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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by TheStrok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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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음이 사나워 펜을 든다. 여기저기서 주워듣고 책을 보며 습득한 지식들이 머릿속을 뱅뱅 돈다. 이 글을 쓰는 이유는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서다. 잘 될지 안 될지는 모르겠다. 기본과 기원부터 차근차근 짚어보려 한다. 그 과정에서 나도 내가 무슨 소리를 하는 지 모르는 상황이 올 수도 있겠다. 논리의 앞뒤가 맞지 않을 수도 있고. 그러나 일단 가보려 한다. 뭐라도 해서 정리해내고 싶으니까. 자, 뜬구름 띄우는 소리, 자다가 봉창 뚫는 소리를 해보자.


 1. 사유에 관하여.
 사유란 무엇인가? 모든 문제와 사안은 인간의 생각에서 파생된다. 인간이기 때문에 문제를 발생시키고 인간이기 때문에 사안을 만든다. 또한 인간이기에 생각을 한다. 인간이 동물 식물 등 다른 생명체와 구별되는 분기점은 바로 생각이다. 한 때 알파고와 이세돌의 대결로 말미암아 '로봇의 인간 대체 가능성'이 화두로 떠올랐다. 그때마다 인간들은 '로봇과 기계는 생각할 수 없기 때문에 인간을 대체할 수 없다'고 떠들었다. 스스로의 존재적 가치에 위협을 느껴서 혹은 정말 자신이 '생각할 수 없는 것들'에게 패배하는 날이 오지 않을까 두려워서 꺼내놓은 눈물겨운 발악일 수도 있다. 생각은 이성이다. 어떤 것을 분별할 수 있는 능력, 스스로 행동의 근원이 바로 이성이다. 즉 인간의 근원은 생각(이성)이다.
 그렇다면 생각의 근원은 무엇인가? 나는 경험이라고 '생각'한다. 사유의 토대이자 행동의 근본은 경험이다. 우리가 문제를 분별하고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건 모두 경험 덕이다. 책과 미디어를 통한 간접경험이든 오감을 통한 직접경험이든 우리는 지금까지 경험을 토대로 사유를 증대시켜왔다. 머리 아픈 철학책은 세상과 인간의 본질을 탐구하고, 영화 드라마 소설 등은 그것을 이해하기 쉽게 풀어낸다. 모든 생각의 토대는 경험이다. 뭐 플라톤이나 데카르트 같은 합리론자들 말처럼 '우리가 알 수 없는 고귀한 세계의 이데아가 우리 속에 있고 그것들이 이 세상에 투영되어 있기 때문에 인식이란 걸 할 수 있다' 따위의 개소리는 접어두자. 너무 뜬금 없고, 무신론과 현상의 세계에 사는 우리에겐 설득력이 떨어진다. 다시 강조하지만 경험 없이는 생각도 없다. 1+1=2, 대한민국 대통령은 박근혜, 지금은 2016년, 부모 이름, 집주소, 소속 등 사소한 것에서부터 크나큰 사안까지 이 모두는 직간접적인 경험 덕에 알 수 있는 사실이다. 초등학생 시절 산수를 배운 경험이 있어서, 허구한날 떠들어대는 뉴스를 본 경험이 있어서, 예수 탄생 후 2016년이 흘렀다는 걸 알아서, 전에 부모로부터 들은 적이 있어서 저 사실들을 알 수 있다.
사고(思考)는 경험으로 습득한 생각들의 조합이다. 지식 없이 창의력을 가질 수 있다는 말은 무에서 유를 창조한다는 말만큼이나 허황된 얘기다. 1+1=2라는 지식에서 2+2=4라는 사실이 도출된다. 현대사를 공부했기에 대통령 당선 이유를 알 수 있다. 그걸 모르는 사람은 대체 지금 박근혜라는 사람이 왜 대한민국의 대통령인지 이해하지 못한다. 그냥 '남들이 대통령이라고 하니까 대통령인갑다'라고 생각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나는 사실 이런 맥락에서 기계가 인간을 대체할 수 있다고 본다. 인터넷과 컴퓨터라는 기계들의 대표는 한 개인보다 훨씬 많은 '데이터라는 경험'을 지녔다. 포털사이트에 '꽃'을 검색하면 우리 머리 속에 든 '꽃'에 관한 지식, 이미지의 수만배 되는 자료가 쏟아진다. 우리는 감히 인터넷보다 많은 지식을 가졌다고 자부할 수 없다. 심지어는 그 어떤 위대한 학자-예컨대 노벨상 수상자-라 해도 인터넷 속의 해당 분야 지식보다 많은 걸 알고 있지 않다.
 정리하자면 인간의 모든 생각은 경험에서 얻어진다. 기계(인터넷 컴퓨터)는 인간보다 많은 데이터라는 경험을 지녔다. 그리고 판단 능력도 갖췄다. 토익스피킹처럼 어떤 이미지를 입력하면 이미지를 텍스트로 설명하는 기술도 발명됐다. 구글이미지검색은 똑같은 이미지를 찾아줄 뿐 아니라 비슷한 분위기의 그림까지 검색해준다. 미국 블룸버그통신은 날씨 기사를 로봇이 쓰게 한다. 눈 비 햇빛 등 기후를 구분하고 그에 맞는 옷차림이나 활동지수를 제시한다. 이에 더해 로봇은 창작까지 한다. 고흐 화풍을 학습한 로봇이 고흐 풍 작품을 그렸고, 또 다른 로봇이 그린 그림은 900만원에 팔렸다. 얼마 전에는 교향곡을 작곡했다는 기사도 떴다. 지난 수십년의 바둑 기보를 학습한 알파고는 인간을 이겼다. 이 모두는 인간이 로봇에게 투입한 경험(데이터) 덕에 가능했다. 로봇이 인간을 대체하기 위해서는 여기에 '사유'라는 일종의 알고리즘이 더해져야 한다. 단순히 많은 데이터와 경험을 지녔다고 해서 사유한다고 할 수는 없다. 나는 조만간 이 역시 가능할 것이라고 본다.
 사유란 무엇인가? 문제를 해석 판단하고 나아가 행동을 옮길 수 있는 능력이다. 사유는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이다. 데카르트가 귀납적 방식으로 피타고라스의 정리를 증명한 것처럼 단순한 사실에서 복잡한 사실로 나아가는 게 사유다. 단순-단순, 단순-복잡, 복잡-복잡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핵심은 '개별적인 두 사안을 어떻게 서로 연결할 것인가?'다. 이 역시 경험으로 가능해진다. '젖지 않기 위해서는 우산을 써야하고, 뽑히지 않으려면 뿌리를 단단히 내려야 한다'라는 사고전개는 '비가 내리면 젖고, 바람이 불면 흔들린다'라는 경험을 통해 도출됐다. 위에 든 사례들도 마찬가지다. 경험론의 대부 로크의 말을 빌자면 우리는 하얀 도화지에 경험이라는 연필을 가지고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려나감으로써 생각이라는 결과물을 얻는다. '가' 다음 'B'가 아니라 '나'를 적는 건 우리가 한국인이기 때문이다. 문장을 완성시키는 일련의 과정은 그 언어를 습득하고 있기에 가능하다. 우리는 '우리'라는 개념을 알기에 '우' 다음 '리'를 나열한다. 내가 러시아어 'Я люблю тебя'를 읽을 수 없고 러시아인이 '나는 너를 사랑한다'를 읽을 수 없는 이유는 경험의 부재 탓이다. 나는 러시아어를 배운 경험이 없고 러시아인은 한국어를 배운 경험이 없다는 말이다. 그 옛날 원시인은 강인한 발톱을 지닌 맹수들 사이에서 살아남기 위해 도구를 개발했다. 짐승의 무력 앞에 속절없이 죽어나가는 동료들을 보고나서다. 루소에 따르면 인간은 감정표현이 아닌 생각전달을 위해 언어를 발명했다. 단순히 '나는 어떤 상황이다'만 표현하기에 세상은 너무 복잡하다. 소리만 질러서는 내 생각을 온전히 전달할 수 없기 때문에 언어를 개발했다. 언어를 알지 못하는 아기들이 감정을 표현하는 방법은 오직 '울음'뿐이다. 하지만 커가면서 감정을 구체적으로 표현하고, 한글을 배우면서 정확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교육과 학교를 통해 표현력이 일정 궤도에 오르면 표현의 방종이 시작된다. 무작정 떼쓰고 말 안듣고 말썽피우는 것이다. 말썽은 언어를 이해하지 못하는 데서 오지 않는다. 단지 스스로를 통제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절제'라는 두번째 경험이 투입된다. '니가 무언가를 안다고 해서 그걸 마음대로 표현하고 표출해서는 안된다. 인간은 혼자 사는 존재가 아니다. 따라서 서로 피해주지 않고 존중하기 위해 약속을 했다. 무분별한 이기심을 제어하고 함께 살기 위해 우리는 도덕을 만들고 법을 만들고 사회를 구성한 거란다.' 사회계약의 근본을 되짚는 교육을 통해 아이는 사회 구성원의 자격을 갖춘다. 결국 모두 경험을 통해서다.
 이것과 저것, 이 생각과 저 생각을 연결해 행동을 도출해냈다는 사유의 과정은 모두 경험으로 이룩됐다. 간단히하자면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것, 인간이 인간으로 존재할 수 있는 이유는 생각이고, 생각은 경험에서 나온다. 따라서 '인간=경험'이라는 등식이 성립된다. 이게 인간의 사유 근거다. 그렇다면 인간의 존재 이유는 뭘까? 인간은 왜 사는가? 왜 사냐?


2. (톨스토이 소설 제목 좀 빌린다) 인간은 무엇으로 사는가?
 앞서 살펴봤듯 인간의 사유근거는 경험이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인간은 세상의 모든 경험을 할 수 없다. 저 전지전능한 신조차 이전에 세상을 만들어본 적이 없었기에 불완전한 존재인 악마들이 탄생했다. 그 어떤 존재도 모든 걸 경험할 수 없다. 그리고 그게 내가 보는 인간의 존재이유다. 우리는 모든 걸 경험할 수 없기에 불완전한 존재이며, 그 불완전성을 충족하기 위해 살아간다. 모든 행위의 끝에는 욕망이 자리잡고 있다. 욕망이란 충족하고자 하는 마음이다. 일하는 이유는 즐겁기 위해 혹은 돈을 벌기 위해서다. 환언하자면 현재의 즐거움과 돈이 불충분하기에 인간은 일을 한다. 목적의 결여가 행위를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영화를 보고 음악을 듣는 이유는 충족되지 못한 나의 즐거움을 채우기 위해서다. 독서와 공부는 충족되지 못한 지식에의 갈망에서 비롯된다. 인간의 행위 하나하나, 모든 행동은 채우기 위해 행해진다. 누군가를 증오하는 마음 역시 그가 내 사상과 목적에 부합하지 않기에 피어오른다. 그가 내 생각과 다르게 행동하고 내 생각대로 행동하지 않는다는 심리적 불안감, 불일치, 불완전성에 기인한다. 밥을 먹는 것도 생각하는 것도 잠자는 것도 공부하는 것도 노는 것도 결국 모두 다 불완전한 우리를 완전하게 하고 싶어서다. 웃긴 건 그렇게 충족하고 싶어하지만 절대 충족될 수 없는 게 욕구라는 것. 완전을 추구하기 위해 끊임 없이 원하지만 결코 완전해질 수 없는 게 존재의 모순이다. 이 세상도 그렇다. 사람들은 완벽한 세상을 추구하지만 세상은 결코 완벽할 수 없다. 모두가 행복하고 평등한 그런 세상은 토마스 모어의 소설 속에만 존재한다. 그 평등한 세상을 바랐던 소련과 공산주의 국가들은 모두 몰락했다. 반면 그들이 그렇게 까내리던 자본주의는 승리했고 살아남았다. 자본주의가 내부 모순탓에 붕괴할거라던 마르크스의 주장은 그냥 빨갱이의 바람일 뿐이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계속 완벽과 평등을 고집한다. 그놈의 평등제일주의다. '너만 잘 살면 안되지'는 '나만 못 살면 안돼'로 교묘히 연결된다. 결국 인간은 모두 평등하고 동등해야 한다면서 말이다. 사실 누가 듣기에도 옳은 얘기 같고 아름다운 말이니 사람들은 덜컥 합의하고 본다. 그들에게 아담스미스 슘페터 하이에크 칼포퍼를 설명하느라 지면을 낭비하고 싶진 않다. 모든 것은 반복되기에 미래를 예측할 수 있다고 주장한 역사주의는 빈사한 지 오래다.
 자, 이쯤에서 대전제를 깔고 가려 한다. 누구나 아는 얘기지만 동의하기 싫어하는 얘기다. '어차피 세상은 불평등하다'와 '완벽한 세상은 존재하지 않는다'가 그것들이다. 인간은 그저 스스로의 불완전성을 충족하며 살 뿐이다. 세상은 어차피 불공평하기 때문에 너와 나, 우리 모두는 같은 조건의 삶을 영위할 수 없다. 누군가 나서서 평등하게 만들어주고 잘 살게 해줬으면 좋겠다는 건 그냥 도둑놈 심보다. 양아치짓 그만하자. 물리학은 질량보존의 법칙과 운동량 보존의 법칙으로 에너지와 질량의 총량은 언제나 같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이 물체가 에너지를 빼앗겼다는 말은 저 물체가 에너지를 얻었다는 말이다. 자본도 마찬가지다. 내가 돈이 많아졌다는 건 누군가가 가난해졌다는 뜻이다. 어떤 수식어를 갖다붙이든 결국 노동은 남의 주머니에서 돈 꺼내는 행위다. '평등한 세상'은 본질적으로 노동 없이 이득을 얻겠다는 말이며 노력 없이 남에게 피해주겠다는 말이다. 스스로 이룩한 것도 없이 바라기만 하는 쓰레기 짓은 삼가자. 그런 사람들은 입버릇처럼 '상식이 통하는 세상' '착한 나라' 따위의 자기모순적인 언행을 일삼는다. 웃기지 않은가?
2.1 인간의 본성에 관하여.
 인간은 본질적으로 선인가 악인가? 인간은 이타적 존재인가 이기적 존재인가? 나는 두 질문 모두 후자의 손을 들어주고 싶다. 전술한 얘기들을 확장시켜보자. 태초에 인간은 악하게 태어난다. 갓난아기는 속절 없이 울음을 터뜨려 사람들을 짜증나게 한다. 아이들은 남 생각은 않고 제멋대로 행동해 타인을 곤란하게 한다. 말썽만 피우고 무조건 자기 내키는대로 말한다. 그런데 사람들은 아기들의 순진무구한 얼굴만 가지고 천사 같다고 말한다. 이것이야 말로 외모지상주의의 정점이다. 그 악인들을 교화시키는 건 언제나 선한 척하는 우리 몫이다. '너는 어른이니까 애들을 이해해야 해' '너는 저 아이보다 강하니까 져줘야 해' 따위를 무의식적으로 떠든다. 그런 아이들은 사회화라는 과정을 통해 스스로 통제하면서 남과 어울리는 법을 배운다. 홉스에 따르면 사회는 이기심 절제에서 탄생했다. 사람들 모두가 마음대로 행동하고 오로지 태어난 대로 살아가면 사회는 혼란에 빠진다. 강한자는 약한자를 수탈하고 남은 남에게 해를 입힌다. 그래도 하소연할 데가 없다. 과거 원시사회가 그랬다. 이를 방지하고 다 같이 살기 위해 우리는 도덕과 법을 만들었다. 그리고 역설적이게도 자기만 생각하는 이기심 때문에 세상은 발전해왔다. 아담스미스는 우리 모두가 각자의 사익을 위해 뛰지만 그 결과로 공익이 증진된다고 말했다. 국부론에는 이런 비유가 나온다. 우리가 빵을 사먹을 수 있는 이유는 빵집 주인의 이타심 때문이 아니다. '아 저 사람 배고프면 안되는데... 빵을 팔아서 허기를 없애줘야겠다'가 아니란 말이다. 빵집주인은 돈이 필요해서 내게 돈 받고 빵을 내어주고 나는 배가 고프니 빵집주인에게 돈을 지불할 뿐이다. 빵집 주인은 돈이 필요했고 나는 허기를 면하고 싶었으며, 그 결과 주인은 돈을 벌고 나는 배를 채웠다. 각자는 이기적으로 행동했지만 결과적으로 만족했다. 절제된 이기심이 세상을 발전시킨다는 말이다. 사실 이는 경제학의 기본인 '거래'와 '교환'법칙이고 시장경제체제의 기원이다.
 사람들은 종종 악과 이기심을 나쁜 것, 취해서는 안되는 태도라고 생각한다. 스스로 이기적인 악인이면서 말이다. 항상 선과 이타심을 최고의 가치로 여긴다. 그러나 니체도 얘기했듯 이기심과 이타심은 본질적으로 차이가 없다. 내가 누군가를 돕는 건 뿌듯함이나 만족감을 얻기 위한 이기적 행위다. 자기를 사랑하는 관점에서 출발하지 않는 행위는 없다. 이타적 행위도 큰 틀에서 보면 이기적 행위다. 따라서 선도 악도, 이타심도 이기심도 나쁜 게 아니다. 결국 나쁜 건 오직 무지 뿐이다. 멍청한 건 죄고 모르는 건 악이다. 종종 우리는 '모르니까 그럴 수도 있지!'라는 말로 실수한 사람을 옹호한다. 적어도 성인에게는 개소리다. 모르니까 실수를 저지르고 그로 인해 남이 피해를 받았다. 모르니까 그러면 안된다. 모르면 안 후에 행동해야 한다. 미리 알려는 노력이 없었기 때문에 잘못이다. 모든 인간은 실수를 연발하며 살아간다. 결국 우리 모두는 불완전한 존재이기에 악인이다. 궁극적으로 사회인과 갓난아기는 '악'이라는 측면에서 동일하다. 아이들이 제멋대로 행동한다고 해서 욕할 게 아니다. 아직 사회화를 겪어보지 않았으니까. 어른들이 아이들의 투정을 묵묵히 참는 이유다. 따라서 인간은 끊임 없이 공부하며 '앎'으로 나아가야 한다. 앎을 게을리하여 남에게 더 큰 해를 끼치면 안된다. 그리고 '무지'보다 더 나쁜 게 있다. 바로 알면서도 그른 행동을 하는 작자들이다. 도덕을 모르고 멋대로 행동하는 아이들은 악이지만 도덕을 알면서도 지키지 않는 놈들은 최악이다. 범죄자들 얘기다. 걔들은 이미 사회화를 거치고 도덕을 체화했는데도 남에게 피해를 끼친다. 그야말로 개새끼들이지. 이런 부류는 상종을 하지 말아야 한다.
 정리하자면 인간은 선하기보다는 악한 존재다. 이타적이기보다는 이기적인 존재다. 역설적이게도 그 악과 이기심 때문에 세상이 이만큼 발전했다. 무지는 죄악이고 무지상태가 아닌데도 악을 행하는 자는 최악이다. 결론 우리는 계속 공부하고 경험하며 스스로를 단련해야 한다.
2.2 인간은 불완전하다. 그래서 다양성이 필요하다. 내 말이 전부 옳은 게 아니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의견을 들어야 한다. 나는 불완전하니까 네가 필요하다. 당연한 얘긴데 모르는 사람이 너무 많다. 아니 모르면서 아는 척하는 것일게다.
 바야흐로 다양성이 결여된 불평등한 세상이다. 이런 세상에서 살아남는 방법은 오직 개인의 능력을 극대화시키는 길 뿐이다. 남탓하지 말고 스스로 극복하자는 말이다. 하지만 종종 이런 주장은 '노력충' '노오오오력!!' 등으로 폄하된다. 애초에 이 세상은 도전하는 자들의 것이었다. 하버드를 이틀만에 때려친 청년이 사업을 해 돈을 벌지 않았다면 테슬라는 없었을 것이며 현실에 좌절한 청년들이 그 자리에 머물렀다면 정주영과 이병철은 없었다. '안된다고? 이봐, 해봤어?' 그들에게 가서 '헬조선'이나 뭐니 푸념해보라고 권하고 싶다. 웃기는 소리들 말라. 좀 뜬금 없긴 하지만 난 이런 맥락에서 아이돌 가수들을 존경한다. 적어도 그 나이 또래 중 걔들만큼 인생을 열심히 산 애들은 없으니까. 레드벨벳 슬기가 한 말이 있다. 아이돌 연습생이 가장 절망적일 때는 같이 연습하던 친구가 데뷔할 때가 아니라 그만두고 나갈 때라고. 노력하는 자는 발전하고 투정하는 자는 도태된다. 근데 이 만고불변의 진리는 '헬조선'에서 철저히 외면당한다. 헬은 누가 만들어 가고 있는지? 우리 스스로가 아닐까. 대통령이 전지전능한 신이길 바라는가? 박근혜가 나의 취업도 해결해주고 사회불평등도 해소해줬으면 좋겠는가? 그럼 넌 국가에 뭘 해줄 수 있는데? 니가 하는 거라곤 고작 불평 불만 투정 뿐인걸. 존 스튜어트 밀 말마따나 진리를 찾는 데 딴지 거는 사람은 자기가 도움이 된다고 착각한다. '내가 태클 걸지 않았으면 그 부분은 알기 어려웠을 걸?'이라는 식이다. 근데 박해에 대해 이런 견해를 가지면 훌륭한 업적을 이룬 사람들은 보상은 커녕 억울하게 핍박 받아도 '진짜 진리라면 박해 쯤은 이겨낼 거다'라는 논리의 폭압을 당한다. 헛소리 좀 그만하자. 남탓 하기 전에 책 한 자라도 더 봐라.


3. 신에 관하여.
나는 지금까지 이런 저런 독서와 사색 끝에 신 탄생의 세가지 이유를 발견했다. 첫째, 인간은 스스로의 불완전성을 혐오했고 완전하지 못한 자신을 두려워했다. 그리하여 저 이상적이고 완벽한 존재(신)를 만들어 자신의 모든 바람을 빌고 또 빌었다. 둘째, 인간은 언젠가 소멸할 자신의 운명이 겁났다. 지금처럼 생각하고 놀고 먹고 존재하는 것 자체가 아예 불가능해진다는 두려움(나도 어렸을 때부터 이게 너무 무서웠다)이다. 말하자면 無로의 회귀다. 인간은 그 절망감을 극복하기 위해 윤회 전생 천국 등의 개념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것의 창조주인 '신'을 탄생시켜 자신을 죽음으로부터 구제해주길 바랐다. 셋째, 인간은 자유롭고 싶었다. 얼마전 블로그에 포스팅 한 '부활'이라는 영화 감상문에도 있는 내용이다. 시민들은 자신을 억압하는 권력자로부터 해방을 바라며 끊임 없는 자비와 사랑을 원했다. 신은 그 바람을 충족시켜줄 절대자였다.
 자, 그럼 신은 어찌하여 만들어졌는가? 아니, 신은 무엇인가? 내 나름대로의 생각을 적어보겠다. 신은 정녕 전지전능을 원했던 인간이 만든 건가? 아 복잡하다. 데카르트가 알려준 방법을 써보자. 가장 작은 것부터 시작하는 거다. 신의 개념부터 명확히 하자. '신'은 뭔가? 모든 걸 할 수 있는 존재, 우리와는 다른 완벽한 존재. 보이진 않지만 분명 실재하는 존재. 어떻게 딱히 설명할 방법이 없다. 이럴 땐 가장 단순하고 명료한 것, 사전적 정의를 들여오면 된다. 네이버 사전에 따르면 신은 '초인간적 초자연적 위력을 가지고 인간에게 화복을 내린다고 믿어지는 존재' '세계의 근원, 원인이라고 생각되는 실체'로 정의된다. 골때린다. 왠지 이 파트의 결론이 자꾸 '신 그딴 거 없다!'로 내려질 것 같아 불안하다. 뭐 그래도 가보자.
 우리 모두는 어쩌면 누군가에게 신일 수도 있다. 우리는 불완전하기에 서로를 필요로 하고 그렇기 때문에 서로에게 화복을 내린다. 내 세계의 근원은 나, 존재의 근원은 아버지와 어머니다. 어머니 아버지의 근원은 할아버지 할머니다. 내가 이 글을 쓰고 있는 책상을 보자. 이 책상이 내게 오기까지 수많은 변수가 작용한다. 우선 원자재인 나무가 있다. 나무가 자라기 위해서는 토양 비 공기 등이 필요하다. 토양에는 수십만년전 지구 생물들의 사체가 양분이 되어 녹아있다. 여기서 생물은 공룡 삼엽충 원시인 석유 등 과거 그 어떤것도 될 수 있다. 비와 공기 역시 영겁의 세월동안 대기권 아래를 떠돌던 것들이다. 그렇게 무수한 사물이 깃든 나무를 자르는 노동자와 도끼에도 상상할 수 없을만큼 많은 경우의 수가 작용한다. 노동자는 본인의 의지든 주변환경이든 무언가에 이끌려 나무 자르는 일을 한다. 전날 부부싸움을 하지 않아 평상시처럼 출근했고 기분 좋게 운전해 사고 없이 사업장에 도착했으며, 다치지 않고 작업을 수행해왔기 때문에 내 책상의 원자재가 되는 나무를 벌목할 수 있었다. 그렇게 잘린 나무는 트럭과 운전수 손을 거쳐 공장으로 옮겨졌고 기계로 재단됐다. 만약 트럭을 개발한 사람이 없었다면, 인류문명의 걸작 중 하나인 바퀴가 발명되지 않았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노동자는 공장주인과 계약하고 그렇게 만들어진 책상 재료는 선박을 통해 우리나라로 들어와 가구 업체에 인계되어 책상으로 변모한다. 여기서도 선박, 바다, 공장, 노동자, 고용주, 자동차, 가구매장, 점원, 백화점 등 셀 수 없이 많은 요소요소가 작용한다. 이 변수 중 단 하나만 틀어졌어도 이 책상은 내 앞에 올 수 없다. 나는 문득 책상이 필요해 백화점에 갔다. 만약 내가 책상이 필요하지 않았다면, 글쓰기를 좋아하지 않아 책상이 필요하지 않았다면, 서울 중구 신당동 366-125 40x호에 책상이 있었다면 나는 책상을 사러 백화점에 가지 않았을 것이다. 왜 또 하필 날짜는 그 때였으며... 결국 이 책상 하나에도 만물과 온 우주가 깃들어있다는 말이다. 역사에 '만약'이 무의미한 이유이기도 하다. 모든 건 결과론적인 얘기다. 하필 내가 xxxx년 x월 x일 x시에 필요했으니까. 그냥 그랬을 뿐이니까 책상을 산 거다. 책상 뿐 아니라 음식 책 연필 술 등 세상 모든 것에는 세상 모든 게 담겨있다. 그것이 담겨 있는 밥을 먹으면서 만물은 내 피가 되고 살이 된다. 만약 임춘순과 박재현이 만나지 않았다면 박준호는 태어나지 않았다. 하필 저 둘이 198x년에 선을 보지 않았더라면, 엄마가 부산에서 일하지 않았다면, 아빠가 결혼을 일찍했다면. 아니 애초에 할머니 할아버지들께서 엄마와 아빠를 낳지 않으셨다면, 이렇게 거슬러올라가고 올라가면 결국 모든 것에 '만약'의 의미를 부여하는 건 무의미하다. 만물은 상호작용한다. 만약은 필요 없다. 그저 내가 있기에 네가 있고 네가 있기에 내가 있다. 우리 모두는 하나의 우주다. 우주는 누군가 만든 게 아니라 서로 만들어가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나는 우리가, 만물이 곧 신이라고 생각한다. 앞서 '신'의 사전적 정의는 '초자연적 위력으로 화복을 내리는 존재' '세계의 근원'이었다. 이 세상은 서로가 서로에게 화복을 내릴 뿐이다. 누군가가 누군가에게 일방적으로 베푸는 게 아니다. 세계의 근원은 정해져 있지 않다. 우리 모두가 세계의 결말이자 근원이다. 우리 모두는 우주다. 우리 각자가 바로 신이다. (어이고 대체 이게 말이여 막걸리여... )


4. 철학에 관하여. 나가며.
 (이 글도 그렇고) 사실 철학은 우리가 모르는 걸 가르쳐 주진 않는다. 전에 알지 못했던 새로운 무언가를 알려주거나 정보를 제공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가만 생각해보면 그냥 우리가 알던 것들을 이렇게 저렇게 엮어서 주장을 도출할 뿐이다. 철학은 여기저기 흩어져 존재하는 정보들을 하나의 큰 맥락에 위치시킨 뒤 논리적으로 풀어낸다. 행복 자유 진리 등 우리 머릿속에 추상적으로만 빙빙 도는 개념을 조금 명확히 해준다. 뭔지는 알겠는데 구체적으로 설명하라면 영 답 안나오는 것들 말이다. 나는 그래서 철학을 좋아한다. 사고와 논리구조를 탄탄하게 해주니까.
 내 취미 중 하나는 네이버 지식인 답변이다. 거기엔 별의 별 고민이 다 올라온다. '무슨 과 가는 게 좋을까요?' 'PD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죠?' '이 남자 심리는 뭘까요?' '저한테 무슨 문제가 있는 걸까요?' 등등... 예전엔 쉽게 답변했는데 요즘은 잘 안된다. 내가 뭐라고 저 사람 인생에 관여하나 싶다. 섣부른 판단으로 남의 인생을 바꿔버릴까 두렵기도 하다. 공부도 마찬가지다. 글쓰는 것도. 예전엔 쉬웠는데 갈수록 어려워진다. 정리가 안돼서다. 이거 쓰다보면 저거 떠올라서 덧붙이고 덧붙이고 덧붙이다보니 글이 개판난다. 이 글은 정리가 필요해서 썼다. 내 머리를 가득 채운 녀석들을 짧게나마 풀어내니 좀 낫군. 27살 나의 생각을 기록하기 위한 목적도 있다. 괜찮다. 앞으로 더 열심히 공부해서 머리가 터지는 그날까지 달려가야겠다. 끝!


2016. 4. 21.
박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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