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기간이라 중도 지하2층에 짱박혀 있었다.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와서 받았는데 '안녕하세요~ 가톨릭조혈모세포 은행 xxx코디네이터입니다'로 시작된 통화.
근데 이 사람의 느낌, 촉이란게 무시할 게 못 된다. 며칠 전부터 괜히 골수기증 정보를 검색하고 후기를 찾아보고 싶더라니... 드디어 올 것이 왔다.
이야기는 약 4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전경이었던 나는 소위 말하는 닭장차 운전병으로 차출되어 충주 경찰학교로 대형면허 교육을 갔더랬다.
면허 딴지 2년이 넘었고 운전대는 잡아본 적도 없었지만 단순히 '1종 보통 면허 취득 후 1년 이상 된 자'라는 자격 하나만으로 대형면허 응시자격이 주어져 운전병으로 낙점된 것.
음...
육군훈련소 끝나고 후반기 교육 때 잠깐 들렀던 곳에 다시 가니 감회가 새로웠다. 한 2주 정도 교육을 받았을 무렵이었다. 문득 내가 코스 연습하는 버스에 20명 가량 되는 동료들이 타고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나중에 면허를 취득해서 실제 길에 나가면 우리 부대원들의 목숨은 내 운전에 달려있겠구나.. 상당한 압박감.
뜬금 없게도 내 골수와 장기기증 신청은 이런 계기였다. 생명 존중, 목숨.
연습이 끝나고 숙소로 돌아오자마자 장기기증센터에 전화를 걸어 우편으로 신청서를 보내달라고 했다. 사람 살리는 거 또 뭐 없나 찾아보던 와중에 바로 이거, 조혈모세포 기증을 발견했다. 장기기증은 내가 죽었을때나 가능하지만 이건 내가 살아있을 때, 그것도 매우 건강할 때만 할 수 있다는 면에서 매력적이었다.
그렇게 일주일 뒤 난 세 번의 도전 끝에 대형면허를 따는데 성공했고, 부대로 복귀하는 길에 전주 시내 모 헌혈의 집에 가서 골수기증 신청을 했다. 일치 확률이 수만분의 일이라길래 좀 아쉬웠다. 그후 난 남은 군생활 1년을 덕진경찰서에서 보낸 뒤 사회로 돌아왔다.
2012년 6월 22일. 내가 전역한 날이다. ㅋㅋㅋ
그리고 오늘 드디어 일치한다는 전화를 받았네.
전화 받자마자 너무 기뻐서 도서관에서 단말마의 비명을 질렀다. 민폐꾼.
이런 저런 설명을 들은 후 가족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아빠는 '니가 한 약속이니 지켜라'라며 쿨하게 동의했다. 그러나 생각지 못한 엄마의 반대.
사실 반대라기 보다는 안했으면 좋겠다라는 투로 얘기한다. 근데 어차피 내가 하지 말라고 안 할 놈도 아닌걸 아셨는지 나중엔 맘대로 하라셨다. 글을 수정하고 있는 지금은 매 달 아빠 몰래 용돈을 부쳐주시며 '골수기증 때까지 맛있는거 많이 먹어'라고 하실 정도로 큰 지지를 보내주시기도ㅎㅎ
아무튼 이번 기회는 수혜자 뿐 아니라 내게도 커다란 힘이 될 것 같다. 무료한 일상, 취업 걱정, 시험 스트레스 등으로 고달팠던 나를 응원하는 느낌. 내가 더욱 가치 있는 사람이란 걸 인정 받는 기분.
역시 골수는 기증해야 제 맛.
자 그럼 조금만 더 힘내세요. 제가 살려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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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증 신청 당시 블로그에 쓴 일기를 찾아봤는데....
미친 ㅋㅋㅋㅋㅋ 그 놈의 담배는 한 열번은 끊었네
이 때 장기기증 신청도 같이 했었지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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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저나 백색왜성씨 너도 참 어마어마하게 오랫동안 내 투정 받아주는구나 정말. 4년 전 이야기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줘서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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