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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by TheStrok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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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07월 04일 (일)

오랜만에 아침에 일어났다. 언제나 그렇듯 현관에 쪼그려 앉아서 담배를 폈다. 아침에 일어나니까 햇볕도 쬘 수 있다.
맨날 이렇다. 그냥 졸리면 자고 배고프면 먹고 술마시고 싶으면 술 먹는다. 그냥 이렇다. 맨날 똑같다. 내가 그렇지 뭐. 
이런 생각을 한참 하다가 문득 이대로 내 방학을 보낼 순 없다고 느꼈다.
바로 방으로 들어가서 짐 쌌다. 별거 없다. 갈아입을 옷 하나랑 속옷, 칫솔, 수건, mp3, 지갑, 핸드폰. 이게 끝이다. 그러고선 아무 생각없이 바로 나왔다.
충무로역 까지 걸어가면서 어디로 갈까 생각했다. 저번에 1박2일에서 강원도 영월을 갔었는데 거기 깎아지른듯한 절벽이 나왔다. 그게 너무 보고싶었다. 고등학교 다닐 때였나 가족 휴가를 강원도로 간 적이 있다. 그 분위기도 너무 느껴보고싶었다. 별거 없다. 그냥 가고싶으면 가는거다. 
이번 여행(?) 목적도 그렇다. 그냥 가고 싶은 곳 가고 계속 걸으면서 나오는거 보고 느끼고 즐거워 하는게 목적이라면 목적이다. 
강남터미널에서 영월 가는 버스를 탔다. 한 두시간쯤 걸린것 같다.

영월 버스 터미널에 도착해서 택시기사 아저씨께 동강이 어디냐고 물었다. 

B : 걸어가려면 좀 멀텐데
A : 괜찮아요. 갈 수 있어요
B : 그래. 요렇게요렇게 요렇게 가믄 돼
A : 고맙습니다

가다보니까 주위를 둘러보니 내가 있는 곳은 읍내 비슷한 곳이었다. 사실 아무 생각 없이 떠나온거라지만 그래도 긴장 되긴 됐다. 영월 터미널에 내려서는 버스에서 자다 일어나서 그런지 약간 정신이 없었고 잠에서 깨니 이게 뭔짓인가 싶어서 다시 돌아갈까도 생각해봤다. 근데 길 물어보고 좀 걷다보니 정신이 돌아왔나보다. 주위 풍경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내가 있는 곳은 시내라기엔 좀 작고 시장이라기엔 좀 커. 읍내다. 우린 주위를 자세히는 아니더라도 조금씩은 둘러보면서 살아갈 필요가 있는 것 같다. 아니면 내가 지금 어딨는지 뭐하고있는지 조차 모른다. 

아무튼 기사님 말대로 가다보니 요상한 다리가 하나 나왔다. 분명 차가 다니긴 하는데 내가 그 다리에 올라가는 순간 무너져버릴 것 같았다. 난 어렸을 때 아빠 차 타고 돌아다닐 때 다리가 나오면 '딱 우리 차 까지만 지나가고 우리 뒤부턴 무너져도 돼'라는 생각을 했다. 괜히 다리 위에선 온몸에 힘이 들어가고 긴장됐다. 다리를 거의 건넜을 때 쯤엔 '이정도 왔으면 이거 무너져도 살 수 있겠다!' 라고 생각하며 마음을 놓았다. 아 자꾸 얘기가 딴데로 새어나간다.

 그 다리를 향해 조금씩 조금씩 걸어갔다. 근데 그 다리 위에 올라가는 순간 진짜 난 너무 행복했다. 다리를 기준으로 양 옆으로 내가 그렇게 보고싶어 하던 '깎아지른듯 한 절벽'이 한도 끝도 없이 펼쳐져 있었다. 다리에 올라가기 전엔 다른 것들에 가려져서 절벽이 보이질 않았다. 올라가니까 보인다! 역시 괜한 걱정이었군. 그 자리에서 한 10분정도 멍때리고 앉아있었던것 같다. 너무 멋있어서. 

 다시 또 걸었다. 다리가 거의 끝나갈 무렵 왼쪽에 보니까 천막같은게 무지 많고 음식냄새가 엄청 났다. 가서 물어보니까 오늘이 영월 장날이라고 하신다. 헐.... 가는날이 장날이다. 난 배도 고프고 구경 할 겸 해서 그 천막들 속으로 들어갔다. 근데 가진 돈이 별로 없어서 아무것도 못샀다. 앞으로 얼마나 더 돌아다닐지도 모르는데 이런데서 돈을 쓰면 안되겠다 싶었음. 내가 여행 온 걸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나밖에. 부모님도 모른다. 누구한테 도움 청하긴 싫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나 혼자 해볼거다.

장 열린 천막을 지나서 이제 진짜 나 혼자다. 차도 잘 안지나다닌다. 사람 찾아보긴 더더욱 힘들다. 그래서 더 좋았다. 평소엔 못하던 걸 많이 했다. 걸으면서 진짜 크게 노래 부르고 소리 지르고 진짜 누가 보면 별 미친놈 다 보겠네 할 정도로 지랄 발광을 했다. 너무 좋았다. 상관없다. 아무도 보는 사람 없다.
 그러면서 계속 걷는데 아무 계획도 없이 왔는데 길을 알리가 없다. 하지만 난 평소에 사람이 갈 수 없는 곳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길 모르는건 별로 개의치 않았다. 근데 이것때문에 고생 많이 했다. 길을 계속 가는데 점점 주택가로 들어간다. 으이... 이게 뭐지... 그래도 계속 갔다. 그 길 끝에는 밭이 있었다. 밭을 밟으면서 넘어갔다. 그 뒤엔 덤불이 있었다. 거기엔 진짜 뱀이 있을것 같았다. 근데도 점프를 했다. 간신히 통과했다. 그 다음엔 왠 뻘밭같은 곳 위에 나무가 크게 자라고 있었다. 그 뒤엔 또 뭔지 모른다. 어떻게든 지나가보려 했는데 도저히 못해먹겠더라. 그냥 다시 돌아갔다. 큰 찻길로 나갔다. 찻길 따라서 가다가 강가로 내려갔다. 내려가니까 사람들이 꽤 많이 있었다. 위에서 볼 땐 몰랐는데 내려오니까 많았다. 헐 ... 귀신인가.
 세수 하고 강을 따라서 쭉 갔다. 근데 길이 또 막혔다. 강물로 막혀있다. 근데 절벽 타고 올라가서 저쪽으로 가면 수심이 얕아서 갈 수 있을 것 같다. 절벽 타고 올라갔다. 근데 이거 생각보다 되게 힘들다. 절벽에 이끼가 껴있어서 너무 미끄러웠다. 그러다가 발 헛디뎌서 시원하게 발 한번 담갔다. 여기가 강에서도 약간 구석진 곳이라 그런지 물이 진짜 너무 드러웠다. 근데 거기 내 발을 담갔다. 아.... 그래도 나에게 이까짓 더러움 쯤은 아무것도 아니다. 다시 도전. 이번엔 양쪽 다리 무릎까지 빠졌다. 후.. 이쯤 되니 슬슬 오기가 생겨서 악으로 덤볐다. 역시 안되는게 없더라. 다 올라갔다. 근데 위에서 보니 도저히 건너갈 수가 없게 생겼다. 내가 슈퍼 스마트 갤럭시S 남자가 되지 않는 이상은 불가능했음. 거리가 너무 멀고, 물에 빠지면 그대로 저승사자랑 하이파이브 할 기세였다. 아무리 오기가 발동한다고 해도 목숨과 바꾸긴 싫었다. 너무 힘들어서 내려가자마자 주저앉았다.
 앉아서 흐르는 강을 보면서 그냥 가만히 앉아있었다. 내가 이짓을 왜 했지? 그냥 돌아가면 될걸. 난 항상 이렇다. 꼭 쉽게 쉽게 가는 길을 뻔히 아는데도 일부러 어려운 길로 가려고 한다. 미친 변탠가보다. 고등학생 때 문과 이과 결정 할 때도 그랬다. 문과 가면 대학 가기 어렵다는 선생님들의 말을 듣고 문과 왔다.
쓰다보니까 글이 너무 길어진다. 아직 이 날 일어난 일은 반정도 밖에 안적었는데. 좀 줄여가면서 써야겠다.
세수 하고 더러워진 신발 대충 헹구고 다시 일어났다. 왔던길로 돌아올라가서 걷다보니 테디베어박물관이 나왔다. 너무 반가웠다! 자판기가 있었기 때문에!
주머니에서 동전 꺼내서 음료수 뽑아먹으면서 박물관 구경을 하려고 했다. 근데 자판기는 고장나있고 박물관 안에는 사람 흔적도 안보였다. 문도 잠겨있고 불도 꺼져있었다. 이건 뭐...
어쩔수 없지 뭐...
 다시 가던 길 갔는데 한 아저씨를 만났다. 이 방황하는 짓의 목적지는 없지만 그래도 한번 가고 싶었던 곳은 바다다. 우연히 만난 아저씨에게 바다로 가려면 어느 방향이냐고 물었다. 그 아저씨는 진짜 어이 없었을거다. 강원도 영월 산골짜기에서 어떤 정신 너갱이 빠진놈이 바다를 찾을까. 근데 내 말 뜻은 그게 아니라 바다가 있는 방향이 어디냐는거였다. 산을 넘든 강을 건너든, 며칠이 걸리든 한번 걸어가볼생각이었다. 근데 그 아저씨는 날 죽일듯이 쳐다봤다. 그러더니 '여기 바다가 어딨어!!'소리쳤다. 아...ㅡㅡ.. '죄송합니다'. 그래 이게 맞는거다. 내가 이상한거다. 근데 기분이 너무 별로였다. 사실 내가 만난 사람들만 그런지는 몰라도 여기 사람들은 너무 타인을 싫어하는 것 같다. 오늘 하루만 해도 싸울뻔 한게 한두번이 아니다. 뭣만 물어보면 사람을 쏘아 보면서 대답은 커녕 손짓으로, 그것도 아니면 그냥 말을 씹는다. 화가 너무 많이 났다. 해도해도 너무 한다 이건 ....
그 얘기 하면 열만 나니까 이쯤에서 그만 둬야지.
날도 슬슬 저물고 해서 잘데를 찾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다시 그 읍내로 나가야할것 같았다. 이제 물어보기 싫다. 나 혼자 할거다. 내가 직접 버스 정류장 찾았고 노선, 시간표 보고 차 탔다. 배가 너무 고파서 짜장면 한그릇을 먹었다. 진짜 맛있었음. 옛날 짜장이라고 해아하나 약간 시큼한 맛 나는거. 그거였다. 다 먹고 뭐 마실거 살겸 담배도 살겸 해서 편의점엘 갔다.
살거 사고 계산 하면서 알바생한테 근처에 찜질방이나 사우나 있냐고 물어봤는데 밖으로까지 나와서 알려줬다. '아 요기서 이렇게 이렇게 가면 버스정류장 있는데요 거기서 어디어디 가는 버스를 타시고 내리면 사우나 작은 거 하나 있어요.' 라고. 진짜 고마웠다.
 알바생과 일당들의 친절한 도움대로 이렇게 이렇게 가서 버스를 타고 요렇게 요렇게 해서 내렸다. 근데 버스에 내리자마자 그냥 한 5분간 멍때렸다. 헐... 그냥 헐 이였다. 진짜 주위가 깜깜하고 아아아아무것도 없다. 진짜 이런데 사우나가 있다고? 이 염병.....알바생에게 낚인걸지도 모른다.  얼른 상황 파악에 들어갔다. 일단 담배 한대 피면서 생각해보자. 생각 할땐 담배피는것 만한게 없는 것 같다. 생각 정리할 때 최고다. 가만히 앉아있으면 자꾸 정신만 사나워진다. 뭐라도 하나에 집중하면서 생각하는게 더 생각이 잘 된다.
생각 하고 내린 결론은 저기 불켜진 약국에 가서 사우나 가는 길을 물어보는 거다. 알려줬다. 역시나 날 김길태 보는 눈으로 쳐다보면서.
우여곡절 진짜 이 단어가 딱 맞는다. 너무 힘들게 도착했다. 그리고 시계 보고 깜짝놀랐다. 난 열두시 넘었을 줄 알았다. 근데 아직 9시 간당간당 했다. 시골이라 해가 빨리 지나보다. 오호.
빨리 사우나 들어가고 싶은 생각밖엔 없었다. 근데 이 빌어쳐먹을 사우나는 주인이 부재중이다. 문은 열려있다. 세상에나. 그냥 카운터에 돈 두고 찜복이랑 수건 내가 알아서 챙겨 들어갔다. 옷 대충 벗어놓고 탕에 들어가서 으허허~ 하고 있는데 누가 들어온다. 청소하시는 분인갑다. 날 보고는 다시 나가신다. 헐 나때문에 청소 못하나....? 평소 같았으면 이런거 신경 안쓴다. 난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고 남 불편하든 말든 상관 안한다. 근데 이 때는 왠지 내가 나가야 할 것 같았다. 그 아저씨 뒷모습이 너무 힘들어보였다. 빨리 일 끝내고 집에 가고싶어 하는게 분명하다. 난 대충 씻고 나왔다. 들어올 땐 정신 없이 들어와서 몰랐는데 여기 너무 덥다. 찜질복으로 갈아입고 자는 곳으로 올라갔다. 사람이 나 포함 열명정도 돼보였다. 아저씨들은 입에 욕지거리가 달라 붙어있다. 첨엔 호치키스로 주둥이에 욕을 찍어놓은 줄 알았다. 한마디 한마디 내뱉는 것 마다 욕이다. 참....
매점에서 핸드폰 충전기 빌려서 충전하고 일기를 썼다. 너무 피곤해서 일기까진 아니고 그냥 메모 형식으로 적어놓은 것이다.
오늘 느낀 건 '내가 자기한테 친절하게 대해주면 사람들은 나를 자기 아래에 있는 놈으로 생각하며 깔본다' 이거. 이 생각은 여행을 할 수록 점점 바뀌긴 했지만 이 때 느꼈던 감정은 이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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