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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pc방 야간 알바다.
언젠지는 정확하게 기억은 안나지만 대략 3주 전이었을거다. 늦은 밤 한 아줌마와 할머니의 경계에 있는 여성분이 매장에 오셨다.
한눈에 봐도 근심걱정이 가득해 보였다. 이마와 눈가, 입가에 잔다랗게 주름이 잡히신 얼굴이 안쓰러워보이는 그런 분.
매장을 두리번거리다가 내가 있는 카운터로 천천히 걸어오신다.
조심스레 나에게 '혹시 여기 XXX라는 남자애 자주 오나요?'라는 말을 건네셨다.
XXX는 우리 가게 단골이다. 내 알바시간에도 몇번 본 적 있고, pc 사용기록을 보니 내가 일을 시작하기 전부터 쭉 왔던 손님이었다.
난 당연히 자주 온다고 말씀드렸다. 할머니는 걱정과 안도감이 뒤섞인 한숨을 내쉬며 사정을 이야기하신다.
XXX는 누구나 다 알만한 L모 게임에 빠져서 몇달째 집에도 안들어오다가 돈이 떨어지면 집에 가는 전형적인 게임폐인, 등골브레이커였다.
할머니는 내게 자신의 전화번호를 알려주시고 그 손님이 또 오면 자기에게 연락좀 줄 수 있냐고 애원하다시피 부탁을 하셨다.
어렵지 않은 일이기에 당연히 그렇게 하겠다고, 꼭 연락 드리겠다고 했다.
시간이 흘러 점점 그 기억이 흐릿해질무렵 오늘. 돈을 벌기위해 어김없이 pc방 카운터에 앉았다. 인수인계 때문에 카운터 컴퓨터를 만지작거리고 손님이 얼마나 있나 모니터를 훑는데 한 이름이 눈에 띈다. XXX였다.
사실 그 이름을 처음 봤을땐 대체 이게 누구지? 분명 무슨 일이 있는 사람인데.. 하며 기억이 잘 안났다.
회원관리 탭에 들어가서 XXX의 이름을 검색하고 회원정보를 봤는데도 당최 누군지 기억이 안났다.
시험이 코앞이라 그런것 까지 신경쓸 여유가 없었던 나는 '에이 그냥 말아야지. 담배나 하나 피고 공부해야겠다' 하며 뻐끔뻐금 연기를 뿜어댔다.
흡연자들은 알겠지만 사실 담배피면서 이런저런 생각을 많이 한다. 오늘 하루 뭐했는지, 밥은 뭐먹지 심지어는 1년전에 헤어진 연인은 뭐하고 살려나 하는 오만가지 잡생각이 다 머리를 스친다. 근데 오늘은 이상하게 그 XXX라는 이름이 머리에서 떠나질 않았다. 흠...
별 생각 없이 핸드폰을 꺼내 전화번호부에 그사람의 초성을 검색해봤다. 'ㅂㄱㅇ'
세상에... 전화번호부에는 '집나간 아들 ㅂㄱㅇ 어머니'란 전화번호가 검색됐다. 머리는 멍해졌고 오른손은 담배를 재떨이에 던지고있었다.
카운터로 돌아와 다시한번 확인해보니 그놈이 맞다.
한치의 고민도 없이 할머니께 전화를 했다.
'네? 어디 pc방이요??', '네네. 네 알겠습니다'. 이 말로 미뤄봤을때 할머니께서는 우리 pc방 뿐 아니라 주변의 수많은 pc방에 들르신 모양이다.
전화를 끊은지 5분도 안되어 손에는 목장갑을 들고 약간 낡은 운동화를 신은 할머니께서 오셨다.
XXX의 어머니였다. 할머니는 내 손을 꼭 잡으며 '고맙다 고맙다 꼭 사례하겠다' 하셨고 난 '괜찮다. 얼른 가보시라'고 말씀드렸다.
조심스레 XXX가 앉아있는 자리를 가르켰고 할머니는 천천히 그 자리로 걸어가셨다. 뒤에서 지켜보는데 뭔가 착잡한 마음이 밀려왔다.
할머니는 자기 아들을 발견하고는 그 자리에 주저앉으셔서 아무 소리도 내지 않으셨다. 좁은 어깨와 굽은 등이 조금씩 들썩였을뿐.
어머니를 본 XXX는 무덤덤하게 모니터를 응시했다. '알았어 가자..'라는 말과함께 자리에서 일어나 카운터로 다가왔다.
내가 전화했다는 사실은 어머니께 비밀로 해달라고 부탁드렸기에 난 최대한 아무렇지 않은 척 계산을 마쳤다.
잔돈 900원은 마일리지써드릴까요? 하며 마지막 친절을 베풀기까지 했다.
그렇게 모자는 매장문을 나섰다.
카운터에 멍하니 앉아있자니 한편의 모노드라마를 본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내가 아무것도 모르면서 남의 집안일에 끼어든건 아닌지 후회 아닌 후회도 약간 됐고 험한 세상에 나중에 저 아들놈이 와서 해코지라도 하면 어떡하지 하는 걱정도 들었다.
근데 그냥 이게 맞는것같다. 남의 집안 일이라고 해도 틀린건 틀린거고 찾아와서 해코지 하면 그냥 몇대 맞지 뭐. 그게 할머니 마음 아픈것보다 낫지않을까?
사실 꼴에 기자를 꿈꾼다는 놈인데 잠깐이나마 전화한걸 후회했던 내가 너무 한심스럽다. 뭐 그 아들놈이 지금 집에 끌려들어간다고 해도 언제 다시 기어나올지 모르는 일이고 정신을 차릴지도 의문이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 당장은 내가 한 행동이 옳은거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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