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근 논설주간
문재인의 당면 과제는 하나로 단순화할 수 있다. 지난 대선 때 그의 앞에 던져진 문제이기도 하기에 새로운 것은 아니다. 하지만 아직 이 숙제를 풀지 못하고 있다. 그가 정치를 시작한 이래 늘 따라다닌 문제, 바로 친노 넘어서기다.
탈친노는 야당이 노무현 시대를 넘어 집권 비전을 지닌 대안세력으로 거듭날지 가늠해보는 시험대다. 그건 실패한 세력이 다시 야당의 주인 자리로 돌아가는 것으로는 선택받을 수 없다는 신호이기도 하다. 그런데 문재인은 이 문제를 방치한 채 당권에 도전하는 모험을 했고 결국 쓰라린 대가를 치르고 있다. 총선 승리도 그의 것이 아니었다. 그는 상처를 입었고, 호남은 멀어졌다. 친노 문제로 발목 잡힌 그의 리더십을 본 호남은 그를 통한 정권교체 가능성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노무현 정권의 호남 홀대론은 바로 이 의심으로 열린 틈새를 비집고 퍼져나갔다. 그는 이걸 놓치지 않았다. 홀대론은 지난 대선 호남의 압도적 지지를 설명할 수 없다. 그래서 해명 가능하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홀대론을 깸으로써 자신에 대한 호남의 의심을 덮을 수 있다고 생각한 것 같다. 덕분에 호남은 그에 대한 비관적 전망이 아니라 홀대 때문에 돌아선 속 좁은 존재로 규정됐다.그는 지난 대선을 노무현 정권의 대변자로 치렀다. 친노 공직 배제를 선언, 친노 거부감을 해소해야 한다는 당내 요구를 수용하지 않은 것도 그런 자세 때문이었을 것이다. 결국 선거는 박정희 대 노무현의 구도가 되었고 그는 패배했다. 이후 정치 현안에서 물러나 있을 때도 노 전 대통령의 명예와 관련된 문제만은 그냥 넘어가지 않았다. 박근혜 정권이 남북정상회담 회의록으로 노 전 대통령을 공격하자 회의록을 전면 공개하자는 제안으로 정국을 흔들었다. 그런 접근은 야당의 전열을 흩뜨려 놓았지만 그에게는 노 전 대통령을 지키는 것이 우선이었다. 성완종 사건 때도 그랬다. 노 전 대통령의 성완종 사면이 사건의 원인이라는 박 대통령의 역공에 문재인은 “사면은 법무부 소관이었다”고 반박했다. 노 전 대통령을 보호하는 일이라면 그는 무리한 해명도 마다하지 않았다.
이건 호남을 설득하는 좋은 방법이 아니다. 그보다는 노무현 정권이 광주정신을 받들어 더 많은 민주주의를 실현해야 했는데 못했다, 공이 있지만 과도 많았다, 비정규직을 더 늘렸고, 약속한 대로 특권과 반칙을 깨지 못했다, 재벌개혁에 손도 못 대고 서민의 삶을 더 낫게 하지도 못했다, 이게 다 비서실장으로서 제대로 보좌하지 못한 결과다, 사과한다, 실패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개혁의 주체를 새로 세우고 개혁의 내용·방향을 바로잡겠다, 노 대통령도 자신의 잘못을 감싸느라 또 대선 패배하느니 정권교체 해서 그가 못다 한 꿈을 이루기를 바랄 것이다, 이건 노무현 부정이 아니라, 노무현 2.0이자 노무현 정신의 승화라고 생각한다, 나는 이제 과거 노무현으로부터 자유로울 것이다. 이런 광주선언을 했다면 어땠을까.
그랬다면 호남인은 인사 챙겨주지 않았다고 토라지는 변덕쟁이가 아니라, 한국 시민을 대표하는 대표 시민, 보편 시민으로 존중받았다고 여길 것이다. 그랬다면 문재인을 다시 한번 믿어볼까 하는 마음의 동요가 일었을지 모른다. 그를 지지할 최소한의 명분이 생길 수도 있다. 그러나 그는 그렇게 하는 대신 노무현의 과거를 지키고, 친노를 강경으로 인식하는 고정관념을 희석시키려는 우경화로 친노를 감춰두려 했다. 이렇게 우경화한 친노, 발언권 잃은 친노, 당대표는 물론 원내대표·사무총장도 맡길 수 없는 친노의 쓸모가 무엇인지 알 수 없다. 친노가 이 지경인데 친노 때문이라는 소리를 듣는 것만큼 억울한 일은 없을 것이다.
지금 문재인에게 필요한 것은 왜 이렇게 꼬였는지 조용히 성찰할 시간이다. 그렇지 않아도 지금 그는 노무현과 친노라는 밧줄로 스스로 몸을 꽁꽁 묶고 수조 안으로 들어간 마술사와 같은 처지다. 호남 순방할 때가 아니다. 준은퇴 상태로 들어가야 한다. 내면의 혁명, 문재인 혁명을 준비해야 한다. 낡은 문재인의 껍질을 벗어던질 수 있다고 자신할 때 나서야 한다. 그가 족쇄를 다 풀고 수조를 뛰쳐나오는 통쾌한 장면을 상상해 본다.
그의 지지율은 마음 고쳐 먹기를 방해한다. 포기하기에는 큰 숫자다. 그래서 숫자의 유혹에 끌려 그럭저럭 버티며 시간을 흘려보내다 지겨운 친노 논란을 또 반복할 가능성이 크다. 그걸 다시 보는 시민들은 정말 진저리 치고 돌아설 것이다. 야당에 문재인만 있다면 몰라도 대안이 있다면 미련 없이 떠날 것이다. 그럼에도 과거 노무현을 버릴 수 없는 운명이라고 느낀다면, 탈친노를 도저히 실행할 수 없는 일로 여긴다면 방법이 없다. 그만 물러나야 한다.
ⓒ 경향신문 & 경향닷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대근 논설주간
문재인의 당면 과제는 하나로 단순화할 수 있다. 지난 대선 때 그의 앞에 던져진 문제이기도 하기에 새로운 것은 아니다. 하지만 아직 이 숙제를 풀지 못하고 있다. 그가 정치를 시작한 이래 늘 따라다닌 문제, 바로 친노 넘어서기다.
탈친노는 야당이 노무현 시대를 넘어 집권 비전을 지닌 대안세력으로 거듭날지 가늠해보는 시험대다. 그건 실패한 세력이 다시 야당의 주인 자리로 돌아가는 것으로는 선택받을 수 없다는 신호이기도 하다. 그런데 문재인은 이 문제를 방치한 채 당권에 도전하는 모험을 했고 결국 쓰라린 대가를 치르고 있다. 총선 승리도 그의 것이 아니었다. 그는 상처를 입었고, 호남은 멀어졌다. 친노 문제로 발목 잡힌 그의 리더십을 본 호남은 그를 통한 정권교체 가능성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노무현 정권의 호남 홀대론은 바로 이 의심으로 열린 틈새를 비집고 퍼져나갔다. 그는 이걸 놓치지 않았다. 홀대론은 지난 대선 호남의 압도적 지지를 설명할 수 없다. 그래서 해명 가능하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홀대론을 깸으로써 자신에 대한 호남의 의심을 덮을 수 있다고 생각한 것 같다. 덕분에 호남은 그에 대한 비관적 전망이 아니라 홀대 때문에 돌아선 속 좁은 존재로 규정됐다.그는 지난 대선을 노무현 정권의 대변자로 치렀다. 친노 공직 배제를 선언, 친노 거부감을 해소해야 한다는 당내 요구를 수용하지 않은 것도 그런 자세 때문이었을 것이다. 결국 선거는 박정희 대 노무현의 구도가 되었고 그는 패배했다. 이후 정치 현안에서 물러나 있을 때도 노 전 대통령의 명예와 관련된 문제만은 그냥 넘어가지 않았다. 박근혜 정권이 남북정상회담 회의록으로 노 전 대통령을 공격하자 회의록을 전면 공개하자는 제안으로 정국을 흔들었다. 그런 접근은 야당의 전열을 흩뜨려 놓았지만 그에게는 노 전 대통령을 지키는 것이 우선이었다. 성완종 사건 때도 그랬다. 노 전 대통령의 성완종 사면이 사건의 원인이라는 박 대통령의 역공에 문재인은 “사면은 법무부 소관이었다”고 반박했다. 노 전 대통령을 보호하는 일이라면 그는 무리한 해명도 마다하지 않았다.
이건 호남을 설득하는 좋은 방법이 아니다. 그보다는 노무현 정권이 광주정신을 받들어 더 많은 민주주의를 실현해야 했는데 못했다, 공이 있지만 과도 많았다, 비정규직을 더 늘렸고, 약속한 대로 특권과 반칙을 깨지 못했다, 재벌개혁에 손도 못 대고 서민의 삶을 더 낫게 하지도 못했다, 이게 다 비서실장으로서 제대로 보좌하지 못한 결과다, 사과한다, 실패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개혁의 주체를 새로 세우고 개혁의 내용·방향을 바로잡겠다, 노 대통령도 자신의 잘못을 감싸느라 또 대선 패배하느니 정권교체 해서 그가 못다 한 꿈을 이루기를 바랄 것이다, 이건 노무현 부정이 아니라, 노무현 2.0이자 노무현 정신의 승화라고 생각한다, 나는 이제 과거 노무현으로부터 자유로울 것이다. 이런 광주선언을 했다면 어땠을까.
그랬다면 호남인은 인사 챙겨주지 않았다고 토라지는 변덕쟁이가 아니라, 한국 시민을 대표하는 대표 시민, 보편 시민으로 존중받았다고 여길 것이다. 그랬다면 문재인을 다시 한번 믿어볼까 하는 마음의 동요가 일었을지 모른다. 그를 지지할 최소한의 명분이 생길 수도 있다. 그러나 그는 그렇게 하는 대신 노무현의 과거를 지키고, 친노를 강경으로 인식하는 고정관념을 희석시키려는 우경화로 친노를 감춰두려 했다. 이렇게 우경화한 친노, 발언권 잃은 친노, 당대표는 물론 원내대표·사무총장도 맡길 수 없는 친노의 쓸모가 무엇인지 알 수 없다. 친노가 이 지경인데 친노 때문이라는 소리를 듣는 것만큼 억울한 일은 없을 것이다.
지금 문재인에게 필요한 것은 왜 이렇게 꼬였는지 조용히 성찰할 시간이다. 그렇지 않아도 지금 그는 노무현과 친노라는 밧줄로 스스로 몸을 꽁꽁 묶고 수조 안으로 들어간 마술사와 같은 처지다. 호남 순방할 때가 아니다. 준은퇴 상태로 들어가야 한다. 내면의 혁명, 문재인 혁명을 준비해야 한다. 낡은 문재인의 껍질을 벗어던질 수 있다고 자신할 때 나서야 한다. 그가 족쇄를 다 풀고 수조를 뛰쳐나오는 통쾌한 장면을 상상해 본다.
그의 지지율은 마음 고쳐 먹기를 방해한다. 포기하기에는 큰 숫자다. 그래서 숫자의 유혹에 끌려 그럭저럭 버티며 시간을 흘려보내다 지겨운 친노 논란을 또 반복할 가능성이 크다. 그걸 다시 보는 시민들은 정말 진저리 치고 돌아설 것이다. 야당에 문재인만 있다면 몰라도 대안이 있다면 미련 없이 떠날 것이다. 그럼에도 과거 노무현을 버릴 수 없는 운명이라고 느낀다면, 탈친노를 도저히 실행할 수 없는 일로 여긴다면 방법이 없다. 그만 물러나야 한다.
ⓒ 경향신문 & 경향닷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자료저장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상시 청문회, 국회의 '셀프 권력' 어디까지 (0) | 2016.05.24 |
---|---|
잔인한 휴머니즘 (0) | 2016.05.24 |
人情 단절이 만든 敵들 (0) | 2016.05.19 |
미국의 총기 허용, 한국의 핵보유 (0) | 2016.05.15 |
로봇 저널리즘 (0) | 2016.05.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