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 2016.06.13 오전 12:17
최종수정 2016.06.13 오후 6:50
지난 주말 200명이 넘는 검찰 수사관들이 롯데그룹에 진격했다. 신격호 총괄회장과 신동빈 회장의 내밀한 숙소까지 압수수색했다. 정권 차원의 묵인 없이는 불가능한 무력시위다. 그동안 산발적으로 진행돼 온 대기업 수사가 갑자기 전면전으로 치닫는 분위기다.
하지만 어설픈 느낌도 지우기 어렵다. 검찰이 ‘국부 유출’ ‘제2롯데월드 비리설’을 흘리며 국민 정서를 자극하는 것부터 마음에 걸린다. ‘형제의 난’으로 미운털 박힌 롯데를 손보겠다는 정치적 의도가 어른거린다.
정부는 지난달 최은영 전 한진해운 회장의 주식매각 사건에 동부그룹 김준기 회장을 슬쩍 끼워 넣은 적이 있다. 하지만 김 회장이 실제로 판 것은 차명주식 62만 주였다. 동부 측은 “법정관리를 미리 알았다면 김 회장이 보유한 동부건설 1400만 주를 다 팔지 왜 62만 주만 매각했겠느냐”고 반문했다. 또 “최 회장은 개인적으로 돈을 챙겼지만 김 회장은 매각대금(7억3000만원)을 모두 구조조정에 넣었다”며 억울해한다. 재벌을 망신 주려다 당국 스스로 신뢰를 갉아먹은 꼴이 됐다.
이번에 검찰이 흘린 섣부른 ‘국부 유출’ ‘제2롯데월드 비리설’도 마찬가지다. 일본 국세청은 2005년 일본롯데에 “38년간에 걸쳐 2000억 엔(현 시세 약 5조원)을 한국에 투자했는데 왜 한 푼도 일본에 안 갖고 오느냐”고 압박한 적이 있다. 일본 입장에선 “투자가 아니라 일본의 국부 유출”이란 것이다. 그 결과 나온 게 ‘영업이익 1% 배당’의 신사협정이다. 실제 2014년 한국롯데는 일본에 341억원을 배당했는데, 이는 한국롯데 영업이익(3조2000억원)의 1% 수준이다. 이렇게 지난 10년간 일본에 넘어간 3000여억원은 정당한 배당일까, 아니면 우리 당국의 주장대로 국부유출일까.
‘제2 롯데월드’ 문제도 똑같다. 이명박 대통령의 취임으로 건립 불가 방침이 2년 만에 뒤집혔다. 건축 허가를 위해 서울공항 활주로 방향까지 3도 바꾸었다. 하지만 당시 국가브랜드위원회는 잠실은 물론 상암·용산·뚝섬·송도·해운대 등 6곳에 100층 이상의 초고층빌딩을 한꺼번에 추진했다.
다만 해외자본이 주도하던 다른 5곳의 랜드마크는 글로벌 금융위기로 중도에 접었을 뿐이다. 검찰은 이미 박근혜 정부 들어 몇 차례나 제2롯데월드를 내사했지만 단서를 못 잡은 것으로 알려졌다. 거꾸로 보면 과연 온 사회가 지켜보는 이 예민한 사안에 누가 용감하게 비리를 저질렀을지도 의문이다.
그나마 검찰 수뇌부가 뒤늦게 냉정을 되찾는 것은 다행이다. “국부유출이나 전(前) 정권 비리는 추측일 뿐”이라며 “계열사 간 거래에서 비자금 조성과 횡령·배임이 수사 핵심”이라 선을 그었다. 되짚어보면 이 돈은 지난 2013년 금융정보분석원(FIU)이 포착한 괴자금일 가능성이 크다. 당시 검찰은 2011~12년 롯데에서 사용처가 불분명한 수십억원이 현찰로 인출된 사실을 통보받고 수사에 착수했으나 별다른 진척이 없었다. 그후 달라진 것이라곤 지난 2월 신동주 부회장 측이 롯데쇼핑 장부를 열람해 1만6000페이지를 넘겨받았다는 점이다. 형제의 난으로 검찰이 그 자료의 상당 부분을 확보한 게 아니냐는 이야기가 퍼지고 있다.
롯데 수사는 경영권 승계 등이 얽힌 복잡한 사안이다. 만의 하나 정치적 수사로 변질되면 역풍을 맞을 수 있다. 지난해 포스코 수사 실패가 대표적이다. 이완구 총리가 ‘부패와의 전쟁’을 선포하자 검찰이 이틀 뒤 압수수색에 나섰지만 8개월 동안 먼지만 털다 끝났다. 실무자 10여 명만 별건으로 구속됐다. 정치적으로 진행된 자원외교 수사도 마찬가지다. 결국 ‘성완종 리스트 파문’으로 엉뚱하게 막을 내렸다.
검찰이 이번엔 신속하게 환부만 도려내야 할 것이다. 잘못하면 검사장들의 법조 스캔들을 물타기하려는 검찰의 ‘꼼수’로 비칠 수 있다. 당국도 검찰 수사에 휘둘리지 말고 제대로 중심을 잡았으면 한다. 한쪽으론 금리까지 내려 경제를 살리자면서 다른 쪽에선 대기업 손보기가 한창이니 어리둥절할 따름이다. 자칫 청와대와 정부가 컨트롤타워 역할은커녕 이중 플레이의 오해를 살지 모른다.
이철호 논설실장
이철호 기자 newsty@joongang.co.kr
최종수정 2016.06.13 오후 6:50
지난 주말 200명이 넘는 검찰 수사관들이 롯데그룹에 진격했다. 신격호 총괄회장과 신동빈 회장의 내밀한 숙소까지 압수수색했다. 정권 차원의 묵인 없이는 불가능한 무력시위다. 그동안 산발적으로 진행돼 온 대기업 수사가 갑자기 전면전으로 치닫는 분위기다.
하지만 어설픈 느낌도 지우기 어렵다. 검찰이 ‘국부 유출’ ‘제2롯데월드 비리설’을 흘리며 국민 정서를 자극하는 것부터 마음에 걸린다. ‘형제의 난’으로 미운털 박힌 롯데를 손보겠다는 정치적 의도가 어른거린다.
정부는 지난달 최은영 전 한진해운 회장의 주식매각 사건에 동부그룹 김준기 회장을 슬쩍 끼워 넣은 적이 있다. 하지만 김 회장이 실제로 판 것은 차명주식 62만 주였다. 동부 측은 “법정관리를 미리 알았다면 김 회장이 보유한 동부건설 1400만 주를 다 팔지 왜 62만 주만 매각했겠느냐”고 반문했다. 또 “최 회장은 개인적으로 돈을 챙겼지만 김 회장은 매각대금(7억3000만원)을 모두 구조조정에 넣었다”며 억울해한다. 재벌을 망신 주려다 당국 스스로 신뢰를 갉아먹은 꼴이 됐다.
이번에 검찰이 흘린 섣부른 ‘국부 유출’ ‘제2롯데월드 비리설’도 마찬가지다. 일본 국세청은 2005년 일본롯데에 “38년간에 걸쳐 2000억 엔(현 시세 약 5조원)을 한국에 투자했는데 왜 한 푼도 일본에 안 갖고 오느냐”고 압박한 적이 있다. 일본 입장에선 “투자가 아니라 일본의 국부 유출”이란 것이다. 그 결과 나온 게 ‘영업이익 1% 배당’의 신사협정이다. 실제 2014년 한국롯데는 일본에 341억원을 배당했는데, 이는 한국롯데 영업이익(3조2000억원)의 1% 수준이다. 이렇게 지난 10년간 일본에 넘어간 3000여억원은 정당한 배당일까, 아니면 우리 당국의 주장대로 국부유출일까.
‘제2 롯데월드’ 문제도 똑같다. 이명박 대통령의 취임으로 건립 불가 방침이 2년 만에 뒤집혔다. 건축 허가를 위해 서울공항 활주로 방향까지 3도 바꾸었다. 하지만 당시 국가브랜드위원회는 잠실은 물론 상암·용산·뚝섬·송도·해운대 등 6곳에 100층 이상의 초고층빌딩을 한꺼번에 추진했다.
다만 해외자본이 주도하던 다른 5곳의 랜드마크는 글로벌 금융위기로 중도에 접었을 뿐이다. 검찰은 이미 박근혜 정부 들어 몇 차례나 제2롯데월드를 내사했지만 단서를 못 잡은 것으로 알려졌다. 거꾸로 보면 과연 온 사회가 지켜보는 이 예민한 사안에 누가 용감하게 비리를 저질렀을지도 의문이다.
그나마 검찰 수뇌부가 뒤늦게 냉정을 되찾는 것은 다행이다. “국부유출이나 전(前) 정권 비리는 추측일 뿐”이라며 “계열사 간 거래에서 비자금 조성과 횡령·배임이 수사 핵심”이라 선을 그었다. 되짚어보면 이 돈은 지난 2013년 금융정보분석원(FIU)이 포착한 괴자금일 가능성이 크다. 당시 검찰은 2011~12년 롯데에서 사용처가 불분명한 수십억원이 현찰로 인출된 사실을 통보받고 수사에 착수했으나 별다른 진척이 없었다. 그후 달라진 것이라곤 지난 2월 신동주 부회장 측이 롯데쇼핑 장부를 열람해 1만6000페이지를 넘겨받았다는 점이다. 형제의 난으로 검찰이 그 자료의 상당 부분을 확보한 게 아니냐는 이야기가 퍼지고 있다.
롯데 수사는 경영권 승계 등이 얽힌 복잡한 사안이다. 만의 하나 정치적 수사로 변질되면 역풍을 맞을 수 있다. 지난해 포스코 수사 실패가 대표적이다. 이완구 총리가 ‘부패와의 전쟁’을 선포하자 검찰이 이틀 뒤 압수수색에 나섰지만 8개월 동안 먼지만 털다 끝났다. 실무자 10여 명만 별건으로 구속됐다. 정치적으로 진행된 자원외교 수사도 마찬가지다. 결국 ‘성완종 리스트 파문’으로 엉뚱하게 막을 내렸다.
검찰이 이번엔 신속하게 환부만 도려내야 할 것이다. 잘못하면 검사장들의 법조 스캔들을 물타기하려는 검찰의 ‘꼼수’로 비칠 수 있다. 당국도 검찰 수사에 휘둘리지 말고 제대로 중심을 잡았으면 한다. 한쪽으론 금리까지 내려 경제를 살리자면서 다른 쪽에선 대기업 손보기가 한창이니 어리둥절할 따름이다. 자칫 청와대와 정부가 컨트롤타워 역할은커녕 이중 플레이의 오해를 살지 모른다.
이철호 논설실장
이철호 기자 newst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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