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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heStrok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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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연 나는 정말 내가 생각하는 것처럼 특별한 사람인가? 어린 시절 우리의 부모가 우리 귀에 대고 ‘아가야 너는 정말 특별한 아이란다’라고 으레 속삭이던 것처럼 우리는 정말 특별한 존재인가? 만약 그렇지 않다면? 나도 그저 남들과 별 다를 바 없는 평범한 사람이라면? 자신이 믿고 있던 신념이나 가치 체계에 의구심이 드는 순간 인간은 무너지기 시작한다. 이 앨범은 이러한 자기 자신의 존재론적 가치에 대해 자조감 섞인 의문과 함께 시작한다. 굉장히 특별하고 대단하다고 생각했던 나 자신이 알고 보니 남들과 똑같은 인간일 뿐이란 것을 깨달으면서 이석원(언니네이발관의 보컬, 리더)은 앨범작업을 시작한다. 언뜻 소개만 들으면 굉장히 어둡고 우울한 분위기의 앨범일 것만 같은 느낌이 뇌리를 스친다. 아니면 반대로 오히려 굉장히 신나고 발랄하게, 문학적 표현을 빌리자면 반어법적인 방식을 사용했을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예상 외로 이 앨범은 상당히 담담한 어조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의도적이든 아니든 이전 감상일지에 쓰인 다른 앨범들과는 달리 이 앨범은 버스 안에서 감상했다. 버스라는 ‘미디어(사람간의 소통을 가능하게 해주는 매개체라는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 미디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는 어찌 보면 ‘가장 보통의 존재’에 가장 걸맞은 장소이다. 더 이상 특별하지도, 못나지도 않은 시민들의 이동수단인 버스가 이 앨범을 감상하기에 최적화 된 장소란 것이 개인적인 생각이다. 버스에는 참으로 다양한 사람이 타고 내린다. 이제 막 세상을 향해 걸음마를 시작한 어린아이부터, 세상의 풍파를 겪을대로 겪어서 눈가와 입가에는 잔다랗게 주름이 진 노인들 까지. 이제 막 사회를 향해 첫 발을 뗀 신입사원들부터, 사회의 온갖 고초를 겪은 후 남은 거라곤 ‘명예롭지 않은’ 명예퇴직과 자식들의 몇 학기 등록금 정도 되는 퇴직금뿐인 쓸쓸한 뒷모습의 아저씨들까지. 매우 다양한 연령과 층위의 사람들이 타고 내리는 버스. 굉장히 다양해 보이는듯하지만 사실은 그들 모두 ‘가장 보통의 존재’에 불과하다. 어느 누구 하나 특출 난 사람이 없다. 저마다 장편소설 수 십 권을 써도 모자랄 대장정을 겪었지만(혹은 겪을 것이지만) 거시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그들은 결국 모두 ‘서민’ 혹은 ‘일반인’이라는 개념으로 묶일 뿐이다.

개인적으로 이 앨범의 정수로 꼽는 8번 트랙인 ‘인생은 금물’이라는 곡은 이런 가사와 함께 시작한다. ‘언젠가 우리 별이 되어 사라지겠죠. 모두의 맘이 아파올 걸 나는 알아요. 하지만 어쩔 수 없죠. 그렇게 정해져 있는 걸. 세상을 만든 이에겐 아무 일도 아닐 테니까.’ 우리가 아무리 복잡다난한 삶을 살고 서로 못 잡아먹어서 으르렁 대도 결국 저기 위에 있는 사람들(그게 신이든 기득권층이든) 눈에는 다 똑같은 것들 끼리 아웅다웅하는 것으로 밖엔 안보일 것이다. 마치 우리가 개미들의 움직임을 관찰할 때 느낄 수 있는 그것처럼 말이다.

앨범이 마지막 트랙의 끄트머리를 읊조리고 있을 무렵 버스는 우리 집과는 너무나도 먼 곳에 와있었다. ‘이제 그만 집에 가야지’라는 생각을 하며 버스에서 내리는 순간 이어폰에서는 ‘나는 이런 평범한 사람. 누군가의 별이 되기엔, 아직은 부족하지. 그래도 내가 원하네. 나는 나의 길을 가. 외로워도 멈출 수 없는 그건 나의 길’이라는 가사가 흘러나왔다. 이게 바로 44분간 진행된 이야기의 결말이다. 나는 지극히 평범한 인간이자 사회라는 거대한 기계를 구성하는 수많은 부품 중 일개 너트와 같은 하찮은 비중밖엔 차지하지 못하지만, 적어도 나에게 있어서 내 인생은 너트가 아닌 엔진이며 가장 중요하고 아름다운 가치를 지니고 있다. 그리고 이런 하찮은 나라도 세상 그 어느 누군가에겐 소중한 사람일 것이며 그 사람을 위해서라도 이 걸음을 멈출 수 없다는 것이 바로 ‘가장 보통의 존재’들이 내놓은 ‘가장 특별한’ 결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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