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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상훈 칼럼] 한국인 유일 노벨상이 '정치상'인 것 우연 아니다

 
 
기사입력 2016.10.06 오전 3:18
최종수정 2016.10.06 오후 1:44
괴담·미신·감정 사회가 노벨과학상은 소망

책 제일 적게 읽는 한국인, 노벨문학상은 희망

노벨상 한두 개 나와도 비과학적 풍토가 바뀔까

양상훈 논설주간

우리는 이상하게 일본인이 노벨상을 타면 흥분한다. '우리는 뭐하느냐'면서. 미국인·영국인·독일인이 탈 때는 아무 감정이 없다가 일본인만 타면 갑자기 한국의 과학 수준을 개탄한다. 얼마 전 일본의 한 언론이 이런 한국인들을 이상한 사람들이라는 식으로 보도했다. 우리나라에서 '리우올림픽에서 일본은 선전했는데 한국은 뭐냐'는 식의 얘기나 보도가 많이 나오던 때였다.

올해도 일본 과학자가 22번째 노벨상을 받자 또 '일본은 하는데 우리는 왜?'라는 논의가 넘쳐난다. 얘기를 들어보면 일본이 하는 것은 당연히 우리도 할 수 있고 해야 한다는 것 같다. 일본 사람들이 보면 어이없는 일일 것이다.

일본이 근대 과학 연구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은 100년이 훨씬 넘는다. 과학, 수학, 물리학, 화학, 의학과 같은 말 자체가 다 일본인이 만든 것이다. 우리가 쓰고 있는 구체적 과학 용어는 말할 것도 없다. 도호쿠대 오가와 마사타카 교수가 43번째 원소를 발견해 '닛포니움'이란 이름을 붙인 것이 1908년이다(20여 년 뒤 이 연구 결과가 부정됐지만 나중에 새 원소 발견 자체는 사실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그로부터 100여 년 뒤인 2012년 규슈대 모리타 고스케 교수 연구팀이 113번째 원소를 발견했다. 올해 그 원소가 100여 년 전 '닛포니움'과 같은 '니호니움'으로 공식 명명됐다. 모리타 팀은 니호니움을 발견하기 위해 7년간 400조번 실험을 했다고 한다. 물질의 근본을 두고 100년의 시간을 관통해 일본인들이 보인 집념을 안다면 '일본은 노벨상 타는데 한국은 뭐하냐'는 질문은 할 수 없을 것이다.

100여 년 전 서양 선교사들이 찍은 우리 모습(젖가슴을 드러낸 여인들, 몇 달은 씻지 않았을 것 같은 아이들, 분뇨로 넘쳐나는 광화문길…)에 비하면 지금은 한·일 간 격차가 많이 좁혀졌다. 그래도 여전히 격차는 존재한다. 우리만 잘 모를 뿐이다. 우리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일본을 우습게 아는 한국인'이란 말을 들으면 기분이 나쁘지 않다. 그런 소리에 우쭐하는 사람도 있다. 실은 거기에 '이상한 코리안'이란 뜻이 배어 있다. 실제로는 일본을 우습게 볼 수 있는 국가가 세계에 단 한 나라도 없기 때문이다. 일본을 우습게 볼 수 있으려면 일본을 몰라야 한다. 모르면서 큰소리치고 허세 부리는 사람들만 일본을 우습게 여길 수 있다.

노벨상에 목을 매는 것도 '모르면서 허세 부리기'의 한 현상 같은 생각이 들 때가 있다. 평소에는 과학에 아무 관심이 없다. 과학을 모르는 걸 무식하다고 부끄러워하지 않고 아주 떳떳하게 이야기하는 사람도 많이 보았다. 그걸 '지성인'의 한 특성쯤으로 여기는 사람도 한둘이 아니다. 그러다 노벨상 시즌만 되면 흥분하는 것이 꼭 배드민턴이나 레슬링에 아무 관심 없다가 올림픽 때만 되면 금메달 따라고 난리 치는 것 같다. 얼마 전 미국의 한 매체가 '세계에서 가장 책을 적게 읽는 한국인들이 노벨문학상은 애타게 기다린다'고 했다. 따로 보탤 말이 없다. 한국에서 매년 이맘때 한번씩 오는 노벨상 열기는 아무리 봐도 과시주의와 한탕주의 같다.

100여 년 전에 서양 군함이 한강 어귀에서 함포를 쏘자 놀란 왕과 왕비는 궁궐 뒤뜰에 솥단지를 묻었다고 한다. 무당이 시킨 대로 한 것이다. 옛날 일만은 아니다. 각종 선거 일자가 법에 규정되기 전에 우리 대선 총선 날짜는 점쟁이가 결정했다. 당시 대통령에게 좋고 야당 총재들에게 나쁜 날로 골랐다. 실무 최고 책임자에게 직접 들은 얘기다. 한국 사회와 한국인 의식의 바탕에는 아직도 과학과 이성이 아니라 미신과 감정이 있다고 생각한다. 비과학, 비이성이 지배하는 나라가 노벨상은 애타게 기다리는 것이다.

우리 과학자들이 머지않아 우리에게도 노벨상이 올 것이라고 한다. 유력한 후보들이 있다는 것이다. 그랬으면 한다. 그러나 우리 사회 풍토가 과학과는 거리가 멀다는 문제는 노벨상 한두 개로 달라지지 않는다. 광우병 괴담이나 최근의 전자파 괴담은 과학과 이성이 지배하는 사회에선 결코 생명력을 가질 수 없다. 한국에선 사회를 휩쓸었다. 과학과 이성으로 입증되는데도 '미국 쇠고기 너나 먹어라'거나 '사드 안전하면 네 집에다 갖다 놓으라'고 한다. 괴담에 그렇게 속고도 새 괴담이 나오면 또 우르르 몰려간다.

한국이 처음으로 탔고 아직까지는 유일한 노벨상이 정치상(평화상)인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든 그건 받을 만하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더 나올지도 모른다. 노벨문학상도 받을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노벨과학상은 다를 것이다. 한국인 노벨과학상 수상자도 언젠가 나오기는 하겠지만 특출난 개인의 성과일 것이다. 사회 풍토가 미국·영국·일본과 다르기 때문이다. 노벨상 몇 개보다 과학과 이성이 지배하는 사회 풍토가 더 중요하다. 괴짜 같은 과학 집념도 그런 풍토에서 자라고 꽃필 수 있다.

[양상훈 논설주간 shyang@chosun.com]


와 진짜 죽인다... 읽는 내내 입 떡 벌리고 감탄한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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