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iteDwar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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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by TheStrok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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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도에 도착해서 막 돌아댕겼다. 어떤 한 20대 중반으로 보이는 여자가 달라붙더니 설문조사 하나만 해달란다. 귀찮아서 그냥 무시하고 갔다. 근데 버스 타려고 헤매고 있는데 계속 '어디 가세요?' 이거 해주시면 휴대폰 공짜로 바꿔드려요~' '잠깐이면 돼요~ㅎㅎ'이런다. 그래, 니 떼내는 것보다 어쩌면 글자 몇개 끄적이는 게 더 빠를 지도 모르겄다. 포승줄에 묶인 김길태마냥 꼼짝도 못하고 휴대폰 대리점 같은 데로 끌려들어갔다. 혹시나가 역시나다. 고객님 저희가 약정 갚아줄테니 뭐시기 뭐시기~ 계속 씨부려 싼다. 저희 핸드폰 몇달만 쓰시면 지금 약정 잡혀있는 거 갚아드릴게요~ 쏼라쏼라. 나불나불. 시끌시끌. 아아 으아아.. 

'저 다음달에 군대가는데'

'아......'

조용히 놔준다. 군대가는 게 이럴 땐 좋네. ㅂㅂ2 영도 가는 길에 닭꼬치 하나 물고 버스를 탄다. 그러고 바깥 세상 구경을 하고.. 어제 엄마가 전화로 해준 얘기가 떠올랐다. 영도대교. 근데 대교라기엔 너무 작았다. 잔뜩 기대하고 갔는데 실망. 그 시절의 엄마가 보던 그걸 나도 보고 싶었는데 좀 아쉬웠다. 엄마 말로는 그 다리가 배가 지나갈 때마다 갈라져서 위아래로 왔다갔다 해서 유명한 거라고 했다. 근데 세월이 많이 흘러서 점점 편한 걸 찾다보니 다리가 개조되고 점점 커지다보니 지금은 아닌가보다. 요즘들어 부쩍 부모님의 젊은 시절이 궁금하다. 엄마 아빠는 태어날 때부터 부모가 아니다. 분명 엄마 아빠도 어렸을 적, 자식 생각은 존재하지도 않던 시절이 있었을 거란 말이다. 타임머신이 있었으면 문명 발전이 무지하게 진보했을 미래나 나폴레옹이나 징기츠칸 같은 위대한 개척자들이 존재하던 시절 또는 내가 좋아하는 록밴드들의 전성기 시절 등으로 돌아갈 수도 있겠지만 난 엄마아빠의 젊은 시절, 나와 동생의 존재 자체는 생각도 안 했을 시절로 돌아가서 부모님을 한 번 만나보고 싶다. 얘기해보고 싶고 같이 뛰놀고 싶고 같이 공부해보고 싶다. 이런 일이 가능한 날이 과연 올까? 물론 매우 위험한 발상일지도 모른다.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처럼 일분일초만 잠깐 바뀌어도 사람의 운명이 뒤바뀔 수도 있는 거다. 잘못하면 내가 태어나지도 않을 수도 있는 일이고. 그냥 먼발치에서 지켜보는 것만 가능한가. 쩝.

 길도 모르고 어디서 내려야 하는지도 몰라서 그냥 종점에서 내렸다. 버스기사가 힐끔힐끔 쳐다보다가 종점에 가서는 이상한 눈으로 쳐다본다. 뭐 어쩌라고. 근데 그냥 막 내린 것 치곤 풍경이 괜찮다. 돌맹이들이 파도에 부딪혀서 오랜 세월 깎여서 둥글동글하다. 바다 가까이 있을 수록 더 동그랗고 조그맣다. 그 사이에 청록색으로 반짝이는 납작한 돌이 있다. 반투명에다 모양도 너무 멋지다. 깨진 유리병 조각이 바다에 오랫동안 떠돌면서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다 보니 그 뾰족하고 날카로운 성질을 점점 잃다가 마침내는 뭉툭해진다. 투명하게 사이다를 보여주던 색깔은 흐릿해져서 물체 투과가 안된다. 나도 나중에 늙으면 저렇게 될까? 물론 겉보기 모양은 전보다 훨씬 낫지만 특이한 그만의 성질을 잃었다. 그리고 저 수많은 돌맹이들과 구분하기 쉽지 않을 만큼 비슷한 모양새를 띤다. 생각하기 나름이지만 난 별로 좋은거라 생각하진 않는다. 근데 살면 살수록 내가 바닷 속 유리조각 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는 거라고 좋게 표현할 수 있겠지. 내가 참 단순하다고 느낄때다. 암튼 여기서 거의 한시간 넘게 놀았다. 별 것도 없고 그냥 파도가 왔다리 갔다리 그냥 30분 정도 쳐다보기만 했는데 뭐가 그렇게 재밌는지 꼼짝도 안했다. 나머지 30분은 예쁜 돌들을 주웠다. 내가 좋아하는 예쁜 사람들에게 주려고. 근데 결국 한명도 못 줬다. 서울 와서는 짐 정리도 않고 몇날 며칠을 죽은 듯 자고, 깨어나서는 어따가 대충 쑤셔박아놔서 그런듯...





 이제 슬슬 부산을 떠나야겠다 싶어서 역시나 아무 생각 없이 아무 버스나 타고 아무렇게나 아무데서나 내릴 작정. 영도를 빠져나가면서 섬 전체를 한번 훑어나갈 생각인가보다. 근데 승객들이 학생들이 되게 많았다. 이 조그만 섬에 웬 중고등학교가 이리 많은 거지? 하나 둘씩 타는, 창밖으로는 웃고 떠들며 하하하 웃어제끼는 교복친구들을 보니 너무 풋풋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태어나서 그런 느낌은 처음이었다. 너무 보기 좋고 보는 나까지 기분이 좋아졌다. 나 학교 다닐 때 생각도 많이 나고 지금은 군인 아저씨가 돼버린 친구도 생각나고 두세달에 한번밖에 못 보는 친구들도 생각났다. 난 분명 고등학교 때에 비해 훌쩍 큰 것도 아니고 어쩌면 그 때 그대로일지도 모른다. 내 머릿속에 든 건 분명 학창시절 그대론데 환경은 너무 많이 크게 바뀌었다. 돈 걱정 공부 걱정 등은 너무 많이 늘었고 곧 있으면 군대도 가야하고 생각할 것도 너무 많아졌다. 근데 중요한 건 나이 30, 40이 돼도 그렇다는 거다. 정신은 20살 때 그대론데 환경이나 현실은 나를 점점 죄여온다. 늙는 게 이래서 슬픈거라고들 하나보다. 이러다 보면 나에게도 타임머신을 타고 싶은 아이가 생길 거고 나는 입에 욕을 달고 사는 버스기사 같은 사람이 될 지도 모르고 빛바랜 동글동글 유리조각이 될지도 모른다.

 이만하면 시내로 좀 들어온 건가 싶을때 쯤 부산역 앞에서 내렸다. 준수형이 환장하는 돼지국밥도 먹고 역 앞 분수대에서 또라이마냥 뛰어놀고 좋다고 실실 쪼갠다. 근데 부산을 떠나기 너무 아쉬워서 하루 더 있기로 했다. 밤바다를 보고 싶어서 해운대로 고고싱싱.





 파도가 푸억푸억 치는 걸 구경하다보니 컵라면에 소주 한잔이 그렇게 생각났다. 심심할 때마다 한강 보면서 하던 짓거리다. 역시 개버릇 남 못준다더니.. 난 물만 보면 술이 생각나나보다. 근데 창원에서와 어제를 보면 소주 쳐먹었다간 훅 가서 드넓은 백사장에 대자로 뻗을 것 같은 개같은 기분이 들었다. 챙겨줄 사람 아무도 없는데 그랬다가는 '진짜' 거렁뱅이가 될지도 모른다. 아쉬운대로 맥주나 하나 깠다. 사람 구경하고 하늘, 바다 구경을 안주삼아 먹었다. 역시 맥주는 맛없어. 이제 이 한 몸 뉘일 곳을 찾아 한 시간 정도 헤매다가 찜질방 입갤이다. 깨끗이 씻고 이 세상 최고의 천재와 전화한통 하고 배고파서 컵라면도 먹고 메뚜기가 떠드는 TV프로도 보고.. 테라스 비스무리한 데서 부산 밤빛 보면서 담배도 피고. 그러다 잠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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