은 존재들은 쓸어내세요. 과학자 행세를 하며 인간은 동물에 불과하다고 주장하는 자들은 가장 하등한 곤충들에게도 허용한 존재의 법칙을 인간에게는 허용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들은 모든 생물체가 본성에 의해 요구되는 생존방식을 갖고 있음을 인정합니다. 그들은 물고기가 물 밖에서 살 수 있다거나 개가 냄새 맡는 감각 없이도 살 수 있다고 주장하지 않습니다. 그러면서도 가장 복잡한 존재인 인간은 어떤 방식으로든 생존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인간에게는 정체성도 본성도 없고 생존수단이 파괴되거나 정신이 억압되고 그들의 지배를 받아도 살지 못할 실제적인 이유가 없다고 주장합니다.

 증오에 빠진 신비주의자들을 쓸어내세요. 그들은 인류의 친구를 자처하며 인간이 실천할 수 있는 최고의 미덕은 자신의 삶을 무가치하게 여기는 것이라고 설교합니다. 그들이 여러분에게 도덕의 목적은 인간의 자기보존 본능을 억제하는 것이라고 말하던가요? 인간의 자기보존이라는 목적을 위해 도덕을 필요로 하는 것입니다. 도덕적이기를 욕망하는 인간만이 살기를 욕망합니다.

 아니요, 여러분은 반드시 살아야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여러분의 기본적인 선택입니다. 하지만 일단 살기로 선택하면 인간으로 살아야 합니다. 여러분의 정신의 작용과 판단에 의해서요.

 아니요, 여러분은 반드시 인간으로 살아야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도덕적 선택입니다. 하지만 여러분은 인간이 아닌 다른 것으로는 살 수가 없습니다. 그것은 여러분이 지금 여러분 자신과 주위에서 볼 수 있는 죽음과 같은 삶의 상태이니까요. 존재에 적합하지 않은 상태, 더 이상 인간이 아니라 동물보다 못한 상태, 오직 고통밖에 모르는 채 생각 없는 자기파괴의 고통 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내는 상태이니까요.

 아니요, 여러분은 반드시 생각해야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도덕적 선택입니다. 하지만 여러분이 살아있기 위해서는 누군가 생각을 해야만 합니다. 여러분이 생각을 하지 않기로 결정한다면 그것은 존재에 대한 의무를 이행하지 않는 것이고, 다른 도덕적인 사람에게 여러분의 의무를 떠맡기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악에 의해 생존할 수 있도록 그 사람의 선을 희생시키는 것입니다.

 아니요, 여러분은 반드시 인간이 되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이제 진짜 인간인 이들은 더 이상 세상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내가 여러분의 생존수단을, 여러분의 희생자들을 제거했습니다.

 내가 어떻게 그렇게 했으며, 그들에게 무슨 말을 해서 세상을 등지게 했는지 알고 싶으신가요? 여러분은 지금 그걸 듣고 있습니다. 내가 그들에게 한 말은 지금 여러분에게 하고 있는 말과 본질적으로 같습니다. 그들은 나의 기준에 따라 살아온 사람들이지만 그것이 얼마나 위대한 미덕을 나타내는지 알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내가 알려주었습니다. 나는 그들이 자신의 가치를 재평가하게 만든 것이 아니라 그것을 알아볼 수 있게 해주었을 뿐입니다.

 우리, 정신을 가진 사람들은 '존재는 존재한다'는 원리의 이름으로 여러분에게 대항해 파업 중입니다. 그 원리는 우리 도덕률의 근원입니다. 여러분의 도덕률이 근원이 그 원리를 피하는 것인 것처럼요.

 존재는 존재한다. 이 말을 이해하는 행위는 두 가지 부수적인 원리를 함축하고 있습니다. 누군가가 인식하는 뭔가가 존재한다는 것과 의식을 가진 누군가가 존재한다는 것. 의식은 존재하는 것을 인식하는 능력이니까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면 의식이 존재할 수 없습니다. 의식할 것이 없는 의식은 용어상으로 모순이니까요. 그 자체밖에 의식할 게 없는 의식도 용어상의 모순입니다. 의식은 뭔가를 의식해야 의식이 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인식한다고 주장하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여러분이 갖고 있는 것은 의식이 아닙니다.

 여러분의 지식수준에 관계없이 이 두 가지, 즉 존재와 의식은 여러분이 피할 수 없는 원리입니다. 이 두 가지는 여러분이 인생의 출발선에서 인식한 첫 햇살부터 인생이 끝날 때의 박식함에 이르기까지 여러분 지식의 어느 부분이나 합에도, 여러분이 취하는 그 어떤 행동에도 해당되는 절대적인 제1원리입니다. 여러분이 아는 것이 조약돌의 모양이든 태양계의 구조이든, '그것이 존재하고 여러분이 그것을 안다'는 원리는 똑같습니다.

 존재한다는 것은 뭔가가 되는 것이며, 그런 점에서 비존재의 무와 구별됩니다. 존재한다는 것은 특저안 속성들로 이루어진 특정한 성질을 지닌 하나의 실체가 되는 것입니다. 수세기 전, 여러분의 철학자들 중 가장 위대한 철학자였던 이가 존재의 개념과 모든 지식의 법칙을 정의하는 공식을 내놓았습니다. 'A는 A다. 어떤 것은 그 자체이다.' 여러분은 그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내가 이 자리에서 그 공식을 완성시키겠습니다. '존재는 정체성이고 의식은 존재의 식별이다'

 여러분이 어떤 것을 고려하든, 그것이 하나의 사물이든 속성이든 행동이든 정체성의 법칙은 동일합니다. 나뭇잎은 나뭇잎인 동시에 돌일 수 없고 완전한 빨강인 동시에 완전한 초록일 수 없으며 얼어붙는 동시에 탈 수 없습니다. A는 A입니다. 더 쉬운 말로 표현하면,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는 없습니다.

 세상이 뭐가 잘못된 것인지 알고 싶습니까? 여러분의 세상을 파괴한 모든 재난은 여러분의 지도자들이 A는 A라는 사실을 회피하려 한 것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여러분이 직시하기를 두려워하는 여러분 내부의 모든 은밀한 악과 여러분이 견뎌온 모든 고통은 여러분이 A는 A라는 사실을 회피하려한 것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그 사실을 회피하라고 가르친 자들의 목적은 여러분이 인간은 인간이라는 사실을 잊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인간은 지식을 얻지 안고는 생존할 수 없으며, 이성은 인간이 지식을 얻도록 해주는 유일한 수단입니다. 이성은 감각이 제공하는 자료를 인식하고 식별하며 통합하는 능력입니다. 감각의 역할은 존재의 증거를 제고하는 것이고, 그것을 식별하는 역할은 이성이 합니다. 감각은 어떤 것이 있다는 것만 말해주고 그것이 무엇인지는 이성을 통해 알아야 합니다.

 모든 사고는 식별과 통합의 과정입니다. 인간은 하나의 색깔 덩어리를 감지하면 시각과 촉각의 증거를 통합해 그것이 단단한 물체이고 그 물체가 테이블이라는 사실을 알아냅니다. 그리고 그 테이블은 나무로 만들어져 있고, 나무는 세포들로 이루어져 있으며, 세포들은 분자들로, 분자들은 원자들로 이루어져 있음을 배웁니다. 이 모든 과정에서 인간의 정신이 하는 역할은 '이것이 무엇인가?'라는 단 하나의 질문에 답하는 것입니다. 그 답의 진실성을 확립시키는 수단은 논리이며, 논리는 '존재는 존재한다'는 원리에 근거합니다. 논리는 비모순적 식별의 기술입니다. 모순은 존재할 수 없습니다. 하나의 원자는 그 자체이고 우주도 마찬가지입니다. 원자든 우주든 그 자체의 정체성과 모순이 될 수 없으며, 부분이 전체와 모순이 될 수도 없습니다. 인간이 갖는 어떤 개념도 그 사람의 지식의 총합과 모순 없이 통합되지 않으면 유효할 수 없습니다. 모순에 이른다는 것은 자신의 사고에 잘못이 있음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모순을 유지하는 것은 자신의 정신을 포기하고 현실의 영역에서 물러나는 것입니다.

 현실은 존재하는 것이고, 비현실은 존재하지 않는 것입니다. 비현실은 존재의 부정일뿐이며 이성을 포기하려고 하는 인간의 의식 상태입니다. 진실은 현실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인간이 지식을 얻는 유일한 수단인 이성은 인간 진실의 유일한 기준입니다.

 지금 여러분이 던질 수 있는 가장 타락한 질문은 '누구의 이성'이냐는 것입니다. 그 대답은 '여러분의 이성'입니다. 여러분의 지식이 뛰어나든 그렇지 못하든, 그것을 얻어내야 하는 것은 여러분의 정신입니다. 여러분은 자신의 지식으로만 거래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자신의 지식에 대해서만 소유권을 주장할 수 있고 남들에게 고려해달라고 요구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정신은 여러분 진실의 유일한 판관입니다. 만약 다른 사람들이 여러분의 판결에 동의하지 않는다면 현실이 최고 법원이 됩니다. 오직 인간의 정신만이 생각이라는 복잡하고 섬세하고 중대한 식별과정을 수행할 수 있습니다. 오직 인간의 도덕적 고결성만이 판결을 이끌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도덕적 본능'이 이성에 반대되는 별개의 자질인 것처럼 말하지만, 인간의 이성은 바로 도덕적 자질입니다. 이성의 과정은 '진실이냐 거짓이냐?' 혹은 '옳은가 그른가?'의 질문에 답하는 부단한 선택의 과정입니다. 씨앗을 땅에 뿌려 자라게 하는 것은 옳은가, 그른가? 인간의 상처를 소독해 생명을 구하는 것은 옳은가, 그른가? 대기전기를 운동에너지로 전환시키는 것은 옳은가, 그른가? 이런 질문들에 대한 대답이 지금 여러분이 갖고 있는 모든 걸 여러분에게 제공했습니다. 그리고 그 대답은 인간의 정신에서 옳은 것에 고집스럽게 헌신하는 정신에서 나왔습니다.

 합리적인 과정은 도덕적인 과정입니다. 그 과정에서 여러분을 보호해줄 수 있는 것은 자신의 엄격성밖에 없으므로 여러분은 실수를 저지를 수도 있습니다. 혹은 일부러 증거를 조작하고 진실 추구를 회피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진실에 대한 헌신이 도덕성의 증표라면, 생각이라는 책임을 수행하는 인간의 행위보다 더 위대하고 숭고하고 영웅적인 헌신은 없습니다.

 여러분이 영혼이나 정신이라고 부르는 것은 여러분의 의식입니다. 여러분이 '자유의지'라고 부르는 것은 여러분의 정신이 지닌 생각의 자유입니다. 여러분의 유일한 의지, 여러분의 유일한 자유, 여러분의 모든 선택을 지배하고 여러분의 삶과 인격을 결정하는 선택권입니다.

 생각은 인간의 유일한 기본 미덕으로, 그것으로부터 다른 모든 미덕이 나옵니다. 반면에 인간의 모든 악의 근원이 되는 기본 악덕은 여러분 모두가 실행하고 있지만 인정하지 않으려고 발버둥치는 것, 바로 자신을 지우고 의식을 의도적으로 정지시키고 생각하기를 거부하는 행위입니다. 그것은 눈이 먼 것이 아니라 보기를 거부하는 것이고, 무지한 것이 아니라 알기를 거부하는 것입니다. 판단의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일부러 정신의 초점을 흐리게 하고 마음에 안개를 피우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A는 A'라는 판결을 내리지 않는 한 'A는 A'가 아니라는 암묵적인 전제 아래에서요. 생각하지 않는 것은 소멸행위입니다. 존재를 부정하고 싶어하는 바람이고, 현실을 지우려는 시도입니다. 하지만 존재는 존재하고 현실을 지워질 수 없습니다. 오히려 현실을 지우려는 사람이 지워질 뿐입니다. 현실을 부정하는 것은 스스로를 부정하는 것입니다. '내가 뭔데 알 수 있겠어?'라고 묻는 것은 '내가 뭔데 살 수 있겠어?'라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여러분이 매순간 모든 문제에 대해 내리는 기본적인 도덕적 선택은 생각하느냐 생각하지 않느냐, 존재하느냐 존재하지 않느냐, A냐 A가 아니냐, 실체냐 무이냐 입니다. 인간이 합리적이라면 삶이 행동의 지침 역할을 합니다. 인간이 비합리적이라면 죽음이 행동의 지침 역할을 합니다.

 도덕은 사회적인 것이며, 무인도에서는 도덕이 필요하지 않다고 떠드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도덕이 가장 필요한 곳은 바로 무인도입니다. 여러분 대신 대가를 치러줄 희생자가 없는 무인도에서 바위는 집이고, 모래는 옷이고, 먹을 것은 원인도 노력도 없이 저절로 입안으로 떨어지고, 오늘 종자를 먹어치우면 내일 수확을 얻게 될 거라고 주장해보세요. 그럼 현실이 여러분을 없애줄 것입니다. 그래야 마땅하고요. 현실이 여러분에게 삶은 값을 치르고 사야 하는 가치이며, 그것을 살 수 있는 화폐는 생각뿐임을 일깨워줄 것입니다.

 여러분의 언어로 이야기하자면 인간의 유일한 도덕 계명은 '생각하라'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도덕 계명'이라는 용어 자체가 모순입니다. 도덕은 선택하는 것이지 강요되는 것이 아니며, 이해하는 것이지 복종하는 것이 아니니까요. 도덕은 합리적인 것이며 이성은 계명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나의 도덕은 이성의 도덕으로서 '존재는 존재한다'는 단 하나의 원리와 '산다'는 단 하나의 선택에 들어있습니다. 나머지는 이 두 가지에서 나옵니다. 인간은 살기 위해서는 다음 세 가지를 삶의 최고 가치로 삼아야 합니다. 바로 이성, 목적, 자존감입니다. 이성은 지식을 얻는 유일한 수단이고, 목적은 그 수단을 통해 이루고자 하는 것을 행복으로 설정하는 것이며, 즉 살 가치가 있다는 것에 대한 흔들리지 않는 확신입니다. 이 세 가치는 인간의 모든 미덕을 내포하고 요구합니다. 합리성 독립성 고결성 정직성 정의감 생산성 자긍심 같은 인간의 모든 미덕은 존재와 의식의 관계에 속해 있고요.

 합리성은 존재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 진실을 바꿀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으며, 그 진실을 인지하는 행위인 생각보다 우위에 있는 것은 없습니다. 정신은 가치의 유일한 판관이며 행동의 유일한 지침입니다. 이성은 타협을 허용하지 않는 절대적인 것입니다. 비합리에의 양보는 의식을 무력화시키고 현실을 인식하는 대신 현실을 속이게 만듭니다. 지식의 지름길이라고 알려진 믿음은 정신을 파괴하는 지름길일 뿐입니다. 신비주의적 허구를 받아들이는 것은 존재의 소멸을 원하는 것이며, 그 결과 의식을 파괴하게 될 뿐입니다.

 독립성은 자신에게 판단의 책임이 있으며, 그 무엇도 그 책임에서 벗어나게 도와줄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 누구도 여러분의 생각을 대신할 수 없으며, 여러분의 삶을 대신 살아줄 수 없습니다. 가장 사악한 형태의 자기비하와 자기파괴는 자신의 정신을 다른 사람의 정신에 종속시키고,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머리를 맡기며, 다른 사람의 주장을 진실로 받아들이고, 다른 사람의 명령을 자신의 의식과 존재 사이의 중재자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고결성은 자신의 의식을 속일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정직이 존재를 속일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듯이요. 인간은 물질과 의식이라는 두 가지 속성이 통합된 분리 불가능한 실체이며, 육체와 정신, 행동과 생각, 삶과 신념의 분리는 허용될 수 없습니다. 판사가 여론에 휘둘리지 않는 것처럼 다른 사람들의 요구에 따라 자신의 신념을 희생시켜서는 안 됩니다. 온 세상 사람들이 애원하거나 협박해도요. 용기와 자신감은 실질적인 필수품입니다. 용기는 존재에 대한 충실, 진실에 대한 충실의 실질적 형태이고, 자신감은 자신의 의식에 대한 충실의 실질적 형태이기 때문입니다.

 정직성은 비현실은 비현실이고 가치를 지닐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기만에 의해 얻어진 것이라면 사랑도 명예도 돈도 가치를 지닐 수 없습니다. 다른 사람들을 속여서 가치를 얻고자 하는 것은 상대를 현실보다 높은 위치로 끌어올리는 행위입니다. 그러면 상대의 무지의 저당물, 상대의 생각 없음과 회피의 노예가 되며 상대의 지성과 합리성, 지각력을 두려워하고 피할 수밖에 없습니다. 정직성은 의존적인 삶을 거부하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의 어리석음에 의존해 자신이 속인 바보들을 가치의 원천으로 삼는 바보로 사는 것을 거부하는 것입니다. 정직은 사회적 의무나 다른 사람들을 위한 희생이 아니라 인간이 실천할 수 있는 가장 심오하고 이기적인 미덕입니다. 다른 사람들의 미혹된 의식에 자기 존재의 현실을 희생시키기를 거부하는 것입니다.

 정의감은 자연의 성질을 날조할 수 없는 것처럼 사람들의 성질도 날조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사람들을 평가하는 데 사물을 평가할 때처럼 양심적이어야 합니다. 사물을 평가할 때처럼 진실을 존중하고 청렴한 시각을 가져야 합니다. 식별의 과정처럼 순수하고 합리적이어야 합니다. 모든 인간은 있는 그대로 평가받고 그에 따라 대우받아야 합니다. 녹슨 고철덩어리를 반짝이는 금속보다 더 비싸게 쳐주지 않는 것처럼 건달을 영웅보다 높이 평가해서는 안됩니다. 여러분의 도덕적 평가는 사람들의 미덕과 악덕에 지불하는 돈과 같으며, 금전적인 거래를 하듯 정확해야만 합니다. 사람들의 악덕에 대한 경멸을 억제하는 것은 도덕적 위조 행위이고, 미덕에 대한 감탄을 억제하는 것은 도덕적 횡령행위입니다. 정의보다 다른 것을 우선시하는 것은 자신의 도덕적 화폐를 평가절하하는 것이며, 악한 자를 위해 선한 자를 사취하는 것입니다. 정의의 불이행으로 손해를 보는 것은 선한 자이고, 이익을 얻는 것은 악한 자이니까요. 그 길 끝에 있는 구덩이 바닥에는 도덕적 파산 행위가 있습니다. 미덕을 가진 사람들을 벌하고 악덕을 가진 자들에게 보상을 해주는 행위, 그것은 완전한 타락이고 죽음을 경배하는 검은 미사이며 여러분의 의식을 존재의 파괴에 바치는 것입니다.

 생산성은 도덕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자신이 살기로 선택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생산적인 일은 인간의 의식이 자신의 존재를 통제하는 과정입니다. 지식을 얻어 자신의 목적에 맞게 다듬고, 관념에 물리적 형태를 부여하고, 세상을 자신이 갖고 있는 가치들의 모습으로 재창조하는 부단한 과정입니다. 생각하는 정신으로 이루어지는 모든 일은 창조적이고, 남들에게서 배운 것을 무비판적으로 반복하는 것은 창조적일 수 없습니다. 여러분의 일은 여러분이 선택하는 것이며, 그 선택의 폭은 여러분의 정신에 달려있습니다. 여러분의 정신 이상의 것은 여러분에게 불가능하고, 그 이하의 것은 인간답지 못합니다. 여러분의 정신이 감당할 수 있는 것보다 더 큰일을 하는 것은 빌린 활동들과 빌린 시간에 대한 두려움에 시달리는 원숭이가 되는 것이고, 여러분의 정신이 지닌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필요가 없는 일에 안주하는 것은 자신의 모터를 끄고 스스로에게 다른 종류의 활동인 쇠퇴를 선고하는 것입니다. 


소설 Atlas Shrugged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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