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인칭을 가장한 1인칭 영화. 지금까지 본 영화가 관객 입장이었다면 곡성은 주인공 시점이다. 내가 주인공이 된다. 시선으로 타자와 자아를 구분했던 사르트르가 이 영화를 봤다면 패배를 외쳤을게다. 시선을 매개로 철저한 내가 된다.
시작은 평범하다. 절대 현혹되지 말라는 포스터 글귀에 단단히 낚이면서 고고. 영화 시작부터 계속되는 '미끼'는 다른 게 아니라 저 문구다. 관객은 여느 영화처럼 '그래~ 뭐라고 떠드나 보자~'라며 의자에 몸을 한껏 묻는다. 근데 가면 갈수록 빠져들어서 정신차리고 보면 물 한 방울 입에 안 대고 있다. '대체 누가 범인이야??!!' '내가 곽도원이면, 아니 나라면 어떻게 행동할까' 후반엔 추리에 추리를 거듭한다. 그러다가 끝내 '에라이 씨발 어차피 내가 죽는 것도 아닌데 될대로 돼라'라며 작품 밖으로 탈출을 시도한다. 근데 또 빨려들어간다. 러닝타임이 이렇게 길었다는 걸 안 건 집 가는 길 네이버 검색 후였다. 두시간 넘는 시간이 정말 정신 없이 갔다는 말이다.
사실 이제와 생각해보면 어이가 없는 게, 일본인이 악마가 아닐 이유는 하나도 없다. 감독은 처음부터 끝까지 숨김 없이 다 보여준다. 근데 그놈의 상상력, 관객이라는 인간이 지닌 상상력이 천우희를 악마로 몰고 간다. 황정민은 매개체일 뿐이다. 그것도 '내가 살을 잘못 날렸다. 그 여자가 진짜 악마다'라는 딱 두마디가 전부다. 머릿속을 휘젓는 건 감독도 배우도 아닌 관객 자신이다.
인간은 간사하다. 우리는 저마다 자신이 특별한 존재라고 여기며 남들과는 다른 비상한 두뇌를 가졌다고 믿는다. '나는 누군지 맞출 수 있어!! 흥, 속이려면 속여봐!!' 진짜 악마가 누군지 계속 추리하는 건, 계속 의심하는 건 그래서다. 인터넷에 떠도는 리뷰 중 그 어느 것 하나 명쾌한 게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애초에 지들이 상상의 나래를 한껏 펼치면서 미련 곰을 파고 앉았는데 답이 나올리가. 결국 제 발로 미로 속을 파고 들어가는 꼴이다. 본디 진리는 단순하고 증명은 장황하다.
눈이 시뻘개지고 좀비마냥 어기적 대는 부분만 좀 다듬었다면 최고의 수작이었을텐데. 저런 거 때문에 어이가 없어서 피식피식 웃게 된다.
그래도 뭐 재밌었으니 넘어가자. 결론: 천우희 예쁘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