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보와 자유가 충돌하면 균형을 찾는 게 바른길
野는 균형 아닌 자유에 올인… 지금 태도 그대로 '국정원 사이버 능력 제거' 公約 걸고 국민 판단 받으라
국가정보원이 외국 업체에서 해킹 프로그램을 구입했다는 뉴스를 보고 많은 사람이 그걸로 정치 사찰한 것 아니냐고 의심한 것은 있을 수 있는 반응이다. 과거 국정원은 실제 국내 정치 공작을 하고 불법 도청도 했다. 그런데 지금 이 시간에도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는 남북 간, 국제 간 사이버 전쟁에서 전멸이라도 모면하려면 이런 해킹 프로그램을 사지 않을 수도 없는 게 현실이다. 양면이 있는 문제가 벌어졌을 때 여당이 사이버 전쟁의 안보 현실을 강조하고, 야당이 민간 사찰 의혹을 더 제기하는 것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절반 가까운 국회 의석을 가진 책임 있는 야당이라면 민간 사찰 의혹을 7 정도 얘기하면 국가가 처한 사이버전 현실도 3 정도는 얘기하는 것이 옳다. 그런데 새정치연합은 9대1도 아니고 거의 100대 0으로 민간 사찰 의혹만 주장한다. 이 당의 책임 있는 그 누구로부터도 "민간 사찰 여부는 철저히 규명해야 한다. 그러나 대북·대외 사이버 전쟁이 심각하게 벌어지고 있는 만큼 국정원의 사이버전 역량은 지켜야 한다"는 말을 듣지 못했다. 이 사건과 관련해 수도 없이 나온 야당의 공식 성명과 논평에도 나라 안보 걱정은 단 한 줄 없었다. 엊그제 문재인 대표가 처음으로 "대공(對共) 수사를 위해 휴대폰을 감청할 수 있으나 적법 절차를 거쳐야 한다"고 했지만 형식적으로 한마디 한 것에 불과했다.
국정원은 나쁜 짓, 바보 짓, 이상한 짓을 많이 했다. 한때 저기엔 모자란 이들이 모여 있는 것 아니냐는 생각도 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국정원한테 다 손들고 대북·대외 작전을 전부 포기하라고 할 수는 없는 일이다. 아무리 우리끼리 싸우는 데 몰두해 정신 줄을 놓고 있다고 해도 외적(外敵)들이 우리에게 무얼 하고 있는지는 흔적이라도 살펴야 한다.
정보만 있었으면 6·25 전쟁도 막았고 천안함·연평해전의 비극도 없었을 것이다. 강대국은 정보의 가치를 알고 거기에 사활을 거는데 약소국은 그 반대로 한다. 강대국 국민은 정보 전쟁의 속성을 알고 그로 인해 파생되는 피해를 감수하는데 약소국 국민은 그 반대로 한다. '정보가 모든 것'이란 걸 안 나라가 지배국이 됐고, 모른 나라가 식민지가 됐다. 미국·영국·독일·프랑스·일본 등이 앞의 사례고 한국이 뒤의 경우다.
미국은 전 세계를 감청한다. 미국 시민은 사실상 전부 감청 대상이다. 다른 나라 총리도 도청한다. 감청을 제한하는 미국자유법이 만들어져 이제 줄인다고 하지만 액면 그대로 믿으면 바보다. 미국은 자기네 국경을 통과하는 사람이면 미국인이든 외국인이든 허락 없이 개인 컴퓨터를 들여다보고 내용을 빼간다. 사후에도 알려주지 않는다. 해킹할 수 없는 휴대폰은 판매 허가 자체가 나지 않는다. 한국에선 해킹 프로그램을 구입했다는 이유만으로 무조건 민간 사찰했다고 난리다. 휴대폰 메신저 업체는 사람들이 싫어한다고 법원이 발부한 수사 영장을 거부하겠다고 맞선다.
미국보다 더 위중한 안보 상황에 처해 있는 우리가 이러는 이유, 자기 나라 지키는 일을 마치 남의 일처럼 여기고 심지어 백안시할 수 있는 그 바탕이 무엇인지 늘 궁금했다. 과거 정권이 안보를 정치에 이용했다고 하지만 지금 우리가 마주한 위협은 거짓이 아닌 진짜다. 그런데도 이토록 많은 사람과 정권을 잡겠다는 정당이 안보 위협은 제쳐놓고 개인의 자유만 내세우게 된 데는 근본적인 배경이 있을 것이다.
'미군이 있는 한 전쟁은 안 날 것' '설사 나더라도 미군이 지켜줄 것'이란 안보 의존증이 한국인들 DNA에 박혀버린 탓이라고 생각한다. 종북(從北)을 빼고는 반미(反美)한다는 사람들도 다르지 않다. 한 이스라엘군 장성은 "외국군이 주둔하는 나라의 국민은 정신이 썩는다"고 했다. 남이 지켜주는 나라에서 60여년을 산 국민의 정신은 어떤가. 어떤 정신이길래 집권했던 정당이 정치 싸움에 유리하면 나라 지키는 일까지 이렇게 도외시할 수 있나. 어떤 정신이길래 인터넷 업체가 나라의 안전보다 돈벌이를 우선하나. 어떤 정신이길래 간첩과 범죄자들이 휴대폰으로 무슨 짓을 하든 내 휴대폰은 건드리지 말라고 이 아우성인가. 60여년 미군 주둔으로 평화는 지켰으나 우리는 외적과 싸우는 데는 등신이 되고, 우리끼리 싸우는 데는 귀신이 되었다.
안보와 자유는 종종 충돌한다. 사이버 세계에선 특히 그렇다. 제대로 된 나라는 균형점을 찾는다. 우리 야당은 균형이 아니라 자유 쪽에 올인했다. 그렇다면 내년 4월 총선과 다음 대선에서 새정치연합은 '우리가 집권하면 국정원의 사이버전 능력을 없애 시민의 자유에 대한 위협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겠다'는 공약을 내걸어야 한다. 이 공약은 지금 새정치연합의 태도 그대로다. 국정원 불법 도청이 적발됐을 때의 집권당이 지금 야당인 만큼 '우리는 안 한다'는 말은 안 통한다. 해킹 프로그램이 대북(對北)용이라는 국정원 설명을 믿지 않는 국민이 두 배나 더 많다고 하니 정치적으로도 해 볼 만할 것이다. 국민의 판단을 보고 싶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절반 가까운 국회 의석을 가진 책임 있는 야당이라면 민간 사찰 의혹을 7 정도 얘기하면 국가가 처한 사이버전 현실도 3 정도는 얘기하는 것이 옳다. 그런데 새정치연합은 9대1도 아니고 거의 100대 0으로 민간 사찰 의혹만 주장한다. 이 당의 책임 있는 그 누구로부터도 "민간 사찰 여부는 철저히 규명해야 한다. 그러나 대북·대외 사이버 전쟁이 심각하게 벌어지고 있는 만큼 국정원의 사이버전 역량은 지켜야 한다"는 말을 듣지 못했다. 이 사건과 관련해 수도 없이 나온 야당의 공식 성명과 논평에도 나라 안보 걱정은 단 한 줄 없었다. 엊그제 문재인 대표가 처음으로 "대공(對共) 수사를 위해 휴대폰을 감청할 수 있으나 적법 절차를 거쳐야 한다"고 했지만 형식적으로 한마디 한 것에 불과했다.
국정원은 나쁜 짓, 바보 짓, 이상한 짓을 많이 했다. 한때 저기엔 모자란 이들이 모여 있는 것 아니냐는 생각도 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국정원한테 다 손들고 대북·대외 작전을 전부 포기하라고 할 수는 없는 일이다. 아무리 우리끼리 싸우는 데 몰두해 정신 줄을 놓고 있다고 해도 외적(外敵)들이 우리에게 무얼 하고 있는지는 흔적이라도 살펴야 한다.
정보만 있었으면 6·25 전쟁도 막았고 천안함·연평해전의 비극도 없었을 것이다. 강대국은 정보의 가치를 알고 거기에 사활을 거는데 약소국은 그 반대로 한다. 강대국 국민은 정보 전쟁의 속성을 알고 그로 인해 파생되는 피해를 감수하는데 약소국 국민은 그 반대로 한다. '정보가 모든 것'이란 걸 안 나라가 지배국이 됐고, 모른 나라가 식민지가 됐다. 미국·영국·독일·프랑스·일본 등이 앞의 사례고 한국이 뒤의 경우다.
미국은 전 세계를 감청한다. 미국 시민은 사실상 전부 감청 대상이다. 다른 나라 총리도 도청한다. 감청을 제한하는 미국자유법이 만들어져 이제 줄인다고 하지만 액면 그대로 믿으면 바보다. 미국은 자기네 국경을 통과하는 사람이면 미국인이든 외국인이든 허락 없이 개인 컴퓨터를 들여다보고 내용을 빼간다. 사후에도 알려주지 않는다. 해킹할 수 없는 휴대폰은 판매 허가 자체가 나지 않는다. 한국에선 해킹 프로그램을 구입했다는 이유만으로 무조건 민간 사찰했다고 난리다. 휴대폰 메신저 업체는 사람들이 싫어한다고 법원이 발부한 수사 영장을 거부하겠다고 맞선다.
미국보다 더 위중한 안보 상황에 처해 있는 우리가 이러는 이유, 자기 나라 지키는 일을 마치 남의 일처럼 여기고 심지어 백안시할 수 있는 그 바탕이 무엇인지 늘 궁금했다. 과거 정권이 안보를 정치에 이용했다고 하지만 지금 우리가 마주한 위협은 거짓이 아닌 진짜다. 그런데도 이토록 많은 사람과 정권을 잡겠다는 정당이 안보 위협은 제쳐놓고 개인의 자유만 내세우게 된 데는 근본적인 배경이 있을 것이다.
'미군이 있는 한 전쟁은 안 날 것' '설사 나더라도 미군이 지켜줄 것'이란 안보 의존증이 한국인들 DNA에 박혀버린 탓이라고 생각한다. 종북(從北)을 빼고는 반미(反美)한다는 사람들도 다르지 않다. 한 이스라엘군 장성은 "외국군이 주둔하는 나라의 국민은 정신이 썩는다"고 했다. 남이 지켜주는 나라에서 60여년을 산 국민의 정신은 어떤가. 어떤 정신이길래 집권했던 정당이 정치 싸움에 유리하면 나라 지키는 일까지 이렇게 도외시할 수 있나. 어떤 정신이길래 인터넷 업체가 나라의 안전보다 돈벌이를 우선하나. 어떤 정신이길래 간첩과 범죄자들이 휴대폰으로 무슨 짓을 하든 내 휴대폰은 건드리지 말라고 이 아우성인가. 60여년 미군 주둔으로 평화는 지켰으나 우리는 외적과 싸우는 데는 등신이 되고, 우리끼리 싸우는 데는 귀신이 되었다.
안보와 자유는 종종 충돌한다. 사이버 세계에선 특히 그렇다. 제대로 된 나라는 균형점을 찾는다. 우리 야당은 균형이 아니라 자유 쪽에 올인했다. 그렇다면 내년 4월 총선과 다음 대선에서 새정치연합은 '우리가 집권하면 국정원의 사이버전 능력을 없애 시민의 자유에 대한 위협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겠다'는 공약을 내걸어야 한다. 이 공약은 지금 새정치연합의 태도 그대로다. 국정원 불법 도청이 적발됐을 때의 집권당이 지금 야당인 만큼 '우리는 안 한다'는 말은 안 통한다. 해킹 프로그램이 대북(對北)용이라는 국정원 설명을 믿지 않는 국민이 두 배나 더 많다고 하니 정치적으로도 해 볼 만할 것이다. 국민의 판단을 보고 싶다.
조선일보 논설주간 양상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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