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일어났다. 아니 일어나졌다고 하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이겠구나. 전 날 너무 잠이 안와서 수혜자한테 편지도 쓰고 음악 듣고 글 쓰다가 새벽 다섯시에 잤다. 아홉시 기상인데 다섯시에 잤다. 자는 도중에 누가 와서 밥 놓고 간 기억은 있다. 근데 제정신도 아닌 채로 '아 밥 저기 놔주세요. 이거 치워야지 으어앙... 어찌고 저찌고 중얼중얼' 한 기억 밖에 없음. 아이고 넌 왜 자다가도 일어나서 제정신인 척하냐. 선생님 얼마나 어처구니가 없었을꼬. 또 자다가 아홉시에 강제 기상. 정신이 날 깨웠다. 대충 씻고 면도하고 방 청소하고 일어났다. 담배피러 가야지.
피고 오는 길에 찍은 병원 사진.
방 돌아와서 쓰레기 분리수거 하고 이불 원위치 시키고 청소 좀 하는데 한시간 정도 걸렸다. 그러고 나가서 담배 한대 피는데 담당 간호사 누나한테 전화가 왔다.
'야이 새끼야 어디갔어?'(당연히 과장이다)
'아 잠깐 나왔어요. 좀 기다리셈!'하고 21층에 가니 선생님이 불쌍하게 라운지에 앉아계셨다. 걍 내 방에서 편하게 앉아계셔도 되는데 으 나 때문에 그러지 마요. 난 그런 배려를 받을 사람이 아닙니다. 맨날 내 이름 뒤에 '님'자 붙이면서 부르는데 너무 부담스럽다.
또 누나랑 이런 저런 얘기 하면서 엘리베이터 타고 퇴원수속하러 갔다. 가는 길에 토익이 어떻고 공모전이 어떻고 취업이 어떻고~~ 그러고 나는 택시 타고 선생님은 수속 밟으러 가고. 아쉬웠다. 나 때문에 몇 달을 고생한 사람한테 고맙다는 말 한마디도 못하고 떠나버렸네. 병원 간호사 선생님들은 사진 한 장씩 찍었는데 정작 담당 선생님은 못 찍었다. 2주 뒤에 건강검진 갈 때 꼭 찍어야지.
집에 도착해서 엄마아빠한테 전화 한 통씩 돌렸다. 방에 가만 누워있는데 나도 모르는 새 잠들었다. 일어나니 저녁 아홉시.
고질병이 도졌다. 우울감. 아 시부랄 잊어야지 싶어서 미리 구매해둔 노이슈반슈타인 성을 맞췄다.
현실을 잊기 위해서다. 난 레고 좋아하고 뭔가 만드는 걸 좋아한다. 이거에 집중하다보면 아무 생각이 없어지니까. 멍하니 네세간이고 다섯시간이고 만들다보면 고민을 잊게 된다. 그냥 몇 시간이고 훌쩍 지나간다. 생각이 많을 땐 역시 블럭이지.
그러고 오후 한시에 일어났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잠을 왜 이렇게 많이 잤을까.'술 절대 먹으면 안된다'는 말을 귓등으로도 안들은 채 준수형한테 전화를 했다. 유일하게 병문안을 와준 내 친구.
양꼬치 먹으면서 형한테 이런저런 얘기를 털어놓고 집에 왔다. 2차 가긴 싫었다. 나 자신과 술 한잔 하고 싶어서. 노래 틀어놓고 어제 시켜놓은 피자 안주 삼아 맥주 먹고, 그루나루 가서 아이스민트모카초코(6500원) 먹고. 지금 3일 간의 경험을 정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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